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군 안남면 ‘작은음악회’는 모두가 주인공
남녀노소 노래 부르고 춤추고 대동놀이 한다

<정순영의 일하며 생각하며>
정순영 옥천순환경제공동체 사무국장

‘흥’이나 ‘신명’은 도시에선 쉽사리 느끼기 힘든 농촌 지역의 소중한 정서일 것이다. 어느 학자는 이 ‘신명’이라는 것에 대해 ‘나름의 삶의 규율 속에서 일상을 주고받으며 어려운 삶의 조건 내에서도 희로애락의 삶을 공유하는 오랜 인간적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라 정의했다. 과거 농촌 마을이 사람으로 북적이던 시절에는 마을마다 꽹과리 선수가 있어 작은 경사만 있어도 신명나는 풍물 소리가 담장을 넘어 이웃마을까지 들리곤 했다 한다.
 

지난해 열린 14회 작은음악회. 안남면 둥실풍물단은 흥겨운 길놀이로 음악회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농촌에서 이러한 흥과 신명을 느끼기가 어려워졌다. 어머님들 말씀을 빌리자면 ‘깽매기(꽹과리)’ 소리는커녕 사람 소리 듣기도 힘들어진 것. 변해버린 농촌의 현실은 축제에서마저 주민들을 객(客)으로 바꿔놓은 듯하다. 언제부턴가 도시에서 더 신나게 사용하는 ‘마을’과 공동체, 또 그곳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축제들을 곁눈질해 보면 질투가 날만큼 아이디어와 생동감이 넘쳐난다.

하지만 농촌은 축제를 준비할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언제부턴가 축제란 그저 이벤트 회사가 무대 위에 펼쳐놓는 공연을 주민들은 객석에 가만히 앉아 보며 박수만 쳐야하는 행사로 자리매김해 버렸다. 워낙 적적한 시골이다 보니 어르신들께 그런 볼거리라도 있는 게 어디냐 싶으면서도, 어쨌든 나처럼 젊은 사람들에겐 그런 형식의 축제는 굳이 참여할 이유도, 구경하러갈 이유도 없는 축제이고 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사는 안남에 ‘안남면민과 함께 하는 작은음악회’가 있다는 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안남에선 매해 가을이면 전체 주민의 축제인 작은음악회가 개최되는데 오는 9월30일 벌써 15회를 맞은 음악회가 돌아온다. 작은음악회에선 주민이 무대 위 주인공이자 객석의 관객이고 축제 진행도 다 주민들의 힘으로 이뤄진다. 엄청 세련되고 화려한 공연이 무대에 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작은음악회가 열리는 날의 안남면 잔디광장에는 오랜 시간 ‘희로애락의 삶을 공유’한 안남 사람들만의 흥과 신명이 꽃처럼 피어난다.
 

지난해 음악회에서 망가짐도 불사하고 7080댄스를 선보이며 음악회의 흥을 돋운 안남주민들의 모습.
음악회의 꽃인 안남어린이들이 깜찍한 율동을 선보이는 모습

열악한 문화 여건 속에 행동개시

2002년 전국 각지에서 주민자치센터 시범운영이 시작됐다. 하지만 오랜 시간 관 주도 행정이 뿌리를 내린 상황이라 행정기관과 동등한 입장에서 주민이 자치센터를 운영해 나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안남면은 그 어느 지역보다 주민자치센터 운영에 적극 참여하며 다양한 활동들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당시 주민자치센터 운영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주민들에 따르면 대다수 지역에서 초기 주민자치센터는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정도의 활동을 했지만 안남은 ‘안남식의 운영을 주장’했다고 한다. 지역개발분과, 교육문화분과, 여성복지(환경)분과 등의 분과를 구성하여 면에서 필요한 일들을 주민 주도의 독립된 활동으로 추진해 나간 것.

그 일환으로 2003년 10월25일, 안남면 주민자치센터 주최 제1회 ‘안남면민과 함께 하는 작은음악회’가 개최된다. 조금 서투르고 조금 더 품이 들더라도 스스로가 작은음악회의 내용을 기획하고 채우면서 ‘안남만의 문화를 창조하자’고 시작한 것이 벌써 15년을 이어온 것이다.

처음 작은음악회를 준비할 때에는 주민들 간 미묘한 갈등도 있었다고 한다. 누가 음악회를 주도적으로 준비할 것인가를 두고 주민단체 간 성향에 따라 약간의 힘겨루기가 있었던 것. 하지만 이러한 갈등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고 현재는 주민자치위원회를 주관기관으로, 면내 대다수 주민조직들이 참여해 작은음악회를 함께 준비하고 있다.
 

2003년 처음 개최된 안남면민과 함께 하는 작은음악회

9월 30일 잔디광장으로 오시라

어찌 보면 안남면민과 함께 하는 작은음악회는 그리 별다를 것도 없다. 안남면에서 열리는 축제이니 당연히 안남 사람들이 주인공이고 관객도 당연히 안남 사람들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각자가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공연을 준비하고 공연이 아니라면 노래자랑에서 신나게 노래 한 자락 뽑는 것으로 축제의 주인공이 된다.

축제의 먹을거리를 마련하는 것도 안남 사람들이고 잔디광장 주변의 주차 정비부터 축제 후의 청소와 뒷정리를 하는 것도 안남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래서 특별하다. 우리 딸내미·아들내미가 무대 위에서 펼치는 공연을 볼 수 있고 어머니학교에서 노년의 즐거움을 찾은 우리 어머님의 흥겨운 노래공연을 볼 수 있다.

멋지게 풍물복을 차려입은 우리 남편과 아내의 풍물 공연을 볼 수 있고 우리 마을 이장님의 노래 솜씨도 확인할 수 있다. 축제를 구경하다 배가 고프면 마을 아주머니들에게 가서 부침개 달라, 떡 좀 달라 하면 된다. 축제의 흥이 무르익어 대동놀이가 벌어지면 이제는 나도 주인공이 돼서 어깨춤을 추며 신명나게 한 바탕 놀면 된다. 내빈·외빈 그런 것도 없다.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며 우리 모두 고생 많았다고 안남 사람들 서로가 서로를 대접해주며 다함께 즐기는 축제의 장, 작은음악회의 특별함은 ‘모두가 주인’이라는 점에서 나오는 것임이 분명하리라.

바로 그 특별한 음악회에 함께 하고픈 분은 9월30일 안남면 잔디광장으로 놀러 오시라. 올해는 음악회에 맞춰 배바우장터도 열리고 안남초등학교 학예회와 혼인한 지 60년이 넘은 안남 어르신들의 회혼례도 합동으로 열린다 하니 그 어느 해보다 볼거리 많은 음악회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이 글의 내용과 사진은 글쓴이가 지난해 안남의 이야기를 모아 발간한 책 <안남의미>에서 일부를 간추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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