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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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의 미래
  • 충청리뷰
  • 승인 2017.11.16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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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직언직썰/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설문대할망. 제주도민들이 마음에 품고 기리는 절대적 존재. 이분이 까마득한 옛적에 치마에 흙을 담아 바다 위에 제주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치맛자락 터진 구멍에서 흘린 흙들이 지금의 368개 오름이 되었고, 섬 한 가운데를 제일 높게 쌓아 한라산을 만들었다고 한다. 오줌발이 얼마나 셌는지 성산포 땅이 뜯겨 나가 우도가 되었다고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창밖으로 설문대할망이 보이는 서귀포에서 보름을 살았다. 흐린 날은 할망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맑은 날은 설문대할망의 맨몸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어떤 날은 하얀 구름모자를 살짝 눌러쓰고 있었다. 제주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사람이었지만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설문대할망에게 인사를 드렸다.

보름간의 서귀포 살이는 우연한 인연들이 이어진 결과였다. 내 책 <도시의 발견>을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공항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했고, 제주 오는 비행기 안에서 한달음에 읽었단다. 망가져가는 서귀포의 현실에 안타까워하던 그에게 그 책이 공감과 위로를 주었다고 한다. 서 이사장은 당시 서귀포시장에게 책을 선물했고 이중환 시장은 일본 출장길 신칸센 열차 안에서 한숨에 읽었단다. 귀국해서는 시청 공무원들에게 책을 선물한 뒤 읽고 공부하게 했다고 한다.

서귀포다운 건축과 도시문화를 지키고 가꾸기 위한 목적으로 지난해 출범한 서귀포건축포럼의 오한숙희 위원장의 요청으로 올봄에 <도시의 주인되기>를 주제로 강연을 했다. 뒤풀이 자리에서 금년 가을학기가 연구학기라는 얘기를 했더니 서귀포에 내려와 연구학기를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바람에 그러자고 했던 게 서귀포 보름살이로 이어진 것이다.

보름 동안 제주에 머물면서 가장 많이 한 일은 ‘걷기’였다. 서귀포라는 도시 이름을 갖게 한 중국사람 서복을 기념하는 전시관에서 출발해 이중섭이 아이들과 뛰놀았던 자구리 해변과 서귀포항을 지나 천지연 폭포까지 걸었다. 어느 날은 화순항에서 시작해 사계항, 산방산, 송악산을 지나 모슬포까지 걷기도 했다. 종일 20킬로미터 오십리를 걸은 셈이다. 시내에서도 주로 걸었다. 숙소가 있는 동문로터리에서 시청이 위치한 중앙로터리까지 걸어가 다시 서문로터리까지 걸었고 중앙로, 중정로, 동흥로, 태평로를 틈나는 대로 걸었다.

자동차에서 내려 두발로 걸어야 도시를 제대로 알 수 있다. 걸어봐야 겉모습이 아닌 도시의 속살을 만날 수 있다. 서귀포 시내를 걸으며, 또 바닷길과 오름을 걸으며 서귀포의 적나라한 현재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보름 동안 보고 느낀 결론을 말한다면, “서귀포의 아름다운 경관이 심각하게 깨지고 있는 위기”로 요약할 수 있겠다.

보름간의 제주 살이를 마치고 돌아오기 전날 밤 <서귀포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서미모)> 주최의 강연 자리에서 나는 “서귀포다움이 심각하게 깨지고 있고 더 이상 방치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 있으니 경관관리를 위한 비상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말씀드렸다. 9월초에 취임한 이상순 서귀포시장도 강연과 토론시간 내내 자리를 지켰고 육지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공감해주었다.

서귀포는 아주 특별한 도시였다. 어디서든 한라산이 보이고 또 바다가 보일만큼 건물들은 키도 덩치도 자그마했다. 신호등 없이도 사람과 차가 서로 존중하며 공존했다. 다른 도시에서 볼 수 없던 서귀포만의 서귀포다움이 있었는데 지금 그것을 잃어가고 있다.

서귀포의 미래는 어느 쪽일까? 다시 서귀포다움을 되찾을 수 있을까? 서귀포다움을 모두 잃고, 그것이 좋아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그것에 반해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버림받게 될까? 서귀포의 미래는 시장과 공무원들에게도 달렸지만 궁극적으로는 시민에게 달렸다. 말하는 시민, 소통하고 연대하는 시민, 행동하는 시민에게 달렸다. <서미모>가 그 역할을 다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비단 서귀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충주도, 청주도, 어느 도시들도 다르지 않다. 도시의 운명은 늘 시민 손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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