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 중앙추모공원, 명예·대통령·가족묘역 관광코스로 활용
시에서 추모공원 책임있게 관리, 갈등없고 부지선정 잡음 없어 ‘눈길’

사회통합 현장을 가다 (1)
최승호 충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승호 충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16년 1년 동안 안식년을 맞아 세계 곳곳을 관광하고 의미있는 곳을 방문했다. 여기서 보고 느낀 것을 이번주부터 본지에 격주로 소개한다. 앞으로 폴란드 아우슈비츠, 일본 개호예방특화 데이서비스센터, 개호로봇을 이용한 일본 노인요양시설, 독일 메르켈 총리의 이주민 사회통합 현장 등에 대해 게재할 예정이다.

장사시설이란 죽은 사람의 장사를 치르는데 관련된 시설로 묘지, 화장시설, 봉안시설, 자연장지, 장례식장 따위를 들 수 있다. 공공재인 장사시설은 시장논리에 따라 수요와 공급이 결정되지 않으며, 그렇다고 정부의 개입으로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공공재적 특성으로 인해 누구나 편익을 향유하기 때문에 장사시설 건립에 대한 타당성은 모두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님비(NIMBY: Not In My Back Yards) 현상, 즉 ‘우리 뒤뜰에는 안 된다’라는 거주지 인근지역에 장사시설이 입지하는 것을 집단적으로 반대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혐오시설이라는 인식에서 입지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현실적인 문제이다. 최근 진천, 영동 등 충북 도내의 장사시설 건립이 좌초된 사례도 그 원인은 혐오시설이라는 주민의 인식문제와 지자체의 입지선정방식에서 주민참여와 절차의 경시, 사업에 대한 주민인식개선 및 홍보와 교육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음악가 베토벤, 모차르트 묘지

오스트리아 추모공원 가보니

“과연 장지는 혐오시설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올해 4월에 방문한 오스트리아 빈 중앙추모공원 방문기를 통해 해외의 모범적인 장사시설 소개와 한국 사회에 주는 의미를 새겨보고자 한다. 이곳은 오스트리아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단골 코스이다.

오스트리아 빈 중앙추모공원(Geschichte des Wiener Zentralfriedhofs)은 1870년 건축가 칼 조나스 밀리우스(Karl Jonas Mylius)와 알프레드 프리드리히 브룬트실리(Alfred Friedrich Bluntschli)가 설계하여 조성된 묘역이다. 개장 당시에는 정치적으로 모든 종파의 매장지로 논의되었으나 1874년부터 대중에게 개방하지 않고 로마가톨릭 장지로 지정되었다.

묘지는 1921년까지 7차에 걸쳐 확장되었으며, 2차 세계대전 중에 대형폭탄의 피해를 입어 1만 2천기의 무덤과 전체 건물이 파괴되었으나 복구되었으며, 현재는 모든 종교를 포괄하는 묘역이 되었다.

주요 묘역을 소개하자면, 빈의 문화와 역사의 주요한 부분을 이루는 명예묘역(Ehrengraber)을 들 수 있다. 건립 시 마을과 떨어진 불모의 땅에 자리 잡았던 중앙추모공원은 수십 년간 별 관심을 끌지 못했으나 명예묘역 설치로 상당히 매력적인 곳으로 변모하였다.

추모공원이 건립되기 이전 다른 곳에 매장되었던 다수의 유명 인사들이 이장되었는데, 이들은 빈을 무대로 음악, 문학, 과학, 건축, 회화, 발명, 연극, 정치, 스포츠 등의 분야에서 특별한 공적을 쌓은 사람들이다. 현재 명예묘역에는 약 1천여 기가 안장되어 있다. 중앙에 있는 대통령 묘역은 1945년부터 역임한 오스트리아 대통령들이 영면하고 있는 장소이다.

불교도 묘역(Buddhistischer Friedhof)은 2005년 5월 23일 개설되었는데, 오스트리아 불교단체의 대표자 회합이 성공적으로 끝난 2003년 가을에 건립을 시작하여 불기 2549년 5월, 묘역 중앙의 신성한 불탑에서 오스트리아 불교학교를 비롯한 모든 불교도들이 모인 가운데 불교 묘역 개장 의식이 거행되었다. 불교도 묘역은 이전에 중앙추모공원의 “고요와 에너지의 정원”(Parks der Ruhe und Kraft)을 계획한 바 있는 건축가 크리스토프 리카보나(Christof Riccabona)가 설계하였다.
 

대통령 묘실

예술적으로 지은 화장장 건물

2009년에 개설된 자연장지는 나무, 관목, 잔디무덤으로 구분되며,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휴식장소로 자연과 가까운 매장을 점점 더 희망한다. 짐머링 화장장의 나무무덤은 자연적이면서도 개별 매장을 위한 새로운 형태로, 접근이 용이하며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 아름다운 추모비를 갖추고 있다. 비용이 저렴한데다 유족들이 따로 관리할 필요도 없으며, 초기 사용기간인 10년 안에 연장도 가능하며 부부형 선택도 가능하다.

오스트리아 최초의 화장장은 1922년 12월 17일 비엔나 중앙묘지 짐머링에서 문을 열었는데 이전에는 버려진 고성이었다. 오스트리아 빈 중앙추모공원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으로는 명예묘역, 대통령묘역, 가족묘역 등이 관광코스화 되어 있을 정도로 예술적, 심미적 가치가 있는 조경과 건축물이 많다는 점이다.

예술의 도시답게 저명한 건축가나 예술가들이 기념비와 상징물 작업에 참여하여 회상과 추모의 분위기를 살렸으며, 예술공원 같은 명상의 공간이나 산책로로도 이용 가능하다. 그리고 다양한 계층별 선택묘가 구역별로 조성되어 시민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으며, 장지의 만물상이라 불릴 정도로 경제적인 형편에 따라 다양한 장지 선택이 가능하다. 또한 공간적으로 시의 외곽에 위치하며 트램역이 추모공원 1역에서 3역까지 있을 정도로 광범위한 부지를 차지하고 있다.
 

자연장지
화장장

추모공원은 시에서 책임 있게 관리하며 시민의 욕구에 부응하는 행정을 펴고 있어 갈등이 거의 없다. 장사시설 부지 선정 등으로 입지주민들과의 갈등이 극심한 우리나라 현실에 비추어볼 때 결국 지자체의 기획력이 장사갈등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하여야 한다. 또한 유럽은 사회문화적으로 죽음이 삶과 괴리되거나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삶이 공존하고 있다는 기독교적 사상의 뿌리가 깊게 깔려 있는데 비해 한국인의 전통적인 생사관(生死觀)은 이승에 대한 집착이 강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인은 죽음보다 현세의 삶을 중요시 여기고, 죽음 자체에 대해 미리 계획 세우는 일을 꺼리는 문화적 풍토가 여전히 존재한다. 장지에서 죽은 자와의 만남을 통하여 살아 있는 자는 일상생활 속에 죽음과 죽어가는 것, 그리고 삶의 의미를 다시금 숙고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장지의 욕구를 법제도가 충족시켜주어야 한다. 건전한 사회란 사회적 가치와 규범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면서 죽음을 대하는 질적인 문화도 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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