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참 해석도 가지가지다. 정치인들이 영화 ‘남한산성’에 대해 한마디씩 내던지는 것을 보면 우리의 정치수준을 그대로 보여주고도 남는다. 여기에서조차 그저 남탓이다. 누구는 펑펑 울었다고 하고 또 누구는 국가 리더의 무능함을 떠올리며 나라의 현실에 망연함을 느꼈다고 하지만 그 속내는 하나같이 상대에 대한 깎아내림이다.

개인적인 평가를 내린다면 이 영화는 소문에 비해 작품의 완성도는 좀 떨어진다. 우선 실화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팩트와 김훈 작가 소설의 허구를 매끄럽게 매치시키지 못했다. 때문에 관객들은 장면마다 양쪽을 모두 인식하며 줄거리를 꿰맞춰야 했다.

또 한가지는 전체 작품의 포커스를 예의 최명길-김상헌 두 사람에게만 집중시키는 바람에 지금까지 역사책이 가르쳐 온 ‘만고의 역적(최)’과 ‘만고의 충신(김)’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 영화가 실화로서의 완성도를 높이려면 당시 시대적 배경을 암시할 수 있는 몇 개 상징적 스토리의 전개가 아쉬웠다.

이런 맥락에서 영화 초입의 김상헌이 애먼 뱃사공을 죽이는 장면과, 그 손녀의 추후 생존과정은 긴장감보다는 스토리 전개에 있어 오히려 끝날 때까지 군더더기로 작용했다. 다만 5년전 개봉된 ‘광해, 왕이 된 남자’를 기억하는 관객들에겐 ‘남한산성’은 그 후속편의 성격이라는 점에서 모처럼 우리 역사를 시대적 상황에 비춰 맘껏 반추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 영화의 감상평 중에 가장 정곡을 찌른 것은 역시 중국통인 도올이다. “역사에는 진보와 보수, 좌와 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상식과 몰상식만 있다. 싸워 이길 수 있는 군대와 식량이 있으면 싸우는 것이 상식이요, 싸울 수 있는 아무런 기력이 없으면 화해하는 것이 상식이다...중략...최명길의 입장은 상식일 뿐이다. 중요한 사실은 청나라가 우리나라를 자기들과 같은 뿌리의 고구려와 발해 대제국의 정통후예로서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중략...영화에도 홍타이지 인품의 한 측면이 묘사되어 있지만 그들과는 얼마든지 영예로운 협상이 가능했고 삼전도의 치욕은 면할 수 있었다. 그들이 원한 것은 조선의 정벌이 아니라 중원(명나라)의 정벌을 앞두고 후방의 교란을 원치 않았을 뿐이다.”
 

영화 <남한산성> 포스터.

영화 ‘남한산성’의 실체적 교훈

김용옥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임진왜란으로 국력이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조선이 복구도 되기 전인 40여년만에 다시 홍타이지의 후금(청나라)과 전쟁을 치르는 것은 무모한 선택이었고, 그러잖아도 전임 광해군의 폭정에다 이에 따른 인조반정 등으로 나라가 극도의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오로지 주자학에 사로잡혀 시대의 변화를 감지못하고 자기주제도 모른채 숭명배척(崇明排淸)의 명분론에 집착,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치욕을 초래한 이들은 역사의 죄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를 엄습한 것은 생뚱맞게도(?) 이같은 거대담론보다는 아주 현실적인 생각이었다. 첫째는 역사에 대한 해석과 국정교과서 문제다. 지금까지 오랜 세월을거쳐 가장 공론화된 남한산성 얘기조차도 이처럼 보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의 시각을 드러내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역사를 하나의 사실로써만 기록한다는 국정교과서는 원초적으로 설득력을 잃는다. 국정교과서만이 진정한 역사라고 외치던 박근혜의 무개념을 영화 남한산성은 실체적 사실로써 증명하고 있다. 단 하나의 역사라는 발상은 역사인식의 최악, 바로 무지의 발로다.

두 번째는 뻔한 얘기이지만 유비무환이다. 제 아무리 명분있는 사대를 하고 외교술을 발휘한다고 해도 내가 강하지 않으면 모든 게 사상누각이 된다. 마찬가지로 트럼프가 북핵을 타격하든, 문재인이 대화와 외교로 북핵문제를 풀든 우리가 강하게 무장하지 않으면 조선이 오랑캐에게 속절없이 당하듯 언젠간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핵무장을 옹호하는 게 아니라 이를 상쇄시키고도 남을 국방력과 동맹관계 구축의 필연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당시 조정 신료들로 상징되는 참모들의 역할문제다. 세계 어느 역사를 보더라도 실패한 권력의 뒤에는 반드시 실패한 참모세력들이 있다. 이는 문재인 정권에 대해서도 야당이 끊임없이 어깃장을 놓는 것 중에 하나다. 다른 건 다 차치하더라도 앞으로는 탁현민 식의 쇼적인 국정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참모의 최고 역할은 주군을 포장하는 게 아니라 그 주군의 어긋남을 경계하는 것이다.

그들은 참모들에 의해 망가졌다

공교롭게도 조선왕조 500년의 가장 격동기라는 임진왜란부터 병자호란까지 3대에 걸친 왕은 모두 적자출신이 아니다. 우선 14대 선조는 조선 최초의 방계승통(傍系承統)으로 왕에 올랐다. 그 전까지는 왕의 승계는 아버지에서 아들로 형제에서 형제로 이어졌지만 선대인 명종(13대)이 정실의 후사가 없게 되자 방계혈족인 선조가 왕이 된 것이다. 이어 15대 광해군과 16대 인조 역시 연이어 후궁의 자식으로 대권을 거머쥔다.

유교사상의 조선사회에서 방계나 서자의 왕권에는 숙명적인 핸디캡이 따른다. 출신성분에 대한 피해의식과 박탈감이다. 이를 만회하려는 노력은 필히 폭정과 측근의 중용으로 나타난다. 서자 김정은이 고모부와 이복 형을 죽이면서까지 최룡해와 황병서를 끼고 도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때 수반되는 것이 참모들에 의한 주군의 끊임없는 휘둘림이다. 이는 조선의 망국병이라는 당파로 이어진다. 선조는 임란 중에도 신료들의 파당적 이간(離間)을 극복치 못하고 충신 이순신을 잡아들임으로써 지금도 조선왕 중에서 귀가 가장 얇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산군과 함께 조선왕조의 2대 폭군으로 각인된 광해군은 원래 총명하고 이지(理智)가 뛰어난 선정의 지도자였다.

그는 아버지 선조가 임란을 피해 도망다닐 때도 세자로서 전국을 돌며 민심을 수습하는 바람에 명나라로부터도 일찌감치 주목받은 인물이었다. 보위에 오른 뒤엔 전후 복구와 왕권강화에 올인하며 대동법을 공포해 백성의 구제에 나섰는가 하면 침략의 기세를 높이던 후금과의 관계에선 당시만 하더라도 최첨단이랄 수 있는 ‘정보요원’을 적진에 침투시켜 전쟁을 사전에 차단하는 실리외교를 펼쳤다.

오랑캐와는 절대로 안 된다고 악다구니를 하는 신료들에게 광해군은 이렇게 일침한다 “그렇다면 경들 가운데 일선으로 달려가 적과 직접 부딪쳐 보겠다는 사람은 없는 것이요.” 물론 단 한 사람도 나서지 않았다. 핵무장을 합창하며 전쟁불사를 거리낌없이 입에 올리는 수구 정치인들이 하나같이 병역기피로 군대의 문턱에도 안 가 본 작금의 현실과 묘하게도 오버랩된다.

이같이 영민한 광해군을 변질시킨 건 조정 참모들이다. 그들의 “전하~~~”에 대책없이 휘둘리며 어느덧 망가진 것이다. 인조도 똑같다. 영화 남한산성은 인조가 조정 신료들에게 얼마나 줏대없이 흔들렸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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