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의 이상설, 통영의 윤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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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의 이상설, 통영의 윤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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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9.20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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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이상설과 윤이상, 두 사람에겐 공통점이 많다. 둘 다 대한민국의 완전한 독립과 통일을 원했고 이를 위해 평생을 바쳐 헌신했다. 그러다가 끝내는 고국의 품에 안기지 못하고 이역만리 타향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이한 것도 똑같다. 이상설은 러시아 연해주에서, 윤이상은 독일 베를린에서 각 각 망국의 한과 귀국의 한을 풀지 못하고 서럽게 스러져갔다.

2017년 올해는 이들에게 또 다른 공통점을 부여(?)했다. 100이라는 숫자다. 이상설은 순국 100주년, 윤이상은 탄생 100주년이다. 그러니까 이들의 생몰(生沒)은 꼭 100년 차이다.

한 세기를 가름하는 100으로 맺어진 운명이었을까, 지금 각 각의 출생지에선 두 사람을 향한 후세인들의 기림사업이 동시에 꿈틀거리고 있다. 충북 진천에선 이상설을 위한 선양이 대대적으로 펼쳐지고 있고 경남 통영에선 그동안엔 이름조차 거론하기가 조심스러웠던 윤이상이 어느덧 만인의 가슴으로 받아들여지며 ‘윤이상 기념공원’까지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결정적으로 이미지를 지핀 것은 영부인 김정숙 여사의 최근 행보다.

지난 7월 문 대통령과 G20 정상회의 참석차 독일을 방문한 김정숙 여사는 윤이상의 묘지가 있는 베를린 공원묘지를 찾아 참배하면서 통영에서 가져온 동백나무를 심었다. 두 달 후인 지난 9월에는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강변에 외롭게 서있는 이상설 유허비를 찾아 예를 올렸다. 광복 이후 빨갱이 타령과 종북놀이로 권력을 유지한 보수세력들에겐 이상설 윤이상 두 사람은 결코 환영받지 못할 인물이었다.

우선 이상설은 지금까지도 ‘헤이그 밀사’라는 틀에 갇혀 우리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동안의 역사책과 역사교육이 그를 단순히 ‘고종의 밀지를 받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파견됐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비운의 독립운동가’ 정도로 알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설은 일일이 적시하기조차 버거운 당대 최고의 독립운동가였고 그 격동기에도 나라의 주체와 정체성을 온몸으로 세우고 지키려했던 사상·교육·철학의 태두였던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그에 대한 재조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가 됐다.

그의 순국 100주년에 맞춰 벌이는 진천군의 각종 선양사업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도 이에 맞춰져 있다. 직항로 개설 등으로 최근 충북인들의 블라디보스토크 방문이 갑자기 해외관광의 대세를 이루면서 역시 가장 주목받는 것은 이 곳 연해주를 중심으로 하는 이상설의 독립투쟁사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현지를 둘러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엄청난 죄책감으로 한동안 망연함마저 갖게 된다. 그동안 국가가 그를 너무 소홀하게 대접했다는 자책감 때문이다.
 

사진은 욕지중학교 교가를 새긴 윤이상 기념비


윤이상에게 평생 빨갱이라는 기미를 씌워 탄압한 당시 동백림 간첩단 사건은 박정희 정권의 공안 조작으로 이미 규명된 지 오래다. 세계가 인정하는 음악가였지만 문제의 동백림 사건 이후 윤이상 작품은 이 땅에서 영원히 연주할 수 없는 금지곡이 되었다.

그가 살아생전 남북을 오가며 끊임없이 추구한 것은 통일이다. 그는 정치적 이해와는 거리가 먼 음악을 통해 이를 위한 주춧돌을 놓고자 했지만 국가권력은 그의 음악적 천재성이나 예술가로서의 신념은 깡그리 무시한 채 오로지 단편적인 언행만을 문제삼아 그를 사상범으로 몰아세우며 국제 미아로 만들었다.

이상설과 윤이상, 이들이 죽어서 100년 태어나서 100년 동안이나 눈을 부릅뜨고 지키고자 했던 대한민국은 지금 초유의 위기에 빠졌다. 전쟁의 가능성은 하루가 다르게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고, 처음엔 그러다 말겠지 했지만 이제는 어느덧 닥쳐오는 먹구름에 국민들의 수심도 깊어지고 있다.

정작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전쟁 발발의 우발성이다. 김정은이 지금처럼 막무가내로 도발하는 상황이라면 전쟁은 전혀 예기치 못한 ‘돌발적인 요인’으로 촉발될 수 있다. 현재의 긴장상태로는 남북간 군사적 지휘라인의 결정이 아닌 하급차원의 국지적 충돌로도 전쟁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도 이 점을 의식하며 “그런 상황에 이르지 않도록 막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예를들어 연평도 포격같은 침공행위가 재발된다면 문재인 정부도 더 이상 인내를 할 수 없게 된다. 정권교체와 동시에 이젠 ‘안보팔이’는 없다고 선언했지만 김정은의 계속된 도발로 자칫하면 손도 쓰기 전에 북한의 의도와 변수에 말려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근혜 정권에선 북한의 계산된 도발에도 말폭탄만 쏟아냈지만 계속 안보 프레임에 갇혀 끊임없이 반대파들로부터 도전받는 문 대통령으로선 국민들로부터 요구받는 선명성을 의식해서라도 처신이 쉽지 않다.

이 틈을 비집고 전술핵 배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이는 망나니 김정은이 반기는 자폭행위다. 핵에는 핵으로 맞선다는 논리는 결국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듣기에는 근사해 보여도 이는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다. 현대전을 생각한다면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제3차 대전의 단초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끝’이 된다. 한반도의 비핵화는 전략이 아니다. 한민족의 숙명이고 운명이다. 그래서 어렵다. 6.25에 이은 또 한번의 전쟁은 죽어도 안 된다.

며칠 전 통영 앞바다에 있는 섬 욕지도를 다녀왔다. 산 비탈의 작은 시골학교인 이 곳 욕지중학교 나무그늘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기념비를 보니 전교생이 고작 16명인 이 학교의 교가를 윤이상이 작곡했다. 이곳 뿐만 아니라 통영에 있는 9개 학교의 교가가 모두 윤이상 작곡임을 이제서야 알았다. 고향 통영에서 교편을 잡으며 활동했던 것이 계기라고 한다.

국가권력은 숨도 못쉬게 윤이상을 옥죄었지만 그의 정신은 단 한 번도 그침이 없이 우리와 함께 한 것이다. 그가 100년을 지켜온 그 영혼이 서러워서라도 나는 남과 북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윤이상의 아리랑을 합창할 날을 손꼽아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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