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다른 영화 ‘택시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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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 다른 영화 ‘택시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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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8.1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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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자녀들과 함께 영화 택시운전사를 본 가장들이 공통적으로 받는 질문이 하나 있다고 한다. ‘영화가 진짜냐’는 것이다. 이미 언론 등을 통해 실화임을 알고서 극장을 찾았지만 막상 주인공 송강호가 지금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흥얼거리던 그 때에 과연 그런 일이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유재석의 예능에 길들여진 젊은 세대들에겐 영화에서 빠른 속도로 클로즈업 되어 넘어가는 화면들, 예를 들어 군인에 의해 저질러지는 무차별적인 민간인 폭행과 살해 장면등은 말 그대로 영화같은 픽션으로 느껴질 지도 모른다. 진짜냐는 질문은 그래서 나오는 것이겠고, 현재의 대한민국 모습과 당시의 광주 상황을 대비시키면서 끝내 그 간극을 털어내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내용이 과장됐다거나 혹은 송강호의 연기가 다소 도식적이라는 등의 감상을 SNS 등에 올리면서 이 또한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조금도 과장되거나 사실에 벗어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엔 오히려 내용이 부드럽게 유화된 측면이 있다. 당장 공수부대원들의 민간인 학살장면이 그렇다. 물론 극도의 잔인함을 그대로 화면에 옮기는 것에 대한 제작상의 한계는 있었겠지만 당시 피해자 특히 총탄세례를 받거나 몽둥이에 얻어터져 희생된 이들의 실제 모습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면에서 영화 택시운전사는 분명 사실과 다르다.

두개골 파열로 상징되는 죽은이들의 참혹한 모습이 대중들에게 처음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은 생뚱맞게도 광주항쟁 7년이 지난, 1987년 11월 29일 13대 대선의 여의도 합동유세때다. 그 전에는 지하루트나 지인들의 알음알음으로만 광주 사진을 접할 수 있었다. 노태우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등이 모두 연단에 오른 이날 여의도유세는 지금까지도 100만 인파라는 수식어로 기억되고 있다. 여당보다는 전국에서 몰려든 야당 지지자들이 압도적이었다.

바로 이 자리에 출처가 불분명한 광주사태 참사 사진이 다수 내걸렸고 사람들은 이를 보며 경악했다. 누구는 머리가 반으로 깨져 인골이 튀어나왔고 또 누구는 배가 찢어져 속에 있는 것을 토해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흥분했고 이들중 다수가 그날 김대중의 오픈카를 따라 서울시청앞까지 행진한다. 실제로 광주 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할 당시 그 참혹하게 망가진 모습들로 인해 신원확인조차 쉽지 않았다.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컷.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고난 관객들이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곱씹는 물음이 있다. ‘어떻게 자기나라 군인들이 자기나라 국민들을 저렇듯 학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영화를 같이 본 자녀들의 의문 역시 이것에 집중된다. 세기의 살인마라는 히틀러도 자기 국민은 학살하지 않았음을 되뇌이면서 말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국가권력에 의한 자국민 학살이라는 부끄러운 역사를 여러 사례로 가지고 있다. 그 압권(?)이 이승만의 만행이다. 기밀해제된 자료 등에 의하면 이승만이 민간인에게 좌익 이른바 빨갱이라는 누명을 씌워 학살한 숫자는 적게는 30만, 많게는 1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전쟁이 아닌 평시상황에서의 자국민 학살은 이승만이 단연 세계 톱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지금, 현재를 기준하더라도 우리나라 어디를 가든 거기엔 반드시 ‘빨갱이 사냥’의 아픈 상처가 서려 있다. 모두가 민족적 비극이다. 그러기에 보도연맹사건이나 제주 4.3사건, 여수순천 사건 등은 여전히 미완의, 반드시 진실이 규명되어 늦게나마 그 책임자를 단죄해야할 숙제로 남아 있다.

격동기마다 국민들이 좌우 이념으로 갈린 건 오로지 살기 위함 이었다. 국가와 통치자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안정되게 지켜주지 못했으니 국민들은 스스로가 알아서 생존의 길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낮에는 우, 밤에는 좌로 변신한 건 힘없는 민중들의 살기 위한 선택이었지 결코 사상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 나라 지도자들은 방황하는 양민들에게 이념의 굴레를 씌워 주살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그 것으로 자기의 권력을 지켰다. 그 DNA가 후대에도 이어져 박정희와 전두환을 거쳐 급기야 광주참사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역사에 다소 관용하는 건 관용이 아니다. 무책임이다. 관용하는 자가 잘못을 저지른 자보다 더 죄다.”

도산 안창호가 남긴 말이다. 영화 택시운전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바로 이 것이다. 자국민을 학살한 전두환을 처단하지 못하고 특별사면이라는 다소의 관용을 베푼 것이 이제 와선 국민적 무책임으로 엄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전두환보다도 더 큰 죄를 짓고 있다. 끝내 친일을 척결하지 못한 과오를 똑같이 반복했다.

그 후유증이, 세월호와 함께 어린학생 300여명을 수장시키고도 교통사고라며 입에 거품을 물고,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고도 폭도를 진압한 것이라고 활개치는 저 더러운 인간들을 이 나라의 지도자와 위정자로 행세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국민들을 이념으로 이간질시키며 북한과의 전쟁불사를 외치고 있다. 친일후손의 후광으로 요리 빼고 조리 빼며 군대의 문턱에도 안 가본 이들이 말이다.

하지만 엊그제 광복절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말했다. “광복절은 좌우 이념을 떠난다. 한반도의 시대적 소명은 평화이고 또 다시 전쟁은 없다. 한반도에서의 어떠한 군사적 결정도 우리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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