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의 작은 책 제작소 ‘포도밭출판사’ 신간
<풀뿌리운동, 새로운 복원> (이호 씀)

<정순영의 일하며 생각하며>
정순영 옥천순환경제공동체 사무국장

대학을 졸업할 무렵, 나 또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까운 친구들 대부분은 일단 취업 전선에 돌입했고 몇몇 친구들은 대학원 진학을 선택하기도 했다. 나의 경우엔 한 가지 고민이 더 있었는데 소위 말하는 ‘운동가’나 ‘활동가’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고민이었다.

내 대학생활은 딱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는데, ‘수업, 알바 그리고 데모’ 바로 이 세 가지였다. 우리집 형편 상, 고향을 떠나 서울서 대학 다니고 생활하는데 드는 돈을 무작정 부모님께 해결해 달라 손 벌릴 수 없었기에 되도록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 노력했고 부족한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과외가 됐든 서빙이 됐든 아르바이트를 쉬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남는 모든 시간에는 열심히 ‘데모’(집회)를 나갔다.(진짜 열심히 나갔다.) 소위 말하는 ‘운동권 학생’으로 말이다.

학교를 떠날 때 지역을 택했다

그러다보니 학교를 떠나야할 즈음엔 취업이나 대학원 진학이 아닌, 사회에 나가서도 학생운동에 이은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고민을 하게 됐다. 실제 학생운동을 함께 했던 선후배, 동기들 중엔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 활동가의 삶을 선택한 경우도 있었고 드물게는 농민운동을 고민하며 지역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그런 모습들을 지켜보며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이 무엇일까’를 꽤나 긴 시간 고민하게 됐고 두 가지 정도의 확실한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서울에선 살고 싶지 않다’ 그리고 ‘손에 잡히는 운동을 하자’가 바로 그것이었다.

서울에서의 삶은, 나에겐 말 그대로 끝없이 ‘버텨내야 하는’ 과정이었다.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는데 그냥 쉽게 말해 ‘서울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서울이 아닌 지역으로 내려가자, 그리고 되도록 (이것도 일종의 적성이 아닐까 싶은데) 농촌지역으로 내려가자 결심하게 됐다.

두 번째 결론이었던 ‘손에 잡히는 운동을 하자’는 것도, 내가 이 말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명확히 설명해낼 자신이 없다.

사회운동에도 여러 영역이 있을 텐데, 어쨌든 학생운동을 하며 경험했던 영역들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내가 도통 잘해낼 수 없는 성역인 것 같다는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그러면서도 명확하게 든 생각은 노동운동가, 농민운동가, 시민운동가이기에 앞서 일단은 노동자든 농민이든, 그냥 보통의 생활인으로 살아가며 내가 할 수 있는 운동을 작게라도 이어나가자 그렇게 마음먹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한편으론, 세상을 바꾸는 운동의 제일선에서 지금도 헌신하고 있는 지인들을 보면 항상 미안하고 고맙다.)

어쨌든 이러한 배경(?) 하에서 나는 10년 전 옥천에 오게 됐고 옥천신문 기자생활을 거쳐 지금은 옥천순환경제공동체에서 일하며 소위 ‘지역풀뿌리운동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활동가의 삶을 고민하면 할수록 ‘참 쉽지 않구나’란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요즘이다. 공동체 활동을 시작한 지 이제 만 3년이 되었는데, 처음엔 새로운 관계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끝없이 닥치는 일들을 해내고 한편으론, ‘기자직을 포기하고 참 대단한 선택을 했다’는 주변의 칭찬에 반쯤은 도취돼 시간가는 줄 모르고 활동을 이어왔다. 하지만 3년이 흐른 지금, 이제는 마약과도 같았던 칭찬들은 사그라지고 활동가로서 나의 역량 혹은 민낯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순간들을 쉴 새 없이 맞닥뜨리고 있다.

고민에 대한 답안지는 없었다

내가 ‘지역풀뿌리운동 활동가’란 것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으면서 ‘나 말고 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란 자만에 빠져서 내린 선택은 아니었을까 하는 고민부터, 도대체 우리가 말하는 지역풀뿌리운동이란 것의 실체는 무엇일까, 이게 뭔가 이렇게 하면 잘 해낼 수 있다는 ‘정석’ 같은 건 있는 것일까,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런 활동을 통해 내가 혹은 우리가 만들고 싶은 옥천이라는 지역의 모습이란 게 과연 있기는 한 것일까란 끝도 없는 고민에 빠져드는 요즘이다.

그래서 포도밭출판사에서 「풀뿌리운동, 새로운 복원」(이호 씀)이라는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렇다면 내가 풀고 있는 문제집의 답안지가 나왔다는 소리인가’란 기대도 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자도 애초부터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을 거라 생각하는데 책 「풀뿌리운동, 새로운 복원」이 지역풀뿌리운동을 고민 중인 나와 같은 이들에게 어떤 구체적 답을 제시해주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역풀뿌리운동’을 삶의 중요한 화두로 안고 있는 사람이라면 응당 고민해봐야 할 여러 이야기들을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차분히 전하고 있다.

다만, 저자 스스로도 지적했듯 책에 언급되지 않은 풀뿌리운동 사례를 일구어가고 있는 지역 활동가들이 느낄 소외감, 특히 내 입장에선 옥천과 같은 농촌지역의 풀뿌리운동 이야기가 책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은 것에 대해선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하지만 1장에 나오는 ‘풀뿌리운동’의 개념을 소개하는 부분이나 3장 풀뿌리운동의 원리, 4장 풀뿌리운동의 쟁점과 같은 부분은 적어도 ‘내가 무슨 활동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남은 둘째 치고라도 내 스스로부터라도 이해시키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또 개인적으로 소심한 성격 탓에 공동체 일을 하면서 어떤 갈등을 맞닥뜨리면 어떻게든 ‘해결 해야겠다’란 생각에 사로잡혀 과하게 전전긍긍하는 편인데, 책에서 ‘갈등은 구성원 각자의 인성과 관계없다. 그래서 갈등은 해소하는 게 아니라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p.287)란 부분을 읽는 순간, 한 줄기 계시(!)처럼 머리를 탁 치고 들어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무쪼록 많은 풀뿌리활동가들이 나처럼 책 「풀뿌리운동, 새로운 복원」을 읽는 동안 잠시 숨을 고르며 ‘도대체 우리가 뭘 하고 있는 것인지’를 새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길. 그리고 나처럼 운 좋게 ‘머리를 탁 치고 들어오는’ 크고 작은 깨달음을 한 가지씩이라도 얻을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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