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상 사회부장

지난 10월 21일 한 무리의 50대 남자들이 대낮에 청주시청 공무원노조 사무실로 난입했다. 이들은 비닐봉지에 담아간 오물을 사무실에 흩뿌리고 심지어 카터 칼을 든채 조합원을 위협했다. 당시 청주시공무원노조는 한대수 시장을 개에 비유한 패러디 사건으로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었다. 경찰 수사결과 문제의 난입자들은 고엽제전우회 청주지회 회원들로 밝혀졌다. 전국의 신문방송이 개 패러리 사건을 ‘패륜적 행위’로까지 몰고가는 상황에서 열혈시민들은 화가 날만도 했다.

하지만 병마의 그늘속에 사회적 약자로 인식돼온 그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일에 집단적으로 자극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취재진에게는 도저히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였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가 지난 1일 서울 장충체육관에 모여 ‘통곡기도회’를 갖고 국가보안법 폐지 및 사립학교법 개정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안보 불안과 국론 분열을 야기하고 있는 정부와 여당의 국가보안법 폐지와 사립학교법 개정을 절대 반대한다”고 울먹이며 호소했다. 한기총은 지난 10월에도 서울시청 광장에서 신도 7만여명을 모아놓고 국가보안법 수호를 위한 ‘구국기도회’를 개최한 바 있다.

분단국가의 안보상황을 우려한 그네들의 목소리를 굳이 탓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앞서 인용한 지난 1일 ‘통곡기도회’는 아무리 생각해도 ‘미스테리’한 일이다. 그네들 주장대로라면 ‘사립학교법=국론 분열 야기’라는 등식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위의 두가지 미스테리 사건은 얼핏 한국사회가 현재형으로 겪고있는 진보-보수의 ‘맞장뜨기’로 비쳐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한꺼풀 벗긴 속살은 시류를 이용한 교묘한 집단 이기주의의다. 고엽제전우회는 국가보훈단체로 포함돼 청주시가 연 1000만원씩 정액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부지를 무상 제공하고 충북도 청주시가 건축비 2억원을 제공한 사직동 2층 건물에 해병전우회와 나란히 입주했다. 청주지역 어느 민간사회단체도 이런 파격적인 대우로 전속건물을 마련한 경우가 없다. 고엽제전우회는 너무 큰 빚을 진 셈이고 현 충북지사와 청주시장에게 두고두고 감사해야 할 형편이다.

한기총이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반대하고 나선 실제 이유는 간단하다. 기독교재단이 소유하고 있는 숱한 사립학교 때문이다. 기독교계 뿐만 아니라 얼마전에는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사립학교법 개정에 반대의견을 밝혔다. 서강대를 비롯해 전국에 많은 사립학교를 카톨릭 재단이 맡고 있다. 그동안 보도된 국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부여당의 4대 개혁입법 가운데 반대의견이 낮고 찬성의견이 두드러진 법안이 바로 사립학교법안이다.

한국의 학부모들이 대부분 지지하는 사립학교법안을 이념논쟁의 용광로 속에 있는 국가보안법과 한데 묶어 내던지는 한기총의 용기(?)가 놀라울 뿐이다. 그들의 용기는 이미 20여년 전에 확인되기도 했다. 80년 8월 전두환 당시 국가보위상임위원장을 위해 롯데호텔에서 열린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한 조찬 기도회’를 준비한 장본인들이 한기총 원로들이었다. 광주학살의 피비린내가 가시기도 전에 ‘전두환 장군’의 건승을 비는 기도문을 외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사회에 어렵사리 조성된 논쟁문화를 왜곡시키고 국론분열을 ‘야기’시키는 주범은 기득권적 집단 이기주의다. ‘보훈’과 ‘종교’도 눈앞의 실리 앞에 흔들리는 현실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