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순 「껍질들」 전문

빛나는 잎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다
하늘을 찌르는 가지가 되고 싶은 건 더욱 아니다
보호받기보다 누군가를 보호하고 싶은 것이다
살 에이는 바람에 살갗 툭툭 터지는 겨울나무 껍질 같은

갈 곳 없는 이들을 마음의 텃밭으로 불러 모으는 사람, 삯바느질해서 평생 모은 돈으로 사람들의 구멍 난 마음을 기워주는 할머니, 장기를 기증하고 홀연히 떠난 사람, 노동자들, 농부들, 이 시대의 단단한 껍질들

아버지, 김 매고 풀 베고 나무하고 일 바쁘신 농부 우리 아버지 밤이면 거친 손으로 연하디연한 나무의 속살 같은 내 등허리를 쓱쓱 문질러 주시던 손, 쩍쩍 갈라져 아프디아픈 껍질

세상의 처진 한 끝을 들어 올리는 단단한 껍질들

─ 김철순 「껍질들」 전문(시집 『오래된 사과나무 아래서』에서)

 

그림=박경수

‘세상의 처진 한 끝을 들어 올리는 / 단단한 껍질들’, 삯바느질 할머니, 장기기증자, 노동자들, 농부들, 그리고 소규모 자영업자, 비정규직 근로자, 또 시청 청소부, 수위 아저씨, 연탄 배달부, 재래시장 상인 등등, 흔해빠진 세상 밖의 마니아들, 비주류 인생, 아웃사이더들이지요. 그들은, 무슨 장엄한 삶의 고뇌니 비천하고 쓰라린 생의 비애니 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지 않습니다.

또한 부귀나 빈천으로 인해 마음의 중심이 바뀌지도 않으며, 권세나 무력 앞에 의지가 회유되는 일도 없습니다. 그저 묵묵히 생업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면서, 땀 흘려 일하고 가족에 헌신하며 법과 질서를 지키고 시민의 도리를 다하지요. 나누고 베푸는 삶의 이치를 숭상하고, 불행한 이웃 사람의 처지를 걱정합니다. 그야말로 불굴의 취향인 양 착한 마음이 몸에 밴 사람들이지요.

‘행복한 삶은 선한 삶과 대단히 흡사하다’(버트런트 러셀)고 합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그래도 행복한 사람은 모름지기 착하게 사는 저‘ 단단한 껍질’들이지요. 또한 분명한 것은, 그들이 바로 세상의 부패를 막는 소금이며, 자기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세상을 떠받치는 힘이라는 사실입니다. 시인 역시 오랫동안 그런 삶을 살았고, 그 등가물로 이렇게 질 좋은 언어의 피륙을 짜서 강렬하고 진실한 시의 비의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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