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승빈 「화양 가는 길」

화양華陽
꽃볕이라니!
미원米院지나 청천靑川
무릉리武陵里도원리桃源里거쳐 화양을 가는데
느닷없이 퍼붓는 눈발이 앞을 막는다
내 가는 길을 지운다
화양은 찾아간다고 갈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 화양도 물 꽝꽝 얼고
눈 내리고 바람 맵긴 마찬가지라고
산마루 저 소나무 집채만 한 바위
길가에 죽 늘어선 억새들까지
하얀 눈 뒤집어쓰고 가고 있는데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고 있는데
퍼붓는 눈발은 내 앞만 가로 막는다
내 길만 지워버린다
도원리 무릉리 지나 청천 미원을 거쳐
지금도 나는 화양을 가고 있는데
가고 또 가고 있는데

─ 임승빈 「화양 가는 길」 전문(시집 『흐르는 말』에서)

 

그림=박경수

‘화양’은 어디인가. 볕이 꽃처럼 아름다운 땅. 인간의 진정한 꿈과 이상이 햇볕으로 박혀 반짝이는 곳. 가 닿을 수 없어 더 아름다운 세상. 끝내 그곳에 이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지닌 비극성. 그러한 실체를 온전하게 살려내려는 시인의 진실한 육성이 신선합니다. 눈발이 앞을 막고 물 꽝꽝 얼어 있어‘ 화양은 찾아간다고 갈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현실을 비관적으로 전망하면서도, 시인은 끝내 화양 가는 길을 놓지 않겠다고 벼릅니다. 쉽사리 버릴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 회원과 그러나 그런 이상향은 실재하지 않는 현실과의 괴리, 문학의 시선은 언제나 그 균열의 틈과 불일치의 모순 앞에 바치는 처절한 헌사인 것입니다. 세속을 등진 노장의 드넓고 활달한 선풍의 영향을 받은, 직관과 비약으로 가득 찬 상상력이 돋보이는 시입니다.

‘인간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자신을 하찮게 여기지 않기 위해서, 결코 꿈과 이상을 버려서는 안 된다.’ 니체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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