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내 흐른 물은 옥산을 이루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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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내 흐른 물은 옥산을 이루고<3>
  • 충북인뉴스
  • 승인 2017.09.1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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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식의 ‘톡톡 튀는 청주史’

안동권씨와 백록서원

다시 물길을 따라 오르면 환희리에 이른다. 옥산중학교 뒷길로 갈 수도 있는 이곳은 안동권씨들의 터전이다. 그들도 임진왜란 후 청주에 들어왔으나 그보다 앞선 인물을 잊지 않았다. 환희리 마을 가장 높은 곳에 백록서원白鹿書院이 있다. 처음 들어온 권필중權必中 형제의 할아버지인 권상權常, 1508~1589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권상은 1760년(영조 36) 월오동의 봉계서원鳳溪書院에 함께 모셔졌다가, 1929년 옛 자리에 다시 모셨다. 권상의 호를 딴 ‘남강사南岡祠’라 사당을 세우고 앞쪽에 강당을 세워 오늘에 이른다.
 

백록서원은 청주지역 남인계 서원이다. 남강사란 사우와 앞쪽에 강당을 두었다. 조선 전기의 인물인 남강 권상을 모시고 있다.


봉계서원은 고령신씨의 문중서원이다. 지역의 남인을 대표하는 문중으로, 안동권씨 역시 마찬가지다. 지역에서 우세를 점하던 노론에 맞서던 남인계의 동향을 엿볼 수 있다.

병자호란의 순절 충신

옥산을 지나는 북쪽 길은 천안에 거쳐 서울로 향한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많은 의병진이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광주 무계에서 월등한 청군의 무력 앞에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다. 이때 우리 지역의 두인물도 순절한다. 3대 창의가로 유명한 박동명朴東命과 남편을 따라 죽은 부인의 절의로 함께 알려진 강득룡姜得龍이다. 이들은 역시 나라에서 정려를 내려 충절을 기리고 있다. 강득룡 부부 충렬각은 현재 공사가 한창인 테크노폴리스 바로 옆 화계동에 있다.
 

병자호란 때 순절한 강득룡과 따라 죽은 부인 경주김씨의 충렬문이다. 1644년 벼슬이 내려지고 1654년 정려를 세우게 하였다. 1683년에는 벼슬이 더하고 충정忠貞이라 시호가 내려졌다.


의병장 박춘무朴春茂의 아들인 박동명은 광주에서 순절한 후 시신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애마가 주인의 혼을 불러 이곳 옥산까지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지금도 옥산에서 천안으로 향하는 고개를 몽단이고개, 접지고개라고 부른다. 꿈이 끊겼다는, 곧 혼을 모셔오다 여기서 멈추었다는 몽단이 전설. 그리고 말굽을 떼지 않고 그대로 굶어 죽었다는 의마의 이야기. 마침 고개 가까이에 주인공 박동명의 묘가 있고, 고개 아래에는 의마총義馬塚이 있다. 원래 둥근 봉분을 얼마 전 후손들이 말 모양으로 조성하였다.
 

몽단이고개 아래, 박동명의 묘소 앞에 있는 의마총은 박동명의 순절과 혼을 모셔온 애마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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