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카지노에 출입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일확천금을 꿈꾼다. 강원랜드도 마찬가지다. 한번에 수천명이 들어가는 업장은 엘도라도의 환상에 젖어 전국에서 몰려드는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 인간의 본질이라는 ‘사행심’을 제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하더라도 이곳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삶에 지치고 쩔(절)어 있는 모습이다. ‘인간들의 군상’이라는 상념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보도를 보면 요즘엔 꼭 도박이 아니더라도 카지노의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이 곳도 엄연히 사람들이 사는 터이기에 인간 삶의 실체에 대해 이것 저것 보고 느끼기 위해 찾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업장에는 입장료만 내고 들어가는 단순 구경꾼들도 많다.

게다가 강원 정선군의 사북으로 대표되는 인근 지역의 풍경은 말 그대로 요지경이다. 한탕 꾼들을 노리고 한 집 건너 한집 식으로 영업하는 각종 유사여신업체와 즐비한 음식업소들에는 참으로 사연도 많다. 강원랜드로 인한 가정파탄과 파산 등 그 곳 고객들의 한많은 뒷얘기를 접하다 보면 별 별 생각을 다 하게 된다. 24시간 사우나에서 만난 어떤 이는 이런 말을 했다. “어차피 인생은 도박 아닙니까. 그냥 아무 생각없이 즐기는 거죠. 강원랜드 자체가 허깨비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성으로 생각하면 나만 골치아파요.”

그의 말이 맞았다. 강원랜드는 이 곳을 찾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유령의 조직이었음이 드러났다. 2012~2013년 신입사원 518명이 모두 유력자들의 취업청탁 대상이었다고 한다. 전원 ‘빽’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어떤 사장은 자신이 267명을 추천해서 256명을 합격시켰다고 한다. 인사 책임자들이 서로 뱁새눈을 하면서 시험 점수를 조작하고 전형절차를 뒤바꿨을 당시의 복마전을 떠올리면 ‘개새끼들’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러한 사실에, 우선 바람이 있다면 현 정부의 적폐청산에 대해 어느덧 노골적으로 반기를 든 정치집단과 수구언론을 국민들이 역으로 응징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적폐청산의 피로증을 얘기할 게 아니라 이 참에 아예 뿌리를 잘라내야 한다고 더 덤벼야 할 판이다. 강원랜드 인사 청탁의 당사자들을 보면 더 그렇다. 국회의원, 지방의원, 중앙부처 공무원, 언론사 기자, 심지어 스님까지 안 걸린 직업이 없다.

국가와 사회의 운용에서 일탈과 비위는 언제든지 등장한다. 사람 두명만 모여도 거기엔 반드시 이해관계가 생기고 뛰는 자와 걷고 기는 자의 괴리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렇더라도 강원랜드 사례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 나라에는 아예 상식과 정상이 없는 것같다. 공공기관 한 곳이 이 정도라면 나라 전체는 뻔하다. 정부가 전수조사를 벌여 해당 기관장에게는 법적 책임까지 묻겠다고 으름장을 놨지만 쉽게 믿음이 안 간다. 지금까지 강원랜드에 청탁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곳을 감시, 감독해야 하는 세력들이다.
 

사진은 강원랜드 야경모습.

강원랜드를 보면 박근혜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그들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른바 권력의 반칙에 국민 모두가 무감각해진 것이다. 안 그러면 아무리 연봉이 좋다지만 신입사원 전체가 빽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사회를 외치며 적폐청산의 칼을 휘둘러대는 문재인 정부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때마침 이명박과 우병우가 다시 여론의 중심에 섰다. 그들을 응징하는 것이 적폐청산의 1차 마무리가 될 거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뉴스에서 이들을 보는 것 자체가 이젠 고역이다. 막상 이들을 처벌한다고 해도 박근혜 탄핵같은 국민적 설레임은 없을 것같다. 이미 우리는 그들의 가장 추한 모습을 목격하며 치미는 분노를 삭이고 있다.

적폐는 지역사회 곳 곳에도 여전히 똬리를 틀고 있다. 행동과 말이 다른 부도덕한 정치인, 오로지 돈으로만 세상을 재단하려는 파렴치한 기업인, 언론을 자기처세나 사업의 방패막이로 악용하는 부적격한 사주들이 지금도 지역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왜 이런 사람들이 지역의 각종 명예직을 차지하고 넘봐야 하느냐고 묻는 건 어리석다. 그들의 탐욕과 이기를 용인하고 심지어 순응까지 한 것은 바로 우리들이기에 그렇다.

어제 오늘, 권력의 반칙에 의연하지 못한 국민성을 얘기하는 자리에서 생뚱맞게도 이시종 지사가 도마 위에 올려졌다. 전국체전 개회식에서의 환영사 때문이다. 당시를 생중계로 지켜본 많은 도민들은 지금까지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를 향한 이 지사의 작심(?)발언 때문이다. 언론은 문비어천가라고 표현했다.

대통령 내외가 참석한 자리인지라 개최지 도지사의 정도껏 아부성 발언은 필요했다. 늘 정부정책과 예산에 목말라하는 광역지자체장의 입장에선 이 보다 더 좋은 기회도 없다. 이 지사 스스로도 정치인생의 후반부를 고민할 때다. 그렇더라도 한 두 번도 아니고 듣기 거북할 정도로 수차례나 반복함으로써 도민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TV 중계를 지켜보던 타 지역 사람들이 충북을 어떻게 생각할까를 고민한 이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적폐의 출발은 권력에 의연하지 않는, 그리고 그 권력의 반칙에 항거하지 않는 것에서 비롯된다. 강원랜드는 이의 결정판이라고 해도 틀린말이 아니다. 이를 의식한다면 지금 터닝포인트를 걷고 있는 KBS와 MBC 파업의 향후 앞길은 더 분명해졌다. 권력에 아부하고 국민을 기망한 그 구악(舊惡)을 하루속히 척결하고 언론 본질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다. 강원랜드의 미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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