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인권 교육장으로 활용되는 인간도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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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인권 교육장으로 활용되는 인간도살장
  • 충청리뷰
  • 승인 2017.11.16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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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50만 학살된 충격의 현장, 유대인은 100만명 가량 숨져
28개동으로 이뤄진 수용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사회통합 현장을 가다 (2)
폴란드 아우슈비츠 방문기
최승호 충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올해 4월 23일, 폴란드 아우슈비츠를 다녀왔다. 과거 독일 유학시절 독일 바이마르 북서쪽에 위치한 부헨발트(Buchenwald) 수용소를 방문하고 인류가 저지른 가장 잔혹한 역사의 현장에서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어언 25년이 지나 중년의 나이에 유사한 현장을 다시 찾았는데도 그 충격은 여전하였다.

과연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 질 수 있는지, 반이성적인 광기는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영화나 TV 다큐멘터리, 책 등에서 접하는 간접적인 경험에 비해 직접 방문하여 목격하는 것이 훨씬 더 생생하며 잔혹함이 더하다는 사실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방문 당일, 날씨가 흐렸고 바람도 불었으나 남녀노소 없이 많은 인파로 붐볐다. 어린 학생들을 인솔하고 온 교사들, 아이와 함께 온 부모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아우슈비츠는 역사와 생명, 인권 교육장으로 더할 나위 없는 교훈을 주는 현장인 것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정문
내부 건물


독가스 분사한 장소 확인

1995년 1월 18일자 뉴스위크지의 기사에 의하면, 아우슈비츠에서 죽은 사람은 유대인을 포함하여 110~150만 명으로 추산된다. 가장 많은 희생자가 유대인인 것은 분명하나 정확한 사망자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유대인 외의 희생자로는 폴란드의 양심수나 구 소련군 포로, 집시민족 등이었다. 2005년 아우슈비츠 해방 60주년 행사를 알리는 기사에서는 유대인 희생자 수를 100만 명으로 쓰고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정문에는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Arbeit macht frei)” 라는 간판이 붙어있는데, 생뚱맞은 문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노동해방이라도 추구한단 말인가? 인간의 노동해방을 추구하는 의미가 아닌 국가사회주의 이념이 추구했던 인간의 노동력 착취를 위한 문구인 셈이다. 게르만 우월주의, 국가지상주의 아래 인간의 존엄과 생명은 한낱 도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아우슈비츠는 폴란드를 점령한 독일군이 폴란드 지명인 오쉬비엥침(Oswiecim)을 독일식으로 바꾸어 부른 이름이라고 한다. 수용소는 28개동의 빨간 벽돌 건물로 이루어져 있고 1979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내부 건물은 철책과 높은 담벼락이 쳐져 있고 감시초소도 군데군데 보였다. 수용소에 한번 들어오면 죽어서 나가지 않는 이상 살기 위한 도주나 탈출은 엄두를 내기 어려워 보였다.

나치가 처형한 부류는 유대인, 공산주의자, 정치장교, 공산청년동맹 소속 공산주의계 청년들이며 초기의 처형 방법은 직접적인 총살이었다. 그러나 처형 속도와 탄약 문제로 독가스를 이용한 유대인 학살이라는 끔찍한 범죄를 감행하게 된다.
 

추모의 벽
가스실 복도입구


아우슈비츠에서 어떤 교훈 얻을까

사진촬영이 금지된 독가스실 복도를 별 생각 없이 촬영하다가 제지당하기도 하였는데 무심코 한 행동이 경솔해보였고 죄책감도 느껴졌다. 두 평 남짓한 방에 여러 사람을 몰아넣고 관을 통해 독가스를 분사하여 죽게 만들었던 장소를 목격했다.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시신을 실어 나르던 수레나 화장로까지 보니 집단 인간도살장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용자가 신었던 신발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는 것을 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름도 없이 고통 속에 죽어갔을지 참담한 생각도 들었다.

현시점에서 홀로코스트, 인종갈등, 난민갈등을 다시 생각해 보면 아우슈비츠에서 어떤 역사적 교훈을 얻을 것인지가 중요하다. 유럽의 난민문제와 사회통합의 과제, 이에 대비된 극단적 테러와 극우주의 경향 등 거꾸로 가는 역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통합을 깨뜨리고 분리와 독립의 길로 나아가는 최근의 스페인 카탈루냐 상황과 벨기에 플랑드르 지역의 분리독립운동 사례, 그리고 신고립주의·국가주의·폐쇄주의 경향의 영국 브렉시트와 미국의 정책 전환 등에서 인류의 암울한 미래를 본다. 빈부격차 해소나 사회통합보다는 개인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드러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것들을 통합정치가 해결해 주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통합 유럽민으로서의 문화적 정체성 확립보다 경제적인 통합이 먼저 진행되었기 때문에 분배갈등은 여전하다. 자유로운 이주와 노동의 이동으로 자국 노동시장의 일자리가 빼앗긴다는 위기감이 사회문화적 통합 문제를 어렵게 만들고, 결국 인종적 거리감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다문화주의, 다문화성에 대한 논의와 선택적 수용 및 배제 문제는 어떠한가? 하물며 탈북민의 사회통합이나 사회문화적 거리감이 있는 것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다문화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포용적 다문화주의가 우리사회에 어떻게 자리 잡을지, 충북은 어떠한 지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무는 시간이었다.

 

수용자들의 신발
수용자들이 사용했던 침실
화장로
납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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