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있던 공간들 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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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있던 공간들 다 어디로 갔을까
  • 충청리뷰
  • 승인 2017.09.06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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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외과·석내과·리라병원 등 당시 이름있던 병원 모두 문닫아
중앙극장 근처 대림장여관에서는 미국 평화봉사단 교육기관 역할

청주길 사용설명서(9)
윤석위 시인, 청주흥덕문화의집 관장


가을은 천고마비니 결실의 계절이니 수식어가 많은 계절이다. 정말 말이 살찌는지는 모르겠으나 하늘은 점점 높아간다. 9월에는 갖가지 문예행사가 몰린다. 9월 첫 주말부터 각종행사의 시작으로 한해 열매맺기와 거둠의 시절이 왔음을 알리는 것이다.

지난 9월 2일과 3일 양일간 청주성탈환 425주년 기념축제가 시내 곳곳에서 열렸다. 나는 2009년 청주성탈환축제 행사의 총감독을 맡아 사직4거리부터 상당공원까지 큰 길을 오후 내내 막고 하는 줄댕기기행사를 처음 시작했다. 중앙공원에서는 서문전투를 재현하기도 하는 등 각종행사를 꾸몄다. 그런지 8년이 지났다. 당시 성을 쌓는 대신 높이 5m 길이 60m짜리 대형 성곽사진을 성안길 입구 북문 거리의 건물에 걸었고 북잡이들이 200여개의 대형 북을 울리며 시가를 행진하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2009년 청주성탈환축제 때 처음 시도했던 줄댕기기 행사


이 때부터 계속된 청주 큰줄댕기기행사는 당진 기지시줄다리기, 창녕 영산줄다리기놀이와 함께 전국 3대 큰줄당기기행사로 자리잡게 되었다. 다만 농촌의 인구가 줄고 있어 몇달 전부터 새해 줄을 꼬는 놀이 등 세심한 주민통합행사가 아쉬운 대목이다. 그동안 청원군과 청주시가 통합되어 구청이 4곳이 되었다. 무심천을 동서로 나눠 두 지역이 겨루던 것이 이제는 4곳으로 커져 구청별 겨루기 놀이가 되었다. 이젠 청주를 대표하는 연례 축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석내과 건물 외벽에 ‘임대’ 안내문

옛 청원군청 앞길은 십년동안 크게 변한 게 없으나 도청앞 청주세무서 건물은 헐려 5층 규모의 대형 상업시설로 바뀌고 있다. 남궁외과병원은 병원을 운영하던 남궁윤박사가 돌아가시고 난 후 1995년 폐업하고 ‘남궁병원 터’라는 이름만 건물앞에 작은 표지로 남았다. 그러더니 2013년 다른 사람이 ‘남궁병원’이라는 이름으로 개업해 현재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남궁외과병원은 1983년 종합병원으로 승격된 청주최초의 종합병원이었다. 북문로 시청앞에 있던 신외과병원과 함께 청주의료계를 끌고 가던 병원이었다. 이들 병원을 이끌던 두 분은 동범 최병준선생과 청주로타리클럽의 창립멤버였는데 매주 열리는 주회마다 막내 회원인 내게 듬뿍 술잔을 건네기도 하던 청주의 큰 어른이었다.
 

대를 이어 운영됐던 석내과 의원은 문을 닫고 ‘임대’ 매물로 나왔다.


도청근처에는 청주의 중심답게 병원이 많았다. 도청정문 건너 청주방사선과의원이 있었다. 도청 건너 시내쪽으로는 석영철원장의 석내과의원이 중화요리 태동관과 잇대어 있었는데 그의 아들 석준이 대를 이어 석내과를 운영해 왔다. 이 곳은 인근 도청의 긴급진료소역할을 했다. 얼마전 갑자기 그의 별세소식을 들었다. 산악구조대와 해외원정대 등에 헌신적인 도움을 주었다며 그의 지인들이 아쉬워했다. 주인잃은 석내과 건물 외벽에 붙은 '임대' 안내문이 2대에 걸친 한시대의 마감을 보는 듯하여 더욱 감회가 깊다.

외과병원을 대신하던 접골원과 산부인과가 없던 시절 산파들도 도청근처에 여럿 개업하고 있었다. 중앙공원 동쪽에 청주 첫 산부인과가 생긴 것은 70년대로 여성 개업의 라정복원장이었다. 남편인 천금석유대표 이만석씨와 라정복씨가 율량동에서 진천으로 가는 언덕에 '리라병원'을 세운 때가 1990년쯤 이었을 것이다. 부부의 이름을 딴 리라병원은 지금은 소유주가 바뀌어 천주교재단 청주성모병원이 되었다.

이제는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급 병원이 많아지고 주차시설이며 진료시설이 병원선택의 중요요소인지라 큰 병원들은 시 외곽의 너른 부지를 택해 옮겨갔다. 시내의 주요 병원은 작은 규모의 성형외과와 치과가 주를 이루고 있는 형편이다.

청주를 기억하는 사람들 초청하자

내년부터 새 청주시청사 건립이 추진되면 주변은 뽕밭이 푸른 바다가 되듯 달라질 것이다. 청주병원과 그 뒷편 농협건물이 헐릴테고(이미 농협건물은 철거를 위한 가림막이 세워졌다) 병원 뒷쪽에 붙어있는 조그마한 여관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새로 복원된 청주역 박물관 건너편의 예식장이던 건물과 설계사무소 여행사 꽃집이 들어있는 3층 건물도, 그 옆 역전파출소를 고쳐 연 커피집도 사라질 것이다.
 

미국 평화봉사단 교육기관으로 활용됐던 대림장여관은 지금 타임모텔로 바뀌었다.


이미 없어진 중앙극장근처에는 대림장여관이 있었다. 70년대초 이 여관을 미 대사관이 임대해 미국평화봉사단(peace corps)의 교육기관으로 쓴 적이 있었다. 이곳은 한국으로 파견되는 미국봉사단원에게 한국어 등의 기본교육을 시키던 곳으로 여기서 몇 달간 교육을 마친 대원들을 전국각지로 보내던 봉사단진출 전초기지였던 모양이었다. 나는 한 이태동안 이들 대원들과 교유하기도 했다. 그들과 동년배들이었고 교육상 서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40년전 이야기다. 카리 진 쿠글러, 나는 아직 그녀의 이름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 주인이 몇 번 바뀌던 대림장여관은 타임모텔로 이름을 바꾼 채 아직 그 자리에 서 있다.

그때 청주에서 교육받던 봉사대원 중에는 몇 년전 한국대사로 왔던 캐슬린 스티븐스도 있었다. 이곳을 기억하고 있을 그들도 이젠 70이 다 되었을 것이다. 청주시에서 이들을 초청해보면 어떨까? 이들은 모두 자신들이 경험했던 한국, 특히 청주를 나처럼 보고 싶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지상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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