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화 혹은 유실 우려 ‘구지표’ 집중 분석
음성 사정리 동학군 항일의병 묘소 발굴조사
‘동학군묘’ 구전과 ‘항일의병묘’ 학설 교차

호서문화유산연구원 주선웅 연구관과 이상정 음성군의원이 발굴 현장에서 의견을 나누고 있다. 봉분을 걷어낸 후 '구지표'가 드러나 있다.

(음성타임즈) 음성군 음성읍 사정리 강당말 옹대동 60-1 일대에 안장된 대형 묘소를 두고 ‘동학군묘’라는 구전과 ‘항일의병묘’라는 학설이 교차하는 가운데, 역사적 진실을 위한 발굴이 시작됐다.

'2017년 음성 사정리 동학군 항일의병 묘소 발굴조사'가 13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진행된다.

이 묘소는 근대민족운동 시기에 전국적인 반봉건, 반침략운동으로 전개된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했던 동학농민군의 묘소 또는 항일의병 묘소로 추정되고 있다.

묘소의 규모는 6기의 봉분으로 된 집단묘소이며 큰 묘소의 봉분이 높이 5m, 폭 10m, 길이 20m 정도이다.

사정리 마을 주민들에 의하면 이 묘소는 ‘동학군묘’로, 동학농민혁명 때 마을의 소를 잡아 먹는 일본군들에게 주민들이 항의하자, 일본군이 마을에 불을 질러 가옥 3채만 남고 모두 불에 탔다고 한다. 이 때 마을 강당도 불에 전소된다.

그래서 동학군과 진압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는데, 이 때에 희생된 동학군의 묘소라는게 주민들의 구전이다.

다른 가설도 제기되고 있다. 이 묘소는 항일의병 묘소라는 설이다.

국내 항일운동독립운동사적지 조사보고서 충청북도편에 의하면 이 묘소의 주변 지역인 음성읍 사정리에서 실제로 1907년 9월 17일부터 19일까지 3일간 의병과 일본군 사이에 전투가 있었는데 이 전투에서 희생당한 6명의 의병이 이곳에 안장되었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이번 발굴작업은 호서문화유산연구원이 맡아 진행한다.

음성군 관계자는 “이번 발굴 작업의 결과를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면서 “의미있는 결과가 나오면 학술대회 및 전문가들과 의견을 개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화재 지정 여부 등 어떤 추론도 제기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라며 여전히 신중한 입장이다.

발굴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주선웅 연구원

 

운명의 1907년 9월 19일, 그 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지난해 6월 (사)음성향토사연구회(회장 김영규) 주관으로 열린 '음성지역 동학농민혁명·항일의병 학술대회'에서 의미 있는 의견이 제시된 바 있다.

당시 박걸순 충북대 교수는 '한말 음성지역의 사회경제적 동향과 의병 투쟁'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음성의 의병 투쟁은 전기 의병인 1896년부터 전환기 의병인 1912년까지 17년간 최소 30회 이상이 기록상 확인 된다”며 “무극장터는 동학농민운동 때부터 농민군과 의병의 주요 활동 거점이 됐다”고 밝혔다.

특히, 박 교수는 1907년 9월 19일 수 백명의 의병이 일본군과 3시간여에 이르는 혈전 끝에 6명의 전사자가 발생한 음성읍 사정리 강당말 전투를 상세히 고찰했다.

전투는 사정리에서 300여 명의 의병이 일본군 족립지대(足立支隊) 이궁(二宮) 소대와 벌인 혈전이었다.

박 교수는 "동학군 또는 의병 무덤으로 전해지는 강당말의 무연고 묘는 자료의 기록만 놓고 보면 사정리 전투에서 전사한 여섯 분의 의병들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된다"며 그 연관성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구전과 향토지도 동학인지 의병인지 확실히 정립되어 있지 않다”며 일부 시굴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반면 김양식 충북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시굴한다고 해도) 분골의 연대가 추정일 뿐”이라며 동학군묘 또는 항일 의병묘의 분간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폈다.

김 위원은 “음성지역에서 동학군의 집결과 전투, 해산 등 일련의 과정을 서사화·스토리텔링화한 문화콘텐츠를 만들면 의미가 있을 것”이라며 ‘동학의병묘’ 명칭 사용을 제안하기도 했다.

아울러 김 위원은 음성지역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로 황산(삼성면 능산리), 무극장터(현 금왕장), 되자니마을(금왕읍 도청리), 동학군묘(음성읍 사정리 강당말), 이헌표 고택(음성읍 용산리) 등 5곳도 열거했다.

그는 이곳을 향토문화유적으로 지정해 법적·제도적으로 보존·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3일 '2017년 음성 사정리 동학군 항일의병 묘소 발굴조사'에 앞서 제를 드리고 있는 모습

 

고귀했던 순국의 흔적을 찾아 ‘舊地表(구지표)’

호서문화유산연구원 주선웅 연구원은 먼저 “인골이나 유품을 찾을 수 있으면 가장 좋은데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면서 “당시 사정상 제대로 시신처리를 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100년 정도 흘렀기 때문에 산화되거나 쓸려 내려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주 연구원은 “조상들이 밟고 다녔던 땅인 구지표를 찾아 당시의 흔적을 찾아내야 한다”며 “100년 동안 쌓인 흙을 없애고 의미 있는 흔적이 나오면 집중적으로 조사해 나갈 것”이라고 부연했다.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경우의 수’에 대해서는 “구지표 위에 시신들을 안치한 후 봉분을 올린 경우에는 땅을 파지 않았기 때문에 구지표 면에서 흔적을 찾아야 하고, 땅을 파고 그 안에다가 매장한 경우에는 굴착한 흔적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유골은 풍화작용에 의해 산화될 수도 있고 유실될 수도 있지만 묘라는 흔적은 확인 할 수 있다”며 “충분한 정보를 찾기 위해 구지표상의 흙 성분을 분석하는 작업을 해 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번 발굴 작업은 약 6일간 진행되며 다음달 1일까지 보고서가 작성된다. 현재 6기 봉분 중 1기를 대상으로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나, 때에 따라 전체 봉분을 조사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처참했던 흔적을 ‘구지표’는 알고 있을까?

음성군의회 이상정 의원은 “전국적으로 동학농민군의 실존 무덤은 거의 없고 대부분 가묘 형식으로 존재하고 의병묘도 드물다”고 전제하고 “유골을 발견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상황인 것 같다. 발굴 작업을 좀 더 확대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제시했다.

이 의원은 “우선 보고서를 기다려 보고, 전문가들의 추가 조언을 받아 정확한 사료를 발굴해 나가야 할 것”이라며 “항일운동의 선각자였던 우리 조상들의 순국을 절대로 헛되게 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정 의원은 추석을 앞두고 음성군농민회의 협조를 받아 6기 봉분에 대한 벌초 작업을 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한국 근대사의 소용돌이 속에 동학농민운동과 의병투쟁의 물결은 거셌다. 음성지역이 항일운동의 전국적인 성지(聖地)로 부각될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고귀했던 순국선열의 흔적을 찾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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