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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문화·예술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쇠고기 좀 그만 먹자는데, 안 되겠니?육식문화로 설명하는 인류의 현재와 미래…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류정환 시인, 충북작가회의

육식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지음
신현승 옮김

나는 육식을 즐기지 않는 편이다. 그렇다고 무슨 신념으로 무장한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그저 고기보다 채소 위주로 차려진 밥상이 편하고, 고기가 없어도 식사하는 데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마도 성장기에 농촌에서 살며 호박, 오이, 가지 따위, 주로 텃밭에서 자란 야채를 재료로 한 반찬을 먹고 익숙해졌기 때문일 터이다. 특별히 그런 식단을 선호해서 그런 건 아니었고, 그것 밖에는 먹을 것이 없었으니 별 수 없이 그랬을 뿐이다. 요즘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고기에 입맛을 들여서 육류가 빠지면 밥상으로 치지도 않듯이, 하다못해 햄이라도 구워 놔야 젓가락을 드는 것처럼, 나도 길들여진 입맛에 붙들려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얼른 옛 기억을 떠올리고 공감할 테지만, 고기는 명절날이나 집안에 큰 잔치가 있을 때에나 구경할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 아닌가. 집집마다 돼지 한두 마리에 닭 예닐곱 마리씩 가축으로 먹이면서도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가벼이 도살하지 않았다. 닭 한 마리를 잡으면 한 집안 식구가 먹었고, 누구네 돼지 한 마리를 잡으면 온 동네가 기름기 도는 고깃국을 맛보았다. 소는 감히 잡아먹는다는 생각을 할 수 없는 동물이었다. 일단 그 값이 엄청났고, 농사가 크든 작든 농가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노동력이자 ‘농사의 신’이었으니까. <육식의 종말>은 그 소에 관한, 아니 인간과 쇠고기에 관한 ‘참혹한’ 보고서이다.

한 때 인간에게 신으로까지 추앙받았고, 가장 오래된 이동 재산으로서 교환의 매개물이었던 소는 어떻게 산업화의 중심에 섰고 통화(通貨)와 상품으로 전락했을까. 인간은 소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육식의 종말>은 자동화 된 공장형 비육장, 세계적인 규모의 축산단지에서 벌어지는 ‘잔인한 관리’ 실태를 고발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발정 약품을 이용해 사육하는 소 전체의 발정 주기를 획일화하여 계획에 따라 송아지 출산을 특정한 시기에 맞춘다거나, 양질의 쇠고기를 얻기 위해 어린 수송아지들을 무자비하게 거세한다든가, 화학약품을 써서 뿔을 태워 없애버린다든가, 최단 시간에 최적의 무게에 도달하도록 성장 촉진 호르몬과 사료 첨가제를 투약한다든가, 비좁고 지저분한 비육장에서 질병을 예방할 목적으로 항생 물질을 과다하게 사용한다든가, 제초제가 포함된 사료를 먹어치우며 고도의 ‘위험한 식품’이 되어간다는 사실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에 속한다. 비육 비용을 줄이기 위해 실험적으로 진행되는 신문·톱밥 첨가 프로그램이나 플라스틱 사료 프로젝트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파리를 잡기 위해 비육장에 맹독성 살충제를 공중 살포하는 것까지도….

육식의 급증으로 인해 일어나는 일 들

저자의 관심은 육식의 역사와 문화, 현대적 축산 단지가 지구 환경과 생태계를 어떻게 위협하는지, 전 세계 쇠고기 문화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육식이 인간의 의식과 사회 구조를 어떻게 이끌고 가는지 고찰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전 세계에서 육식의 급증으로 발생하는 생태계 파괴는 자동차 배기, 공장 폐수, 방사성 물질 들의 폐해를 이미 넘어섰다고 진단한다.

또 육식 관습이 역사적으로 남성 지배를 존속시키고 성별과 계급 조직을 구축하는 데 이용돼 왔으며, 오늘날에도 국가 정체성을 다지고 식민 정책을 발전시키며 인종 이론을 개발하는 데 한몫을 차지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목초지 조성을 명목으로 열대우림이 속절없이 파괴되는 것도 그렇고, 전 세계에서 생산된 곡물의 3분의 1을 소가 먹어치우는 반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기아와 영양실조에 허덕이며 죽어가고 있는 현상도 그렇고, 그런 와중에도 선진국에서는 쇠고기 과잉 섭취로 인한 질병으로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것도 쇠고기 산업과 관련이 있다는 설명은 충격적이다.

2014년 한국인의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은 51.4㎏으로 나타났다. 고기 1인분을 150g으로 계산할 때 한 해 동안에 342인분을 먹은 셈이다. 10년 전에 비해 거의 두 배 가량 급증한 것인데,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육류 소비량이 곧 국력’이라는 이론(?)이 신빙성 있게 받아들여지고 OECD 회원국 평균 소비량인 63.5㎏에 못 미친다는 ‘한탄조’의 경제기사가 줄을 잇는 걸 보면 <육식의 종말>의 내용을 한 비관론자의 기우(杞憂)라고 치부할 수 없을 것 같다.

원서인 <Beyond Beef>가 출간된 것이 1993년이고, 지구상에서 축산 단지들을 해체하고 인류의 음식에서 육류를 제외시키는 것이 향후 수십 년 동안 이루어 내야 할 중요한 과업임을 강조했지만, 20여 년 동안 세계는 담론을 비웃으며 보란 듯이 역행해온 셈이다. 이러고도 인류가 미래를 말할 수 있을까? 내 친구 하나는 <육식의 종말>을 읽고 몇 달 동안 고기를 끊었다. 술을 좋아하는 그에게 그 실천은 혹독한 수행과도 같았다. 사회생활을 지속해야 하는 처지로 결국 백기(白旗)를 들긴 했지만, 그 정도의 염치는 있어야 희망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충청리뷰  043sim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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