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이 내준 숙제 열심히 할래요”
충주열린학교 안병순 할머니의 수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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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이 내준 숙제 열심히 할래요”
충주열린학교 안병순 할머니의 수상시
  • 최현주 기자
  • 승인 2017.09.27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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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충북 성인문해교육 학습자 시낭송대회’
충주열린학교 안병순 할머니 최우수상 수상

“하늘나라에 있는 영감에게/ 젊어서 일하는 재미에/ 손 트는 것도 잊고 살았죠/ 늙어 열린학교에 와서 공부를 하니/ 투박한 손에서/ 예쁜 글씨가 나온다 ……(중략) 늙어 공부하는 나를 위로해 주며/ 잘하네, 잘했어 칭찬해주던 나의 영원한 벗은/ 내 옆을 떠난 지 3개월/ 그 벗을 그리며 오늘도 열심히/ 쓰고 읽고 있답니다”

 

지난 22일 충북평생교육진흥원이 개최한 ‘제1회 충북 성인문해교육 학습자 시낭송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안병순 할머니가 쓴 ‘하늘나라에 있는 영감에게’란 시다. 진솔한 내용도 내용이지만 먼저 간 남편을 그리워하는 절절한 마음이 느껴져, 읽고 있으니 어느새 가슴이 먹먹해진다.

올해 나이 76세. ‘충주열린학교(교장 정진숙)’에서 2년째 한글공부를 하고 있는 안병순 할머니는 그야말로 늦깎이 학생이다. 얼굴엔 검버섯이 내려앉고 쭈글쭈글 주름투성이다. 하지만 초롱초롱한 눈빛만큼은 세계석학 못지않다. 한글을 알게 되서 날마다 행복하다는 안병순 씨를 만나본다.

안병순 할머니가 '충주열린학교'에서 한글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

남편 그리며 쓴 시 최우수상 수상

안병순 할머니는 어릴 적 몸이 아파 열세 살 때까지 누워서만 살았다. 출생신고도 그래서 열세 살이 다 되어서야 했다고. “아마 어른들은 내가 잘 못될 거라고 생각했었나봐…….” 집밖을 나오지 않았으니 학교는 언감생심 생각도 못했다. “그때가 옛날이긴 했어도 그래도 언니, 오빠는 중학교도 가고, 고등학교도 가고 했었는데 난 아프니 학교 근처에도 못 가봤지. 뭐~ 하지만 이제라도 한글을 배우고, 이렇게 글도 쓰고, 시도 쓰고 상도 타니 너무 행복해.”

3개월 전 세상을 등진 남편을 그리며 한글자 한글자 꾹꾹 눌러 쓴 시로 상까지 받으니 이번 수상이 안병순 할머니에겐 그 의미가 더 특별하다. “영감이 조금만 더 살아서 이런 모습을 봤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함박웃음을 지으며 시화를 보여주다가도 ‘영감’이라는 말에 어느새 또 눈시울이 붉어지며 손수건을 찾는다.

‘제1회 충북 성인문해교육 학습자 시낭송대회’ 최우수상 작품.

“공무원이던 남편이 젊어서는 나한테 한글을 가르쳐주려고 많이 노력했지. ‘공부하세~’하면서 ㄱ, ㄴ부터 가르쳐줬어. 그때는 일하느라 힘들고 귀찮아서 꾀도 많이 부렸는데……. 지금 생각하니 영감이 있었을 때 배웠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들어.” 똑똑하고 자상했던 남편이 2년 전 치매에 걸려 한글을 자신보다 더 모른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하늘이 무너졌는지, 그때 일을 생각하며 안 할머니는 또 눈시울을 적신다.

남편의 치매 발병과 동시에 한글 ‘열공모드’에 돌입한 안병순 할머니는 그동안 한글을 몰라 겪었던 어려움보다 상 받은 모습을 남편에게 보여주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그만큼 남편이 생전에 했던 ‘공부하라’는 ‘부탁’을 이제라도 들어주기 위해 한글공부에 더욱 전념할 계획이다.

‘제1회 충북 성인문해교육 학습자 시낭송대회’ 시상식 장면

 

몸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 공부하고파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지 3개월. 얼마나 그리움이 사무칠까? 예전 할아버지와의 인연을 물으니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얼굴은 어느새 발그레진다. “내가 18살 되던 해, 우리집 영감을 만났어. 몸도 약하고 배운 것이 없어 난 결혼은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었는데 우리집 영감이 그때 나한테 그러더라고. 못 배운 것은 죄가 아니다, 형편이 안돼서 못 배운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선 안 된다, 그렇게 나한테 용기를 주고 나를 사랑해줬어”

남편이 공부하라는 숙제 아닌 숙제를 이제라도 ‘완수’하기 위해 앞으로 할 수만 있으면 중학교도 가고, 고등학교도 가고 싶단다. 그래서 안병순 할머니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아침 8시30분이면 어김없이 집을 나와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간다. 몸이 아파 결석을 할 때도 가끔은 있지만 웬만해선 결석하는 일이 없다.

슬하의 3남매도 키우고 젊은 시절 많은 활동도 했지만 사실 그동안 안병순 할머니는 한글을 모른다는 것이 마음속의 걸림돌이고 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한글에 대해 자신감이 생겨 “너무 행복하고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상을 준 것은 앞으로도 더 열심히 공부하라고 준 것 같다. 몸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 열린학교에 나와 계속 공부할 생각”이라고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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