“역시 그 사람들 대단합니다.” 미국 대통령선거가 끝난 뒤 어느 점심자리에서 몇몇 언론계 출신 인사들이 이구동성 입을 모았습니다. 그들이 미국인들을 대단하다고 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선거에서 패배한 존 케리 민주당후보가 개표도 끝나기도 전에 깨끗이 패배를 인정한 연설을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존 케리는 패색이 짙어지자 최종 개표가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군소리 없이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승복연설을 합니다. “미국의 선거에 패자란 없다” “국가가 분열 될 위기에 처해 이제 치유를 시작하기 바란다” “우리는 공통의 대의를 찾아야하며 분노나 소요 없이 국가를 위해 모두 힘을 모아야한다.” 큰 싸움에 진 사람 치고 그의 태도는 너무나도 대범하고 의연했던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대통령선거는 선거운동기간 피를 튀기는 싸움을 하다가도 일단 승부가 갈리면 낙선자가 지체없이 ‘승복연설’을 함으로써 패배를 공식 인정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역대 어느 선거에서고 그와 같은 일은 매번 똑같이 관례처럼 되풀이되어 왔습니다.

선거로 갈라진 민심을 수습하고 재빨리 분열된 국론을 통합하는 그들 모습을 보면서 “역시 미국이다”라는 감탄을 하게 됩니다.

1961년 10월 15일 치러진 제5대 대통령 선거는 민주공화당의 박정희후보와 민정당의 윤보선후보간의 대결이었습니다. 박정희는 5개월 전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장본인이었고 윤보선은 쿠데타로 대통령직을 상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선거 결과 총유권자 수 1298만 5015명 가운데 박정희 후보가 470만 2640표(득표율 46.6%)를 얻어 454만 6614표(득표율 45.1%)를 얻은 윤보선 후보를 근소한 차로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표차는 불과 15만6026표였습니다.

당연히 부정선거 시비가 제기된 가운데 윤후보가 당선무효를 주장하고 자신을 ‘정신적 대통령’이라고 선언합니다. 윤씨의 이 ‘정신적 대통령론’은 곧 유행어가 돼 오랫동안 국민들 사이에 우스개가 되어 회자됩니다. 윤씨는 그 뒤 줄곧 강경투쟁으로 박정희의 발목을 잡으며 애를 먹입니다.

그런데 그게 어디 윤보선씨 뿐 이겠습니까. 역대 대통령선거 치고 선거가 끝난 뒤 후유증이 없던 적이 없었고 극한 투쟁을 하지 않은 야당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이 땅의 선거문화요, 우리 정치의 고질병입니다.

우리 나라는 비단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에 걸쳐 페어플레이정신이 부족하고 나아가 승복의 문화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니 온 사회에 반칙이 성행하고 허구한 날 갈등과 소란으로 몸살을 앓는 것입니다.

이기되 정정당당히 이기고 지되 깨끗이 지는 문화, 그런 페어플레이문화가 절실합니다. 지든 이기든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 그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승자가 패자를 배려하고 패자가 승자에 승복하는 선거 문화가 정착될 때 이 땅의 민주주의는 비로소 꽃이 필 것입니다.

우리가 미국에서 본받아야 할 것은 첨단기술만이 아니라 바로 그와 같은 성숙한 국민의식이라는 것을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배워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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