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댓글 수사 은폐혐의를 받던 변창훈 검사의 안타까운 죽음이 쉽게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한창 나이인데도 그렇듯 삶을 마감한다는 현실에 만감이 교차하는 것이다. 그에 관한 혐의가 당시 정권과 권력으로부터의 하명으로 빚어진 것이 분명하기에 또 애먼 사람만 희생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때문에 해당 사건의 몸통을 향한 국민들의 증오와 원망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아닌게 아니라 요즘 들어 가장 여론에 휘둘리는 곳이 검찰이다. 정권의 교체기나 혹은 무슨 국가적 사안이 있을 때마다 검찰은 늘 시류의 한복판에 섰지만 이번엔 성격이 좀 다르다. 적폐청산이라는 국가적 의제를 놓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궁극적인 세력도 검찰이고 또 처벌과 응징의 대상이 되는 것도 검찰 인맥이다. 그저 얄궂은 운명이라고 치부하기엔 서로가 느낄 심적부담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상명하복과 상하동일체 문화가 여전히 잔존하는 검찰 조직에서 어떤 상황이든 검사 개개인에게 흔들리지 않는 소신을 요구한다는 것은 일견 무리일 수 있다. 한국적 정서에서 상식으로 판단해도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권력의 일탈에 자의적으로 동조하고 더 나아가 이를 기회삼아 개인의 영달까지 꾀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바람이 있다면 이러한 옥석이 분명히 가려져 정작 책임있는 사람이 대중앞에 드러나 단죄를 받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조직과 상관에 대한 신의와 충성을 다 한 것이 볼모가 돼 불상사를 당하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이럴 때마다 늘 가슴을 짓누르는 것은 아무리 생존의 문제이더라도 어느 분야든 자기 직업과 역할로서의 정체성은 끝까지 잃지 말아야 한다는, 권력과 힘있는 자들에 대한 소명의식의 주문이다. 여기에 대표적인 것이 검사다. 그동안의 굴절된 역사에는 꼭 검찰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 법무· 검찰개혁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인섭 서울대 로스쿨 교수가 4년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존경하는 검사, 검사다운 검사, 어떤 검사가 되어야 할까”를 화두로 던지며 4명의 전 현직 검사들을 거론해 논란을 일으켰다. 채동욱, 윤석열, 임수빈, 임은정 등이다.

잘 알려진대로 채동욱과 윤석열(현 서울중앙지검장)은 박근혜정권에서 국정원 댓글사건을 제대로 수사하려다가 정권의 미움을 사 시련을 겪었고, 임수빈은 이명박 정권에서 광우병 보도와 관련해 MBC PD수첩을 기소하라는 상부의 뜻에 맞서다 옷을 벗는 것으로 소신을 지켰다.

당시 검찰은 유죄거리가 안 된다는 임 검사의 법리를 무시하고 PD수첩 제작진을 재판에 넘겼다가 대법원의 무더기 무죄판결로 결국 망신을 자초한다. 잊을만하면 SNS를 달구는 임은정은 공안사건의 당사자에게 백지구형을 강요하는 상층부의 뜻을 거역하고 소신대로 무죄를 구형해 지금까지도 현역신분을 유지한 채 강골검사로 이미지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 네 사람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이른바 시국사건 등에 대한 정권과 권력의 부당한 관여에 정면으로 맞섰다는 것, 하여 대한민국 검사로서의 원초적 본분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특히 나로서는 충북과도 인연이 있는 검사 ‘임수빈’을 잊을 수 없다. 그는 얼마전 검찰개혁을 주제로 하는 <검사는 문관이다>를 펴내 화제가 됐다.

거기에 이런 말이 나온다. “수사에 있어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며 옳지 아니함을 올바르게 잡아가는 과정이다. 비리를 규명하고 단죄하기 위한 칼이 아니라 공익의 대변자로서 인권을 보장하고 사회 구성원들이 적법 절차를 준수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다. 그래서 검사는 무관이 아니라 문관이다”
 

이 책에서 그는 권력을 지향하거나 권력의 눈치를 보며 검찰권을 행사하는 것을 가장 경계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무소불위의 검찰력을 공익보다는 정권과 권력의 입맛에 맞춰 행사하는 것의 국가적 폐해를 누구보다도 절감했던 그였기에 책발간의 파장은 컸다. 그는 지난번 최순실 국정농단의 특검보 후보로도 이름을 올려 세인의 관심을 샀다.

그런 그가 임관 3년차이던 1992년 충주지청에 평검사로 재직할 당시 모 언론사 간부를 비리혐의로 구속시키고 나서 사석에서 이런 독백을 한 걸 기억한다. 대략 이렇다. “어느 땐 문득 검사라는 직업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한 사건을 치열하게 다루고 또 해결할수록 이런 생각은 더 하다. 아니, 지금 내가 하는 일이 과연 옳은지를 떠올리면 이루 말못할 고독감이 엄습한다.”

그의 책을 보면 임수빈이 끝내 고민한 것은 공익과 인권수호의 대변자로서 검찰과 검사의 본질에 대한 자기정체성이다. 살아있는 권력과 맞짱도 불사한 그의 기백과 용기는 바로 이런 성찰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굳이 검사를 무관이 아닌 문관이라고 단정한 것 또한 이같은 끊임없는 고뇌와 인고의 각성에 따른 휴머니즘의 발로일 것이다.

임수빈은 검을 휘두르는 칼잡이가 아닌 그 검의 예리한 날까지도 제대로 다스릴 줄 아는 ‘검객’이기를 바랐다. 이를 간과한 이인규는 해외도피자가 되어 졸지에 현상 수배범으로 전락했다. 마구 쏟아지는 정권의 하명수사로 정신을 못 차린다는 지금의 윤석열 팀은 부디 이런 전철을 밟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검사들의 수난을 지켜보면서 줄곧 머리를 맴도는 질문이 하나 있다. 왜 사법부는, 국민여론도 그렇고 검찰수사에서도 그렇고 아직까지 ‘적폐청산’에서 벗어나 있느냐는 것이다. 지난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인권과 민주주의수호의 최후 보루는 법관으로 상징되는 사법부가 아닌가.

하지만 암울했던 시절, 자신의 안위와 출세 하다못해 눈앞에 닥친 인사상의 불이익을 우려해 검사의 기소를 그대로 따라 판결함으로써 무수한 사람들을 망가뜨린 판사들을 우리는 수도없이 목격해 왔다. 지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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