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블랙리스트(blacklist)'란 외래어가 유행하고 있다.

세상을 뒤흔든 박근혜 정부의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이어 모 방송사에서도 노조가 블랙리스트 문건을 폭로한 뒤 파문이 일고 있다.

어감부터 좋지 않은 이 단어는 국어사전에 "감시가 필요한 위험인물들의 명단. 흔히 수사 기관 따위에서 위험인물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하여 마련한다"라고 정의돼 있다.

우리말로 요약하면 '감시 대상 명단' 또는 '요주의자 명단'이다.

기자는 최근 우연히 입수한 세종시의회의 2가지 문건을 세종시판 '언론 블랙리스트'라고 부르고 싶다.

첫째 문건은 '홍보 광고비 집행 기준'이다. 이에 따르면 2017년 세종시 본예산에 책정된 홍보 광고비는 2억원이다. 의회사무처 전체 예산(49억원)의 4.1%나 되는 '큰 금액'이다.

그런데 기준에는 '충격적 내용'이 포함돼 있다.

매체를 유료부수 등 영향력에 따라 4등급으로 구분,광고비에 차등을 둔다는 내용은 기본적으로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보도 수용률,긍정 기사 등을 고려해 ±20%를 적용한다"라는 예외조항이 있다. 수용률이 50%이상이면 20%,50%미만~30%이상이면 10%의 가산금을 준다는 것이다.그러나 기자생활 30여년만에 처음 들어보는 '보도 수용률'이란 용어는 유명 포털 사이트 어디에서도 설명이 나와 있지 않다.

더구나 긍정기사가 연간 10건 이상이면 광고비 집행 횟수를 추가한다는 '기막힌' 내용도 들어 있다.

결국 자기들이 주는 보도자료를 앵무새처럼 전재(轉載)하면서, 비판 기사를 쓰지 않으면 돈을 20%까지 더 주겠다는 게 아닌가. 반면 보도자료를 쓰지 않거나, 비판 기사를 쓰면 정해진 금액에서도 20%까지 깎겠다는 뜻이다. 누가 만든 기준인지, 정말 시대착오적이고 위험한 발상이다.

국회와 마찬가지로 지방의회의 고유 기능은 행정부(집행부) 견제와 감시다. 따라서 의원이 집행부 비판을 한다는 이유로 의정비나 수당 등을 깎을 수는 없다.

지방의회가 언론의 감시와 견제를 받아야 하는 것은 '타고난 숙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이 내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게 아닌가. 그런데도 시의회가 언론에 대해 '돈으로 장난을 치겠다'는 것은 이른바 '갑의 횡포'요, 언론자유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둘째 문건은 2013년 이후 올해 6월말까지의 '언론사 홍보비 집행 내역'이다.

홍보비는 '캠페인' '창간' '일반' '협찬' '기획' '신년' '행사' '일반' 등 다양한 종류로 나뉘어 집행된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기사의 질은 따지지 않더라도,'ABC유료부수'라는 객관적 기준이 있는 신문과 달리 47개 통신·인터넷 매체의 경우 등급 분류 기준이 모호하다.

매일 세종시 관련 기사를 검색하는 기자도 처음 들어보는 여러 매체가 버젓이 등급에 올라 있다. 심지어 유명 포털사이트에서 제호만으로는 검색이 되지 않는 매체도 있다.

국내 유일의 '특별자치시'인 세종은 21세기 지방자치 발전을 선도해야 할 광역지방자치단체다.

따라서 시장을 비롯한 집행부 공무원들 못지않게 의장을 비롯한 시의원들이 객관적 잣대를 갖고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의회의 수준을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그 동안 '개원초 의장단 구성 파행' '업무추진비 남용' '놀자판 해외 연수'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왜 언론에서 제대로 걸러지지 않았는지, 이번 문건을 보면서 기자는 짐작할 수 있었다.

의장을 비롯한 세종시의원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기사를 쓰는 언론인에게 홍보비 불이익을 주는 것은 분명히 '블랙리스트 사건'이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그토록 청산을 강조해 온 적폐(積弊)의 대표적 사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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