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서점과 문방구는 다 어디로 갔을까
쟝글제과·청원제과·영재서림·호수그릴 사라져

청주길 사용설명서(5)성안길1
윤석위 시인, 청주흥덕문화의집 관장

중앙로와 성안길은 같은 거리 다른 이름의 길이다.
도시의 길 이름은 뼈대가 될 만한 넓은 길을 로(路)로 부르고 곁가지로 붙은 길을 가(街)로 구분해서 부른다.
길은 가로(街路)의 통칭이다.

 

청주읍성도를 새겨놓은 돌.

청주 성안길 입구라 하면 1914년 쯤에 헐린 청주성 북쪽을 말한다. 성안길 입구엔 오래 전 히아신스예식장과 쟝글제과, 영재서림이 있었다. 지금은 그 이름과 건물도 사라져 잊히고 우리 모임이 세운 ‘청주읍성 북문터'비가 세워져 남았다. 여기서부터 남쪽으로 청주약국까지 약 800m가 성안길이다.

일본 점령자들은 저희들 입맛대로 4~5m 높이의 성과 성문을 헐고 길을 냈다. 남북을 이어 본정통(혼마치도리)이라 하고 남문 쪽에 남문로1가, 남문로2가를 洞으로 만들고 북문 쪽에 북문로1가, 북문로2가와 성문 밖에 북문로3가를 나누고 洞으로 만들었다. 북문로3가동의 끝이 오정목(五町目-고초메)이다. 지금은 성 안쪽과 바깥 동 몇 군데를 합해 성안동으로 묶었다. 시내의 거주자가 대폭으로 줄어든 탓이다. 읍성 안쪽에 사는 인구는 거의 없고 그저 상업지역으로 기능할 뿐이다.

성안길 안에는 80년대까지 그래도 몇 채의 주거용 주택들이 남아 있었다. 좁다란 골목길 안에 누구네 집(크고 작은 내 동무들의 집)들이 숨어 있었는데 어느 때인지 시나브로 헐리고 새 집들이 지어졌다. 거기에 살던 동무들은 새들이 자라 집을 떠나듯 서울로 또는 머나먼 외국으로 떠나갔다. 지금도 성안길에 접한 작은 골목에는 옛 시골 마을 길처럼 굽잇길이 여럿 남아 있다. 한 발 안쪽으로 발을 딛기만 해도 정겨운 길이다.

천일목욕탕은 천일파크로 바뀌없고, 안쪽에는 안면도칼국수집이 있다.

그 중 천일목욕탕 골목은 지금도 좁고 굽은 길이다. 천일탕은 1973년 입영전날 기념목욕을 했던 곳이다. 그 천일목욕탕은 여관과 음식점으로 변했고 골목 안쪽으로 안면도칼국수집이 구부러지는 길 한 가운데서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언제였던가. 내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는 이 골목 담벼락 곳곳에 여러 컷의 연속 만화가 그려져 남아있는데 누군가 재미로 이야기를 만화로 그린 것이리라. 골목에 들어서면 슬그머니 웃음 짓게 하던 그 만화가 있던 이 골목을 기억한다.

백년 전통의 맛집이 없다

이 거리엔 청주에서 제일 큰 빵집 두 곳이 있었다. 청원제과점과 쟝글제과점이다. 청원제과는 오래된 내 동무집 가게였고 70년쯤 생긴 쟝글제과는 이십년을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두 곳 모두 내부가 고급스러워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기에 뭇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의 꽁무니를 좇아 부지런히 들락거리던 곳 이었다. 이들 빵집의 소멸은 전국적으로 유명브랜드의 제과점이 점령군처럼 들어서 토종 브랜드들을 밀어낸 시류 탓이다.

규모가 큰 대형서점이던 영재서림은 일선문고로 이름을 바꾸더니 어느결에 사라졌는데 그 규모도 컸고 책을 사는 것보다 새 책 구경이 그저 즐겁던 어린 시절의 즐겨찾던 내 휴식처였다. 지금 그나마 옛 한국은행 자리에 새로 지어진 건물의 지하에 커다란 중고서점이 새로 생겨 청주가 교육도시라는 체면을 지켜주고 있다.

산업은행쪽 길가 벽면에 청주읍성도와 청주 성안길 유래를 돌에 새겨놓았는데 나는 몇년 전 청주시로부터 성안길 유래에 대한 안내문안을 지어달라는 부탁을 받았었다. 돌에 새긴 유래가 거니는 사람들의 뇌에 새겨졌으면 싶다.

지금의 성안길 로데오거리 주변 골목.

성안길 번화가에서 문구점들이 사라진 것도 아쉬운 일이다. 오래전 부총리를 지낸 분 집의 문구점이던 홍문당과 한국은행쪽 문화 유씨네 문화당도 이 거리에서 밀려 사라진 문구점이다. 서점과 문구점의 소멸은 문화의 쇠락과 관계가 깊다.

철당간 인근에 있던 상업은행건물 옆 경양식집 ‘호수그릴’이 청주 유일의 양식당이었는데 언제인지 문을 닫았다. 그 곳을 운영하던 이가 봉명동에 큰 중식당을 열었다. 청마루 중식당이라던가? 성안길 뒷길에 성업하던 몇몇 중국음식점들이 교통 좋은 변두리로 크게 지어 옮기는 것도 한때 유행이어서 그러려니 하다가도 백년 전통의 맛집을 바라는 마음에는 여간 서운함이 큰 게 아니다.

그 동안 청주에 없던 대형백화점이 서청주 공업지역인근에 영업을 시작하고서 성안길은 큰 홍수가 지난 듯 큰 변화가 있었다. 우체국옆 에이피엠과 산업은행앞 흥업백화점이 연달아 문을 닫았고 오래전 현대극장을 헐고 세워진 영플라자도 주인이 바뀌는 등 격변기를 건너왔던 것이다. 그러는 세월을 지나며 나도 내 동무들도 철당간처럼 늙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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