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진 「정완이」

시장 골목 안에서
인기 만점인 박정완이는
즉석 두붓집에 둥실 떠오른
뽀얀 달덩이 같은 세 살배기

아직 말이 더딘 그 애의 외가는 멀고 먼 베트남

갓 서른이 되었을까,
순두부 값을 물으면
“쬰 오백 원이예요”라고 대답하는
자그만 체구의 그 애 엄마는

1972년 6월 어느 날
그의 조국 해방 전선 트란반에서
네이팜탄으로 불붙은 옷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울부짖던 아홉 살 난 여자아이
그 슬픈 사진을 그는 아는지

폭탄 터진 웅덩이마다

넘치는 슬픔
가슴 뚫린 총알구멍으로 새던 바람

왜 그랬을까,
이렇게 몸 섞고 마음 섞을 양이었으면

이제는
디엔비엔푸, 구치터널, 호치민의 이름으로
꼭 한 번은 가보고 싶은 곳
아리고 쓰라린 역사의 나라

작년 겨울 나보다 먼저 다녀온 정완이가
와락 가슴에 안겨온다

─ 조원진 「정완이」 전문(인터넷 Daum 카페‘2월시’에서)
 

그림=박경수

베트남 전쟁이 종말로 치닫던 1972년, 알몸으로 울부짖던 한 소녀의 사진은 그 해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고, 당시 지구촌의 반전과 평화에 대한 매우 강렬한 여론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시인은 시 쓰면서 틈틈이 아내가 경영하는 채소가게 일을 도와줍니다. 바로 시인의 아내 옆 가게가 정완이 엄마가 하는 두붓집이구요. 정완이가 시장 안에서 가장 잘 따르는 사람은 물론 시인이지요. 늘 할아버지, 할머니라 부르는 정완이를 시인 부부는 정말 손자처럼 온갖 정성을 바쳐 사랑합니다. 보은읍 재래시장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정완이의 모습은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됩니다. 다문화가정과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많은 문제들이 노정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시장 사람들의 정완네 가정에 대한 마음 씀씀이는 그의 시만큼이나 따뜻하고 깊습니다.

예술단체 일로 가본 베트남, 그곳 사람들의 편안하고 다정했던 얼굴과 더불어‘ 세상을 용서하는 기술’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이 시는 다문화가정에 대한 헌사이며, 베트남을 향한 곡진한 회한의 노래입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