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규 제천시장 추진하다 공무원노조 반발에 철회
국민권익위 법개정 권고에 의료단체 찬반 엇갈려

최근 제천시가 의사 출신 보건소장(개방형 직위)을 임용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이근규 시장이 지역보건법 규정에 따라 밀어붙였으나 공무원노조의 반발에 무릎을 꿇는 결과가 됐다. 현재 도내 14개 보건소 가운데 의사 출신 소장은 한 명도 없다. 지역보건법에 의사면허 소지자 우선채용을 명시했지만 예외 규정을 내세워 보건행정직 공무원을 임용했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는 ‘보건소장에 의사 우선 임용은 차별행위’라며 보건복지부에 지역보건법 시행령 개정을 권고한 상태다. 의사 출신 보건소장의 ‘제로지대’인 충북의 현실을 되짚어 본다.
 

국민권익위의 지역보건법 시행령 개정권고에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 회원들.

제천시는 지난 7월부터 관내 의료기관·단체와 민간단체 대표 등 다양한 시민들을 만나 보건소장 임용에 대한 간담회를 가졌다. 7월말 보건소장 퇴직에 따라 후임자를 결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근규 시장은 ‘의사 면허가 있는 사람 중에서 보건소장을 임용한다’는 지역보건법 시행령 13조 1항의 규정에 따라 의사 면허 소지자를 보건소장에 임용하겠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이 시장은 최근 페이스북 글을 통해 “(시민간담회 결과)의료전문지식과 의료계 협력네트워크를 갖춘 의사면허가 있는 보건소장을 임용하는 것이 의료복지 실현과 시민 신뢰도와 만족도가 높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제천시는 지난 21일 의사 출신 보건소장 임명 방침을 철회하고 내부승진 시키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시민 간담회를 통해 의사 출신 보건소장에 대한 신뢰와 만족도를 확인한 제천시가 돌연 입장을 번복한 이유는 무엇일까? 보건소장직은 의료 전문성과 함께 100여명이 넘는 조직을 관리할 행정능력이 필요하다. 의사 출신 보건소장을 찬성하는 쪽은 전문성을 내세우지만 반대하는 쪽은 행정관리 능력을 우선한다. 제천시의 경우 시민 의견수렴 결과 의료 전문성을 갖춘 의사를 선호했지만 행정 공무원 조직내부에서 반발이 거셌다. 보건행정직 6급 공무원들의 마지막 희망(?)인 5급 사무관 보건소장직을 포기할 수 없다는 속내다.

결국 이 시장은 공무원노조의 견고한 벽에 부딪혀 의사 출신 보건소장 카드를 접은 셈이다. 이에대해 페이스북 글에서 “(시민간담회 찬성의견에도 불구하고)지방 중소도시 여건상, 준비없이 짧은 기간에 적임자를 찾기가 어려운 현실을 감안하여 이번에는 보건의료 조직운용 역량이 상대적으로 낫다는 장점을 가진 보건행정전문가를 보건소장으로 승진 임용하고, 다음 기회에 제반 여건을 지속적으로 검토하여 가급적 의사면허소지자를 보건소장에 임용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었다”고 썼다. 막연한 배경 설명으로 얼버무린 채 공무원 내부 반발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보건소장 진료는 옛날 얘기”

의사 출신 보건소장 임명에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제천시공무원노조측은 “보건소장의 업무는 행정관리쪽이고 사실상 진료는 공중보건의가 맡고 있다. 행정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합리적 결정을 내리거나 지휘통솔을 원할하게 하기 힘들다. 의사 출신 보건소장이 자칫 ‘보여주기식’ 정책이 되어서 분란을 키우고 전체 보건행정공무원의 사기를 저하시킬 수 있다. 또한 같은 의사 신분이기 때문에 병의원을 지도단속하는 업무에도 지장을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국가인권위원회가 의사 출신 우선 임용이 차별행위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반대의 명분은 뚜렷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가인권위는 지난 5월 간호협회, 한의사협회, 자치단체 공무원 등의 진정을 수용, 의사를 보건소장으로 우선 임용하도록 한 지역보건법 시행령 제 13조 1항에 대해 보건복지부에 개정을 권고했다. 일반의사 이외의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등 의사면허가 없는 의료인과 보건의료 담당 공무원에 대한 차별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 우선 임용 조항을 삭제할 경우 민선단체장들이 일방적으로 보건행정직 공무원만 선호할 수 있다는 취약점이 있다. 선거를 치러야 하는 민선단체장들은 주민들과 접촉면이 넓은 보건소장을 활용(?)하고픈 욕구가 강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도 국가인권위 권고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청와대 조국 수석이 지난 5월말 ‘국가인권위 권고를 적극 수용하라’고 정부 부처에 지시하면서 내부 기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수용 불가’에서 ‘수용 검토’로 방침을 바꾸고 의견 수렴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결국 의사협회는 지난 7월 보건복지부 세종시 청사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며 반발했다. 이 자리엔 홍종문 충북도의사회장과 안치석 청주시의사회장도 참여했다. 의사협회는 “인권위는 차별을 근거로 개정을 권고하고 있는데, 실제 2015년 기준 전국 252명의 보건소장 중 비의사 보건소장이 더 많은 149명(59%)을 차지하고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하겠다고 말한 일차의료강화, 의료전달체계 정립 등은 보건소가 중심이 되어 해결할 문제인데, 법이 개정된다면 이 모든 것이 비전문가 보건소장에게 맡겨지는 셈이다. 공약이 현실화 되려면 오히려 보건소장을 모두 의사로 교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 전문인 있으면 주민 덕봐”

현재 도내 14개 보건소 가운데 의사 출신 보건소장을 임용한 곳은 한 곳도 없다. 때문에 과거 국회 국정감사에서 전국 유일한 의사 보건소장 ‘제로지대’로 수차례 지적받기도 했다. 서울은 25개 보건소 모두 의사를 보건소장으로 임용했고 인천을 제외한 전국 특·광역시들은 60%대 이상이다. 반면 지방의 경우 경상남도만 60%를 넘고 대부분 지역은 10~30%대의 낮은 임용률을 보였다. 특히 충청북도의 경우 도내 보건소 모두 비의사 출신 보건소장이 근무하고 있었다. 이밖에 충남 16개 보건소 중 2개, 강원도 18개 중 2개, 전남 22개 중 3개, 제주도 6개 중 1개소로 10%대 를 상회한다. 오로지 충북는 14개소 중 0, 세종시는 1개소에 0으로 집계됐다.

이에대해 충북도 관계자는 “도내 보건소, 보건지소, 진료소에 253명의 공중보건의가 진료를 담당하고 있다. 보건소장은 직접 진료 보다는 행정업무가 대부분이다. 현재 14명의 보건소장은 보건행정직이나 간호사 출신으로 공공의료 업무를 맡기에 적합한 분들이다. 국정감사에서 몇번 지적을 받았지만 현실적으로 시군 보건소장의 임명권자는 시장·군수이기 때문에 도가 개입하기 곤란한 문제다. 현재 국가인권위의 권고에 따른 보건복지부의 법개정 여부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청주시 개업의 Q씨는 “국가인권위의 개정 권고는 의료 전문성을 무시한 안이한 판단이다. 메르스 사태에서 보듯이 전염·방역쪽은 의료전문지식과 의료계 협력네트워크가 앞선 의사들이 적임이다. 일본의 경우도 의사출신의 보건소장 임용이 불가능한 경우에 한해 비의사 출신을 임용할 수 있지만 2년이라는 제한기간을 두고 있다. 한번 구멍이 뚫리면 둑이 터지듯 의사 보건소장 임명은 유명무실해 질 것이다.

충북의 경우 시·군 보건소장직을 원하는 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제로지대’가 된 측면이 있다. 임기가 있는 계약직이다보니 단체장이 바뀌면 불안한 신분이다. 급여수준도 낮고 생활 여건이 불편하다 보니 아직 희망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의료시장 포화, 고령화 시대를 맞아 공공의료를 선호하는 경향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제천시의 의사 출신 보건소장 철회 사태에 대해 홍석용 시의원은 “의정활동 경험에 비춰보면 의사냐 아니냐 보다는 적임자냐 아니냐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도에서 전출온 직전 보건소장의 경우 시의회 5분 발언을 통해 ‘제천시민 자살률 낮추기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자 1개월만에 기본계획을 제시했다. 이전에 3명의 보건소장이 거쳐갔지만 그렇게 반응하고 대책을 세운 분은 없었다”고 말했다.

공공의학회는 의사 출신 보건소장 양성을 위해 정부가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사를 포함한 모든 직역을 대상으로 일본은 1년, 독일은 의사직군에 한해 5년의 보건소장 양성과정이 있다는 것. 따라서 우리도 의료인들이 보건소장 직무에 필요한 학습과 경험을 쌓은 뒤 배출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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