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천 「봄비」

그대로 인하여
나는 비로소 나를 소망하게 되었다

내 안에 따뜻한 불을 피우고
그대를 위하여 차 한 잔을 준비하는 일이
이렇게 가슴 설레는 일인 줄
나는 몰랐다

그대가 내게로 오는 하염없는 발소리를 들으며
나는 비로소 내가 소망하는 것을 또한 그대가
함께 소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대가 내게 그러하듯이 나 또한 그대에게
단지 그리워하는 일만으로 평생을 산다 하더라도
그대와 내가 서로를 느낄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나는 기꺼이 나의 모든 것을 바치려 한다
그것이 비록 작고 하찮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대를 향한 그 간절함으로 나를 일으켜
하나의 꽃이 되고자 한다

─ 김시천 「봄비」 전문(시집 『마침내 그리운 하늘에 별이 될 때까지』에서

 

그림=박경수

‘그대가 없다면 / 저 하늘은 얼마나 허전할까 // 그대가 아니라면 / 저 산맥들은 얼마나 지루한 일상인가 // 나는 단지 그대가 있다는 것만으로/ 숨을 쉬고 있다’(김시천「한 나무가 또 한 나무에게」) 시인의 다른 작품에서도 종종 애타게 부르고 있는‘ 그대’는 과연 누구일까요. 온몸으로 그리워하고 소망하는 대상을‘ 봄비’라는 이름으로 대신하고 있는 이시에서도‘ 그대’는 물론 간절히 사랑하고 싶은 여인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보다는 무엇인가 끊임없이 자신을 바쳐 꿈꾸어온 어떤 세상이 아닐까요.

좋은 시인보다는 먼저 올바른 사람이 되길 원했던 평소의 의지대로, ‘그대’는 시인이 간절하게 바라는 참된 세상, 참된 공동체 사회, 참된 학교, 참된 교사, 그리고 참된 인간 같은 이름들로 해석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시인은 늘 그런 것들을 갈망하며 학생을 가르치고, 시를 써 왔으니까요.

시인이 꿈꾸는 세상이 부디 봄비처럼 대지를 적시고 눈부신 꽃들로 피어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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