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근 건축 ‘학천탕’을 보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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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근 건축 ‘학천탕’을 보면 슬프다
  • 충청리뷰
  • 승인 2017.08.24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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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학래 선생 혼 담긴 목욕탕 건축사적 의미 높아, 행정당국 뭐하나
북문로 골목길, 박재동 만화 볼 수 있고 중앙모밀 등 맛있는 음식점 많아

청주길 사용설명서(7)북문로
윤석위 시인, 청주흥덕문화의집 관장

박재동 화백 만화를 볼 수 있는 북문로 골목.

북문4거리에서 청주대교 사이에 길이 세 개 있다. 이 길들은 모두 북쪽으로 났다. 첫 번째 길은 수아사 뒷골목, 골목길이라 좁고 짧다. 두 번째 길은 청주중학교 가는 길로 북부시장을 가로질러야 끝이 난다. 세 번째 길은 청주공고와 주성초등학교를 지나는 길인데 오래 전 이곳을 흐르는 개울을 덮어 넓어졌다. 어린 우리들은 여기 어디쯤에서 이 개울 위를 날아다니는 왕잠자리들을 먼저 잡은 왕잠자리를 실로 묶은 뒤 날려서 잡곤 했다.

페인트 벗겨지고 물 새는 학천탕

18세기 중반 (1700년대를 18세기라고 쓰는데 개인적으론 왜 그럴까 하고 의문을 가진 적도 있었다), 중인 출신의 譯官 이언진이 쓴 문집 ‘호동거실’에서 호동은 골목길이라는 뜻이다. 지난주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찍은 사진을 보니 큰 길은 따졔(大街), 좁은 길은 후퉁(胡同)이라고 찍혔다. 제주도에서 부르는 올레는 골목과 집을 잇는 더 작은 골목을 뜻한다. 차들이 다니지 않고 사람들이 어깨를 부딪치며 걷는 길은 더 아늑하게 느껴지고 저녁 무렵 어디선가 아이들 부르는 소리가 들릴 듯하고 저녁 짓는 냄새도 날 것 같지 않은가.

청주공고 앞에는 청주전매서가 있었다. 얼마 전까지 인삼과 담배를 국가에서 전담 관리하던 시절이 있었다. 내덕동 안덕벌에 연초공장이 있었다면 북문로에 관리하는 관청인 전매서가 있다는 식이었다. 청주중학교에 다니던 이회창 전 총리의 부친도 한때 이 전매서에 다녔던가 보다. 이 전 총리는 그의 수필집 한 꼭지에 “1월5일, 어찌 바람이 센지 앞 전매서의 포플라나무가 부러질 듯 절을 하고 있었다”고 쓴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전매서 관사가 학천당 부근에 몇 채 있었던 기억이 난다.

학천탕 전경.

몇 년전 교통사고로 타계하신 청주 목욕업계의 대부 박학래 선생의 학천목욕탕도 이 어름에 있다. 학천탕은 박옹과 부인의 이름에서 한자씩 따 지은 이름인데 이 건물을 설계한 이가 김수근이다. 김수근은 우리나라 최고의 건축설계자로 이름난 사람인데 서울올림픽주경기장, 남영동 대공분실, 국립청주박물관 등 손꼽히는 공공건축물을 수도 없이 설계한 사람이다. 오래 전 박옹은 부인의 이름으로 목욕탕 하나를 지어주고 싶어했는데 설계를 맡기기 위해 국내 최고의 설계회사였던 ‘김수근건축연구소’를 찾았다. 김수근건축가는 개인 건물은 설계하지 않는다며 거절하는 것을 박옹은 자신의 입지전적 과거와 아내를 사랑하는 뜻을 전하여 그를 설득 마침내 승낙을 받아냈다는 것이다.

김수근 건축가는 학천탕건물 설계를 마지막으로 타계했다. 설계도서를 찾으러 서울의 연구소를 찾은 날이 그의 발인 날 이었다고 박옹께서 내게 말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박학래선생 타계 후 얼마 되지않아 학천탕 건물이 매각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서울에 있는 김수근기념사업회를 수소문하여 기념사업회장과 사무국장을 청주에서 만났다. 그들은 학천목욕탕 내부를 모두 둘러보고 나서 자신들의 스승 김수근의 작품이 맞다며 확인해 주었다. 이제는 관리가 되지 않아 페인트는 벗겨지고 물이 새는 등 쇠락한 건물이 되었다.

골목길 지날 때 만화보고 웃는다

오래된 독특한 양식의 건축물을 문화유산으로 살려내는 것이 요즈음의 트렌드이다. 개인이 취득하여 별생각 없이 부수거나 변형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행정당국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일제가 청주경찰서를 짓는다며 헐어낸 망선루가 이리저리 옮겨다니다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결국 연고 없는 중앙공원에 세워진 일이나 개인이 영화관(CGV)을 짓기 위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관아유적을 덮는 것을 관청이 허가한 것이 엊그제 일이다.

3년전,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만화가인 박재동 화백을 졸라 그에게서 600여점의 만화를 사진파일로 받았다. 그는 요즘 부천국제만화축제의 운영위원장을 맡아 일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중이다.

북문로 일대 거리.

나는 그에게 “당신의 작품을 좋은 곳에 쓰겠다” “당신 만화로 청주 골목길을 따뜻하게 만들어 보겠다”고 말했다. 녹색청주협의회의 도움을 받아 이 만화들을 북문로 골목길 곳곳에 붙였다. 중앙로상가번영회에 설명회를 가졌고 주민들과 상점주인의 허락을 받았다. 가게 유리창과 광장의 벽면, 담벼락이 전시장이 되었다. 이젠 대학생이 된 협동조합운동가 박종희의 딸 고등학생 박소담의 6컷짜리 만화도 커피집 유리창에 이어져 붙였다. 이 골목에는 한참을 생각케 하는 작품들을 오래 들여다보며 미소 짓는 이들이 늘었다.

학천탕 맞은 편에는 청주에서 가장 오래된 메밀국숫집도 있다. 중앙모밀. 단촐한 2층이어서 옹색해 뵈지만 한여름 메밀국수철이 되면 뙤약볕에 길게 줄을 서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그 맛은 모밀처럼 길다. 그 대각선으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영업하는 동태집도 있고 백반집도 있다. 맛있는 집들이 곳곳에 숨어있어 좋은 냄새가 있는 골목길이다.

지금 청소년광장은 헐려 없어진 중앙극장의 옛터다. 중학교시절 노먼 메일러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나자와 사자’(The naked and the Dead)를 이 터(?)에서 본 기억이 있다. 남태평양 섬에서 일본군과 미군 사이에 벌어지는 전투! 제 2차세계대전의 이름으로 벌이는 국가폭력과 병사 개인의 갈등이 당시로서는 꽤 선명했던 화질 때문에 더 기억되는 걸까? 아마 그 해에 우리나라 국군 비둘기부대가 월남으로 떠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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