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시대를 대표하는 범종은 오대산 상원사 동종(국보 제 36호)과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 봉덕사종: 국보 제 29호)이다. 범종소리와 더불어 조형 수법은 통일신라시대 불교미술의 절정을 이룬다.

상원사 동종은 소리가 맑고 깨끗하며 성덕대왕신종은 신비의 법음(法音)을 간직하고 있다. 관련학계에서는 통일신라의 2대 범종으로 이 두 범종을 꼽는다. 신라시대의 범종은 흔치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소리가 오묘하기 때문에 옛 종의 흔적을 찾는 기준점이 된다.

상원사 동종은 종의 교과서다. 그 맑은 소리가 어떻게 나는지 과학적으로도 규명하기가 힘들다. 여러 설화를 간직한 에밀레종의 육중하고 애잔한 맥 놀이도 미스터리에 가깝다. 과학적인 주조이외에도 깊은 불심과 공력 없이는 완성이 불가능한 종이다.

신라범종의 명품이 또 하나 있다. 다름 아닌 청주시 운천동 절터에서 지난 1970년도에 출토된 ‘운천동 절터 범종’이다. 농부가 밭을 갈다 금동 불상, 금고(金鼓) 등과 함께 나온 범종은 전체 높이 78cm, 종신 64cm, 지름 47,4cm로 규모 면에서는 상원사 범종, 성덕대왕신종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작으나 조형수법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의 수법으로 예술성이 뛰어나다.

종신 전체의 조각은 상원사 범종이나 성덕대왕신종처럼 웅장하고 화려하지는 않으나 3구의 비천상(飛天像), 주악상(奏樂像)은 조형수법이 우수하다. 유곽(乳廓)안에 있는 9개의 유두(乳頭)는 꽤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다.

2개의 당좌(종을 치는 부문)에는 12판의 연꽃무늬를 돌리고 그 사이에 당초문(唐草文) 장식을 새겨 넣었다. 오랜 세월 땅 속에 묻혀 있어 몸통 일부가 약간 찌그러져 있고 위 부분 용통(龍筒)일부가 결손된 것 이외에는 그런 대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관련학계에서는 운천동 절터 출토 범종을 상원사 범종, 성덕대왕신종과 더불어 신라의 3대 범종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우선 외형상 통일신라 범종의 양식을 그대로 따랐고 조형수법이 정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범종은 현존하는 세계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어 그 신비를 더한다. 1984년 청주대박물관의 운천동 절터 발굴조사시 금속활자 주조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 도가니 편이 이 절터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직지를 인쇄한 금속활자는 밀랍주조법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오늘날 양초공예를 하듯 밀랍에다 글자를 새기고 석고로 둘러싼 다음 열을 가하면 밀랍이 녹아 내리며 공동이 생긴다. 여기다 쇳물을 부어 틀을 부수면 활자가 탄생된다. 비단 금속활자뿐만 아니라 불상, 범종 등을 모두 이 방법으로 만들었다.


밀랍주조법은 대량 복제를 할 수 없는 단점은 있으나 작은 문양, 가는 선까지 선명하게 살아나는 장점이 있어 불상 등 불교 예물을 제작하는데 많이 쓰였다. 흥덕사지에서 운천동사지까지는 불과 7~8백m 거리이다. 말하자면 같은 사역권(寺域圈)에 존재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흥덕사는 편집실, 운천동 절은 인쇄소라는 가설을 제기할 수도 있다.

운천동 절터의 공방(工房)에서 금속활자나 불구(佛具)를 만들 때 그 절터의 범종은 성공을 기원하는 불력의 종으로 작용했지 않나 상상해 보는 것이다. 운천동 범종은 현재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상처 난 부분을 보존처리하고 있다.

그 과정이 끝나고 난 후 종의 보존에 영향이 없다고 판단되면 청주박물관은 타종을 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천년 전, 서원 고을에 울려 퍼진 범종소리가 어떠했나 매우 궁금해진다. 종(鐘)은 소리를 낼 때 생명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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