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동네에는 서점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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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동네에는 서점이 있습니까?
  • 충청리뷰
  • 승인 2017.11.1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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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브리얼 제빈의 서점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 <섬에 있는 서점>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나경 전 꿈꾸는책방 점장

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루페 펴냄

새로 이사한 동네에는 걸어서 닿는 거리에 책방이 있다. 아니 책방보다는 ‘서점’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곳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규모에 온갖 분야의 책이 다 구비돼 있는, 잡화점 같은 느낌의 서점. 간신히 자리만 마련해 놓은 듯 낮은 서가 위에 책들이 아무렇게나 (나름의 질서를 내가 파악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켜켜이 쌓여 있어 꺼내는 것조차 불편하다. 찬찬히 서가를 둘러보다 행운처럼 책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기가 어려운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거리에 서점이 있다는 것은 참 기쁜 일이다. 서점 없는 동네보다 서점 있는 동네가 훨씬 멋지지 않은가. 소설 <섬에 있는 서점>에서 니콜은 “서점 없는 동네는 동네라고도 할 수 없지”라며, 남편 에이제이를 설득해 자신의 고향 앨리스 섬에서 서점을 연다. 그들이 꾸린 ‘아일랜드 서점’은 섬사람들은 물론 여름 휴가철 섬을 찾는 피서객들에게 책을 공급하는, 앨리스 섬의 하나뿐인 책방이다.

하지만 어느 겨울 자동차 사고로 니콜이 떠나고, 혼자 남은 에이제이는 더 이상 서점을 꾸릴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친절하지도 않고, 책을 사랑하지만 순수문학 외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지극히 편협한 취향을 가진 서점 주인 에이제이. 니콜이 떠난 뒤 매출이 떨어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겨우겨우 두 해를 보냈다. 형편이 계속 나아지지 않으면 서점을 닫으리라 생각하던 중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그의 은퇴 계획이 틀어진다. 에이제이는 어쩔 수 없이 서점을 계속, 그것도 열심히 운영해야만 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크리스마스를 앞둔 날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아이가 서점에서 자라길 바란다’는 쪽지와 함께 25개월 된 여자아이 마야를 서점에 데려다 놓았다. 에이제이를 포함해 동네 사람들 모두 그가 아이를 키울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에이제이는 뜻밖에도 아이를 입양한다.

아내가 떠나고 혼자 고립되다시피 살던 에이제이. ‘혼자만 잘난 차가운 사람’인 그가 아이를 키운다는 소식에 동네 사람들은 마야가 방치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섰다. 두 사람의 불안한 동거가 걱정된 주민들은 마야를 보기 위해 이전보다 서점에 들르는 일이 잦아졌고, 그 결과 서점에는 좀 더 다양한 책이 갖춰졌으며 독서모임도 생겨났다.

동네서점의 소중함을 깨닫기를

결국 이야기는 서점에 들일 책 한 권을 고르는데도 까탈스럽기 그지없고 사람들에게도 함부로 대하는 괴팍한 주인공이 느닷없이 아이 아빠가 되면서 조금씩 변하는 과정, 사람들 속에서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소설의 원제가 《The Storied Life of A.J.Fikry》인 이유다. 책 한 권에서 십 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다루다 보니 이야기의 밀도가 떨어지지만, 내용이 지루하지 않아 단숨에 읽힌다.

에이제이가 변해가는 과정만큼이나 파출소장 램비에이스의 변화도 흥미롭다. 마야가 걱정돼 서점에 자주 들르게 된 그는 에이제이가 권해 준 책을 읽으며 차츰 소설의 매력에 빠지고 경찰관들을 위한 북클럽까지 만든다. 마침내는 에이제이가 세상을 떠난 뒤 여전히 앨리스 섬의 하나뿐인 서점을 인수한다. 어쩌면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다. 서점 주인이 된 경찰관이라니. 그가 꾸리는 서점은 어떤 모습일까?

에이제이의 두 번째 부인 어밀리아는 출판사를 그만두면서 남긴 아일랜드 서점에 대한 보고서에 “주인 내외는 자신들이 팔지 못할 것은 들여놓지 않음”이라고 남겼다. 책 취향이 특별난 에이제이가 마야를 키우면서 그 폭을 조금씩 넓히긴 했지만 여전히 아일랜드 서점에는 에이제이만의 취향이 있었고, 램비에이스가 인수한 뒤에는 그의 취향이 반영됐을 것이다.

1년 7개월, 청주 책방에서 일한 기간은 길지 않았다. 애초 여섯 달 정도만 잠시 운영을 맡기로 했기에 고민 없이 시작했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고는 하루도 고민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건 ‘어떤 책을 가져다 놓아야 하는가’였다. 서점지기의 취향대로 가져다 놓는 것이 맞는가, 찾아오는 이들의 취향에 맞추는 것이 옳은가. 어느 것도 무시할 수 없었다. 서점 운영은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책방이 책을 찾는 곳보다는 ‘발견’하는 곳이 되었으면 했다. 매체에서 다루는 신간 목록을 보고 책을 사러 오는 곳이 아니라, 산책하듯 지나는 길에 들러 서가를 훑어보다 좋은 책을 만날 수 있는, 그런 동네 책방이 되기를 바랐다. 당시 여러 조건이 맞지 않아 마음만 먹었을 뿐 과감하게 시도하지 못한 것들을 지금은 멋지게 해내고 있다는 소식을, 청주가 아닌 곳에서 바람을 통해 듣고 있다.

또한 청주 곳곳에 주인장의 취향 가득한 멋진 동네 책방이 들어섰다는 소식도 함께 들려왔다. 동네 책방이 하나둘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청주가 멋진 동네가 되어가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다만, 책방에서 책을 ‘발견’하는 것은 오롯이 독자이자 주민들의 몫이다. 앨리스 섬사람들이 그랬듯, 우리 동네에 책방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늦지 않게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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