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뜻밖의 인사임은 분명하다. 우선,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의 정치와 공직이력은 아직 도민들에게 크게 대중적이지 못하다. 지금까지 그는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혹은 정치적 파트너를 만날 때마다 전면에 나서기 보다는 조용히 보좌하는 역할을 주로 했다. 더군다나 청와대 입성이 엊그제인터라 그가 정무부지사에 발탁될 거라고는 아무도 예단하지 못했다.

그의 내정소식이 전해진 후 여론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와 직업, 집단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예의 양비론이다. 공통점이 있다면 대부분이 정치적 의미와 정치적 해석들에 치우친다는 것이다.

사실 이장섭의 정무부지사 내정은 어쩔 수 없이 많은 정치적 변수를 수반한다. 3선 도전을 놓고 여전히 저울질을 하는 이시종 지사 그리고 어느덧 문재인 정권의 진골로 각인된 노영민 중국대사와의 역학관계, 여기에다 막상 그의 취임이 가져올 조직문화의 변화 등 지금으로선 선뜻 단정하기 어려운 여러 경우의 수를 내포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그의 정무부지사 변신이 도민들에게 이른바 ‘깜놀!’로 다가왔듯 앞으로 그의 운신 역시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한 것과는 많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엿보려면 현재 그에게 가해지는 부정적 평가를 한번 뒤집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정무부지사 이장섭에 대한 가장 많은 여론의 비토는 그의 정치와 공직이력이 일천하기 때문에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학생 운동권 출신인 그가 걸어 온 길은 나이와 년수에 따라 각종 공직을 섭렵하면서 인물의 무게감을 높이는 이들의 것과는 분명 다르다. 권위주의시대의 충북민주화운동협의회 상임위원, 통일시대국민회의 집행위원이라는 직책도 그렇고, 사회관계의 안정기라 할 수 있는 국회의원 정책보좌관과 국회의장 비서관 시절을 보더라도 그의 삶은 스스로 추구하고 알아서 뛰어다니는 역할에 충실해야 인정받는 것이었다. 잘 보전된 자리에 앉아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는 데 1차적 관점을 두는 일반적인 공직과는 다른 것이다.

이를 감안한다면 그가 정치판의 수많은 이해관계에 직면하면서 키워 왔을 정무적 감각은 자치행정에 오히려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늘 상대성을 고려해야 하는 ‘정치 업무’를 오랫동안 몸에 익혔다면 향후 정무부지사로서 맞이하고 맞서야 할 업무 또한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주변인들에게 이런 유형의 신뢰를 누구보다도 강하게 어필해 왔다. 재야와 운동권을 거친 내공으로 논리적이면서도, 역으로 상대에겐 조신하고 경청을 한다.

이장섭의 정무부지사 내정소식에 많은 사람들은 지역의 오랜 화두인 ‘세대교체’와 '발상의 전환'을 언뜻 떠올렸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54세라는 그의 나이가 결코 적은 건 아니지만 행정직이건 정무직이건 하다못해 자치단체 산하 공기업의 책임자이건, 으레 사람들이 가장 먼저 입에 올리는 공무원 출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우선 그렇다. 꼭 관존민비(官尊民卑)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지방자치 실시 30년이 다 되는 지금까지도 국민들은 여전히 행정(行政) 하면 관직출신자부터 먼저 생각한다. 행정을 아는 사람이 그래도 낫다라는 논리에서다.
 

충북도청 전경

지금도 자치단체장을 노리고 내년 지방선거 출마를 준비하는 공직출신들은 거의 100% 자신의 공직경력을 제 1의 당위성으로 제시한다. 고향을 위해 마지막 봉사를 다하겠다는 명분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그의 봉사정신은 지금까지의 공무원 생활에서 이미 다 발현됐어야 맞다.

공직에서 평생 대접받다가 고향에 내려와 선거 때 잠시 공복(公僕)으로 변신해 자치단체장 등 선출직에 쉽게 올라 해당 조직을 망친 사례를 우리는 수도없이 봐 왔다. 이 때문인지 요즘 사석에서는 “누가 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마지막 봉사를 안 해도 좋으니 제발 내려오지 마라”는 비아냥이 많다. 정무부지사 이장섭은 이러한 관행을 깬다는 점에서 일견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를 향한 도민들의 욕구가 아직은 구체적이고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시민후보 내지 전문가 집단의 등판론’으로 어느때보다도 공론화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여기엔, 전국적으로 성공한 자치행정을 견인한 곳은 공직출신 리더보다는 전문직 출신 리더가 많다는 학습효과가 작용한다.

실제로 자치행정의 성공은 틀에 박힌 공직경험보다는 비전과 창의, 그리고 조직관리 능력에서 창출된다는 것을 우리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자치시대에는 공직이라는 겉포장에 의해 만들어지는 관행의 리더십보다는 현장의 투쟁적 삶에 의해 성장되는 참여의 리더십이 더 절실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젊은 지도자에 대한 시대적 바람은 이제 남의 얘기가 아니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뉴질랜드로부터 전해지는 나이 30대 총리와 국가리더를 부러워만 할 게 아니라 우리도 이젠 리더십의 변화를 위한 인식과 몸부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충북은 어떤가.

제 아무리 100세 시대임을 인정하라도 인간의 능력은 60대에 정점을 찍고, 더 많아봤자 70대 초·중반이면 바닥을 드러낸다. 인지능력과 신체적 한계를 보더라도 그렇다. 그 이후로는 남을 위하기보다는 자신에 대한 관리와 보살핌에 집중해야 정상이다. 의미있는 노후는 이래야만 가능하다. 하다못해 요즘 유행하는 ‘나는 자연인이다’를 흉내내려고 해도 70대가 되면 벌써 어줍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선출직이라면 얘기는 훨씬 더 현실적이 된다. 4, 5년이면 개인능력의 발현과 검증은 이미 끝난다. 그런데도 고위직에 오르기까지 2, 30년동안 공직의 단물을 다 경험하고 내려 와 선출직이 되어서는 2선, 3선을 거듭하며 무려 10여년 이상이나 지방권력을 누리고도 또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선출직에 선 뜻 나서기를 꺼리는 젊은이들을 질책할 게 아니라 이러한 노욕(老慾)부터 경계해야 지역의 미래가 밝다.

이장섭 정무부지사의 깜짝 발탁이 이를 위한 분위기 조성에 하나의 단초가 된다면 도민들로선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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