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한영 교수가 고서점에서 만난 동화 얘기 <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백창화 괴산숲속작은책방 대표

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 곽한영 지음 창비 펴냄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들은 우리를 과거로 인도한다. 그것은 꼭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 때문만은 아니다. 그 책을 읽었을 때 우리가 어디에 있었고 우리는 누구였는가를 둘러싼 기억들 때문이다. 책 한 권을 기억한다는 것은 곧 그 책을 읽은 어린아이를 기억하는 것이다.”(노란 불빛의 서점/루이스 버즈비)

한 권의 책은 하나의 추억을 불러온다. 어렸을 때 읽은 책 한 권은 나도 모르는 사이 성인이 되었을 때 사고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내 삶을 결정한다. 어른이 되어서 어린 시절 동화를 다시 만나면 즐겁고도 감회가 남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은 저자인 곽한영 부산대 교수의 어린 시절을 환기하는 책이면서 동시에 독자들에게도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저자는 2015년 안식년을 맞아 캐나다에 방문 교수로 갔다가 우연히 동네 헌책방에서 <키다리 아저씨> 초판본을 발견한 뒤 동화 초판본 수집의 취미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사들인 책들의 출판 유래를 뒤적이고, 작가의 삶을 탐구하면서 그는 점점 더 오래 전 동화의 세상에 빠져들어갔다. 그리고 그 세상 속으로 우리를 불러들이고 있다.

그가 펼쳐 내놓고 있는 책의 면면을 살피다 보면 저자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작은 아씨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톰 소여의 모험, 피터팬, 보물섬, 빨간머리 앤, 하늘을 나는 교실, 안데르센 동화집, 곰돌이 푸, 닐스의 모험. 이 책들 중 어린 시절 우리를 꿈의 세상으로 이끌지 않은 책은 하나도 없다.

“가족과 공동체의 테두리가 그리 단단하지도, 안정적이지도 못했던 어린 시절의 저에게 이야기들은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작은 아씨들도 바로 그런 존재였지요. 책 표지를 열면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 자신도 그 가족의 한 구성원이 되어 보호받고 위로받으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책과 책을 둘러싼 이야기들

그렇게 저자의 어린 시절을 위로했던 책의 초판본을 헌책방에서 만나고 그는 다시 한 번 책을 읽어 내려간다. 이때의 독서는 단순히 내용을 읽는 독서가 아니라 책과 책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들에 대한 접근이다.

<작은 아씨들>의 작가인 루이자 메이 올컷이 동화와는 달리 집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하녀처럼 일만 했다는 이야기, 딸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자 돈이 될 소설을 더 많이 써내라고 채근하던 아버지 이야기, 평생을 가족의 빚과 병고에 시달렸던 작가의 이야기 등 읽을거리는 풍부하고도 재미나다.

우리가 사랑했던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이 사실은 1800년대 후반 빅토리아 시대에 아동 도서 출판의 붐을 타고 마크 트웨인이 돈 좀 벌어보려고 아동소설로 쓴 것이라든지, ‘피터 팬’의 모델이 되었던 소년은 평생 이 작품으로 인해 삶의 트라우마를 짐지게 되고 결국 알콜 중독으로 지하철에 뛰어들어 자살을 했다는 뒷이야기 등은 동화 속 세상과 현실의 간극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 같아 마냥 재미있게 읽을 수만은 없는 씁쓸함도 남긴다.

시대를 뛰어넘어, 국경과 민족을 뛰어넘어 고전이 된 동화들. 세계인의 가슴을 울리고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꿈과 환상을 심어주었던 작품과 그 작품을 탄생시킨 작가의 삶. 어쩌면 녹록지않은 어두운 현실에 간절한 한 줄기 빛을 열망하는 마음이 동화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래서 삶이 결코 환상이 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우리도 여전한 어두움 속에서 동화를 꿈꾸고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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