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 「시」 전문

그대를 보면
어디서든 달이 뜨고 차분해집니다
그대를 만나면
한없이 착해져
세상의 미움이 없어집니다
그대 곁에 있으면
내 몸은 필터로 걸러진 정수가 됩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그대를
내가 그토록 원하는 까닭은
그대를 통해서만 순해지는 자신을
그나마 볼 수 있고
살아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 이지현 「시」 전문(시집 『사는 것이 지루한 날』에서)

 

그림=박경수

우리는 무엇으로 자신을 이겨내는가? 괴테가 말하지요, 사랑이라고. 또한 오랜 시간 눈물 없이 지상의 삶을 견딜 수 있었던 것도 사랑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대를 보면 마음속에 보석처럼 달이 뜨고, 그대를 만나면 한없이 착해지고, 그대 곁에 있으면 영혼이 정화되는, 이런 순수하고 진실한 사랑을 간직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런데 이 고귀한 사랑의 대상이 바로‘ 시’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 참 좋은 시인일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견고하게 지탱하는 힘이‘ 시’를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에 기인하는데 어찌 좋은 시인이 아니겠습니까.

좋은 시는 현란한 수사로 잔뜩 꾸미는 것이 아니지요. 시 속의 말들이 갓 빨아 널은 옥양목처럼 순박하고 정직합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시를 그토록 원하는 까닭이 오직‘ 시’만이 내 생존의 증거가 되기 때문이라는, 진실한 고백이 그래서 더욱 심금을 울립니다.

시는 어렵지요. 우주를 아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합니다. 너무 심원하여 잘 모르는, 그래서 더욱 신비한 시를 통하여 자신을 채우는 사람의 목소리는 맑고 깨끗해서 듣기 좋습니다. 모름지기 시는 순결한 자의 모험이며 열정입니다. 시를 향한 목마른 동경과 시에 바치는 아낌없는 사랑의 힘만으로도 이 시인의 삶은 윤택합니다. 시의 힘으로 자신을 이겨내고, 시의 힘으로 험난한 생애를 눈물 없이 견딜 수 있는 시인은 그래저래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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