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텍 코리아, 오창 1만 5000평에 3000만 달러 투자 결정
반도체 점착제 생산기업
올 4월 29일 충북도와 린텍간에 오창진출을 약속한 양해각서(MOU)가 교환된 지 6개월만에 1만 5000평의 부지에 걸쳐 3000만 달러(약 350억원)의 외자유치가 성사되는 순간이었다. 린텍은 이번 달에 파일 작업을 마친 뒤 해빙기가 끝나는 내년 3월 기공식을 가질 예정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일본 기업의 오창 진출이라는 큰 사실에 파묻힌 채 피상적인 관심만 끄는 선에서 그친 한 기업인의 존재가 눈길을 끈다. 린텍 코리아의 대표이사로 선임된 세일 하이텍 박광민 사장(53)이 주인공이다. 결론부터 말해 박 사장과 린텍과의 매우 특별한 관계가 린텍의 오창 진출이란 ‘작품’을 엮어낸 것으로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는 것.
지난 2일 오창과학산업단지에서 만난 박광민 사장은 화려한 외양의 경영인 모습보다는 첨단기술을 다루는 엔지니어 출신답게 조신한 언행이 오히려 신뢰감을 주는 인상이었다.
비즈니스를 위해 익힌 일본어와 영어 실력이 상당한 수준인 박 사장은 린텍과의 예사롭지 않은 인연의 배경을 대뜸 묻는 질문에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린텍 회장과 박 대표와의 특별한 인연
“제가 1994년 청원 오창에 창업한 세일 하이텍은 린텍과 마찬가지로 첨단 점착제를 생산하는 기업입니다. 그런 점에서 린텍과는 동종업체의 경쟁관계라고도 할 수 있죠. 세일 하이텍을 창업하던 시점을 전후해 제게 주어진 가장 큰 일은 업계의 동향, 즉 기술 및 시장동향을 파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벤치마킹 차원에서 미국 싱가폴 등지에서 열린 동종업계 관련 전시회는 빠짐없이 찾아 다녔죠. 그 때 알았는데 린텍의 위상은 세계에 수없이 많은 첨단 반도체용 점착소재 생산업체 중 첫 번째로 꼽힐 만큼 대단했습니다. 당시 제 머리 속은 전량을 일본에서 들여오고 있던 첨단 점착소재 기술을 개발, 수입대체효과는 물론 수출시장을 뚫어보자는 야심 찬 생각이 온통 지배하고 있었던 때였죠. 이런 열망은 한때 신분을 속여가면서까지 린텍에 접근, 하나라도 더 귀동냥 하고 눈으로 확인하는 극성으로 이어졌습니다.”
세일하이텍에 직접 투자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했는가. 박 사장의 열의와 진실성을 눈여겨 본 린텍이 의외의 반응을 보여왔다. “한국시장 진출에 관심이 많다. 박 사장이 우리의 협력 파트너가 돼 줄 수 없겠는갚 예상 밖의 제의였다. 박 사장은 “린텍에서는 나를 단순한 비즈니스 상대라기보다는 장기적인 협력 파트너로 상정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세일 하이텍 창업 8년만인 지난 2002년 린텍에서 이 회사에 자본출자까지 한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현제 세일 하이텍의 지분 중 4분의 1인 25%가 린텍 소유다.
세일하이텍에 출자한 데 이어 린텍코리아 대표로 선임까지
하지만 박 사장의 이런 설명에도 의구심은 다 가시지 않았다. 단순한 협력관계 구축의 수준을 넘어 세일 하이텍에 대한 자본출자에 이어 나아가 오창에 큰 규모의 투자를 결정하기까지에는 좀더 강력한 동인(動因)이 있어야 하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린텍의 의사결정과정에 절대적 영향력을 미치는 최고경영자의 이해와 결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인 때문이다.
“린텍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경영을 해 온지 10년이 됐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는 성실 신뢰 등과 같은 덕목인데 이게 린텍에게 어떤 감흥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지난해 8월 제가 린텍을 방문했을 때 였습니다. 팔순이 다 된 린텍의 ‘쇼지’ 회장께서 저를 당신의 별장으로 초대하더라구요. 그곳에서 며칠을 같이 숙식을 하며 골프를 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린텍이라는 회사와 최고경영자인 쇼지 회장에 대한 믿음이 더욱 공고해졌죠.”
박 사장은 그 때 중요한 얘기가 오고갔다고 했다. 린텍의 해외거점 구축 전략과 관련한 것이었다. “린텍에서는 말레이시아에 현지법인을 설립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 소식을 듣고 쇼지 회장께 말씀드렸죠. ‘회장님, 한국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발전 전망이 어느 나라보다 좋은 데다 일본과는 지리적 여건상 가장 가까운 등 최적지입니다. 반도체산업뿐 아니라 공장입지를 위한 제반 인프라도 잘 돼 있고요. 이왕 해외에 진출하려면 한국이 어떻겠습니까’하고 의향을 타진했지요.”
세대를 넘어 별장과 가정을 오고간 ‘우정’
일본 체류기간 내내 융숭한 대접을 받고 귀국한 박 사장은 한 달만인 지난해 9월 쇼지 회장을 한국에서 영접하게 됐다. 박 사장의 제의를 깊이 새겨들은 회장이 부러 오창 현지를 둘러보기 위해 노구를 이끌고 찾아온 것.
“오창 화산리 세일하이텍 본사는 물론 오창과학산업단지에 있는 저희 회사 연구소를 꼼꼼히 살펴보더군요. 오창과학산업단지의 입지적 환경은 말할 것도 없고요. 별장에 초청해 준 데 대한 답례로 농가를 개축해 살고 있는 제 집으로 쇼지 회장을 초청했지요. 점심식사를 정성스레 대접했는데…대화 도중에 느닷없이 동행한 린텍 전무에게 ‘오창진출 문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하라’고 지시를 하더라구요. 내심 깜짝 놀랐죠. 그 이후로 린텍의 대응이 눈에 띄게 빨라졌고 여러 일들이 하나하나 현실화하는데 또 한번 놀랐습니다. ‘남을 한번 믿으면 끝까지 믿는’ 일본 사람들의 훌륭한 특성을 배운 계기가 되기도 했구요.”
앞서 말했지만 린텍은 그로부터 7개월 만인 올 4월 충북도와 MOU를 체결한 데 이어 다시 6개월만인 지난 10월 ‘입주 계약’을 최종 마무리지었다. 그리고 현지법인인 린텍 코리아 대표로 박광민 사장을 선임했다. 박 사장에 대한 최고의 신뢰를 표시해 온 것이다.
한 기업인이 쌓아 온 인간적 신뢰감이 외국기업의 한국투자를 이끌어 낸 것이다. 박광민 사장은 “제 꿈은 스스로의 힘으로 반도체용 첨단 점착 소재를 특화시켜 일류상품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라며 “최종목표는 변함이 없지만 아직 따라잡기엔 너무 높은 곳에서 비상하는 린텍의 첨단기술과 신뢰경영의 높은 가치에 반해 동업관계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임철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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