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개·밤고개·수름재·이티고개·피반령 등 고개에는 사연이 있어
청주시내 다리 모두 밋밋…도시의 상징물 되도록 적극적 관심 필요

청주길 사용설명서(10) 고개와 다리
윤석위 시인, 청주흥덕문화의집 관장

청주서 조치원사이엔 높은 고개가 없다. 청주대교에서 사직동 사창동으로 가는 고개를 ‘내수동고개'라고 불렀다. 지금은 시계탑으로 불리는 시내버스정류장이 있는 곳이다. 시계탑은 1960년대 말 경부고속도로가 준공되면서 내수동고개를 조금 낮추어 4차선 도로를 뚫었는데 그때 어느 봉사단체에서 시계를 단 탑을 세운 것으로 기억한다.

모충동에서 충북대로 넘어가는 고개는 배고개(배꼬개)로 불렀는데 성화동으로 가는 이 고개너머에는 공동묘지가 있었다. 전쟁 무렵 학교를 다녔던 분들의 얘기에 따르면 하굣길 묫등에 앉아있던 여우를 보았다고도 했다.
 

서문다리는 물고기 등뼈를 연상시키는 철골작품을 설치해 명물이 됐다.

이티고개, 청주에서 가장 높은 고개

진천나들이는 밤고개(방고개)로 불렀다. 어린 우리들은 높지 않은 (고개도 아닌 것 같은) 낮은 언덕배기에 천주교회가 있고 고개너머 사뜸마을, 지금은 이름이 사천동이 된 사뜸 개울가 친구집에 놀러가기도 했다. 사뜸은 빗겨 흐르는 개울가 벌을 말하는데 강원도 횡계처럼 빗기내가 횡계가 되듯이 한자이름으로 변할 때 사천이 되었다.

충주나들이에 있는 고개는 수름재다. 수름재를 지나고 먹뱅이나 두름벌 끄시름터를 지나야 내수에 닿았다. 수름재는 마시는 술과 관계가 있다 해서 주중동의 근거가 되기도 했는데 이름을 작명한 이의 상상력이 빈약하기 견줄 짝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먹뱅이는 묵방(먹을 만들던 공방)리가 되고 두름벌은 두루미벌판이라는 말인데 점잖게 학평리가 되었다. 끄시름터는 먹뱅이와 가까운 마을로 먹의 재료인 소나무그을음을 채취하던 곳일 터. 먹은 과거 중요한 학용품, 필기도구로 그을음과 아교를 섞어 만들었다. 끄시름은 그을음의 청주지방 방언이다. 오래전 내수근처에서 청주농업학교까지 걸어다녔다는 아는 형님을 나는 끄시름터 촌영감님으로 놀리기도 했다.

청원군과 합쳐진 후 청주의 고개가 높아졌다. 제일 높은 고개는 증평에서 청주시 미원면으로 넘어가는 이티고개로 해발 370m다. 사실 옛길로 치자면 상당산성 옛길의 상봉재가 380m로 가장 높은 길이지만 인적드문 길이 이젠 잊혀졌다. 이 고개는 구녀산성 초입에 있다.

두번째 높은 고개는 가덕인차에서 보은 회인으로 넘어가는 해발 360m 피반령이다. 염티와 피반령 살티 머구미고개 상봉재 이티는 한줄기 산길로 이어진다. 피반령 마루에 세워진 안내 비석에는 뜬금없이 가마꾼의 무릎에서 흘러내린 피가 피반령이라는 이름의 뜻으로 그 유래가 새겨져 있다. 우리나라엔 핏재, 피앗재, 피앗골 등의 지명이 많다. 아마도 피밭재를 잘못 읽은 듯 하다. 곡식인 피를 심을 정도로 험한 산골 고갯길을 뜻한다고 해석하는 학자들이 대부분인데 말이다.

고개이름엔 그 며칠을 걸어 고개를 넘으며 겪었을 사람들의 땀과 눈물 고통도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이티는 이틀고개, 살티는 사흘고개가 되고 미원에서 괴산으로 넘는 할티는 10(열)고개가 된다. 열고개 아래에선 뜨거운 물이 나오기도 한다. 고개이름엔 뭔가 신비함이 있다는 생각도 해 본다. 십년 전 나와 친구들이 함께 넘었던 네팔 마나슬루봉 아래 라르케패스(고개)는 해발 5230m였다. 할딱거리며 넘던 그때가 그립다.
 

사직동에서 사창동으로 가는 고개는 지금 시계탑으로 불리나 전에는 내수동고개라고 했다
도로 중앙에 시계탑이 있다.

메디슨카운티의 다리가 왜 없나

무심천에는 다리가 많다. 다리는 하천위에 세워져 사람과 물자를 물에 젖지 않고 안전하게 건네주는 시설이다. 1960년까지 무심천의 다리는 기차철교 한 곳과 모충동 수곡동 사직동 운천동을 잇는 다리 네 곳이 있었을 뿐 나머지 다리는 모두 1970년 이후 세워진 것들이다. 청원군지역이던 무심천상류의 작은 다리를 제하고 모두 19개다.

상류부터 장평교 방서교 용평교 수영교 청남교 모충인도교 모충대교 남사교 서문다리 청주대교 제1운천교 흥덕대교3 제2운천교 송천교3 충북선철교 까치내교까지 스무개나 있다. 모충대교 옆에 인도교로만 쓰이는 옛 다리가 있고 청주대교 옆엔 역시 인도교로 쓰는 서문다리가 있다. 흥덕대교에는 차량전용 고가교와 하부에 두개의 다리가 모여 있고 송천교도 우회도로 교량아래 두개의 교량이 놓여져 있다. 물론 큰 다리들 사이에 징검다리까지 합하면 다리의 숫자는 더 많아진다.

서문다리는 낡아서 인근에 4차선을 만들며 놓은 청주대교를 사용하면서 인도교로 쓴다. 한때 풍물시장이 서기도 하다가 물고기 등뼈를 연상시키는 철골작품설치로 청주명물이 되었다. 청남교는 육거리시장과 이웃한 다리로 육거리시장길 아래에 묻혀있는 남석교와 청주읍성의 남문처럼 청주의 남쪽 출입문을 상징한다. 이 다리를 새로 놓기 전 옛 다리위에 꽃을 심어 장식한 때가 있었다. 이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이 아직도 꽃다리로 부르기도 한다. 인근의 지명과 가게이름에 ‘꽃다리’라는 이름이 여럿 남겨져 있기도 하다.

그동안 ‘다리를 놓다’를 건설교통부 표준품셈에 따라했기에 청주의 다리는 무미건조하다. 다리를 놓는 일은 잇는다는 말이다. 꽃으로 다리를 놓거나 편지로 다리를 놓거나 서로를 이어주는 다리는 삶에서, 인간의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청주에 놓여진 다리들은 모두 한결같이 단순하고 밋밋하다. 멋진 디자인을 교량에 적용하는 것이 큰 돈이 드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도시의 상징물이 되도록 교량건설에 관심을 가진다면 도시전체가 달라질 수도 있다. 미라보다리나 런던브릿지나 작은 나무다리인 미국 메디슨카운티의 다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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