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충청리뷰가 이번 호에 우진교통을 기획화한 것은 나름 이유가 있다. 우진교통이 그동안 이루어낸 성과를 사람들이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다. 아니 많이들 안다고는 하지만 그 실체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단편적이다. 노사분규가 극심했던 사업장이 정상화됐다는 정도의 뉴스만 많았다.

만약 우진교통의 성과가 다른 산업분야에서 있었다면 이는 해외토픽, 특종이 되고도 남는다. 그런데도 언론은 우진교통 본질의 조명에 인색했다. 여전히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은 일반 국민들의 인식에서 배타적이다. 심한 경우 좌경용공이나 체제 전복세력, 아니면 자신들의 배만 불리는 이기적 집단으로 매도되다보니 우진교통 또한 이 굴레를 쉽게 벗어날 수가 없다.

하지만 세상의 양심은 절대로 사회적 가치를 그냥 넘겨버리지 않는다. 비록 국내 언론에선 간과됐지만 대신 학계와 세계 노동계가 우진교통을 주목하게 된다. 노동운동 분야의 각종 사례 연구에 단골 소재가 됐고 최근엔 미래 노동운동의 학술적 근거로까지 자리매김하려는 움직임마저 있다. 이 것들을 충북 청주에 있는 운수회사 우진교통이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알려진대로 우진교통은 극심한 노사분규로 상징되며 파산의 나락으로 떨어졌던 회사를 노동자들이 주인이 되어 되살려낸 성공사례로 꼽힌다. 그것도 단순한 정상화가 아니라 업계 최고의 인프라와 후생복지를 자랑하는 기업체로 거듭난 것이다.

‘협동조합형 노동자자주관리기업’을 천명하는 우진교통은 말 그대로 실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곧 자주 경영자이고 주인이다. 의사결정에선 사장부터 말단까지 똑같이 1인 1표 권한을 행사한다. 회사의 주요 사안은 물론이고 인사, 급여책정도 노동자들의 한 표 한 표로 결정된다.

전통의 자본주의 경영논리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있어서도 안 될 일이 우진교통에선 이루어지고 있다. 우진교통의 사례가 탐욕한 자본사회에서의 대안으로 지목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자본주의의 한계와 모순을 극복한 세계적 모범사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온갖 갑질과 불평등, 자본의 착취와 빈부격차가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지금, 우진교통이라는 현장에선 모두가 갑이고 주인이다. 현재의 우진에서, 13년전(2004년) 농성장에 공권력이 투입되고 머리띠를 두른 노동자들이 경찰차 밑으로 들어가 절규하던 모습을 기억해 내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우진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최고로 여기는 노동의 혁신, 노동의 혁명을 일궈냈다. 이는 기적이다.
 

김재수 우진교통 대표

우진교통은 무엇보다도 노동운동의 양대 딜레마, 이른바 계급적 투쟁의 노동운동과 실리주의적 노동운동의 한계를 모두 극복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우진은 우선 계급적 투쟁의 노동운동이 지향하는 조직내 평등을 이뤘고, 또 노동자들의 인간적 대우와 복지문제에도 업계 최고를 보장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실리와 이익추구에도 미증유의 이정표를 만들어 가고 있다.

아직도 노동운동을 백안시하는 사람들이 명심할 게 하나 있다. 노동운동 없이는 민주화도 없다는 역사적인 진리다. 노동자 계급이 작업현장에서 끊임없이 벌여온 투쟁은 그 자체로 제도의 개혁을 넘어 궁극적으론 민주주의를 확장해 온 과정이다. 그러기에 노동운동이 없었다면 민주주의의 발전과 심화는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가 똑같다. 일제시대에도 노동운동은 식민지배에 대한 저항의 수단으로 나타났고 이는 곧 항일 투쟁으로 이어졌다. 영화 ‘군함도’ 역시 같은 맥락이다.

우진교통의 기적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과거 지난한 노사분규를 거울삼아 스스로가 조직의 평화와 민주화를 이뤄냈고 노동운동의 최고 정점이랄 수 있는 노동자 스스로가 기업운영의 주체가 된 것이다. 아직도 우리나라를 휩쓸고 있는 노동운동의 현실, 자본과 경영에 대한 적대적인 계급투쟁을 벗어나 구성원 모두가 주인이 되는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노동문화를 정착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진교통이 이렇게 되기까지는 김재수 대표이사가 있다. 그는 민주노총 충북본부 사무처장을 지낸 인물로 실제적인 충북노동운동의 1세대로 꼽힌다. 그가 2005년 전, 사업주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150여억원에 달하는 부채와 체불임금, 그리고 장기간 투쟁으로 황폐할대로 황폐해진 250여명의 근로자들이었다.

어느 것 하나 여의치 않은 최악의 여건에서 경영을 맡았고 결국 오늘의 결과를 이뤄낸 것이다. 그는 과거 노동운동의 최전선에 섰을 때도 원칙과 기본에 충실했고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본인의 성과가 외부로 조금씩 알려지면서 갖가지 제의가 잇따랐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오로지 회사 정상화에만 매달렸다.

장기간, 그 것도 서로 생사를 으름장 놓는 극한대립의 노사분규를 겪은 기업체는 정상화 또한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그 후유증의 잠재적 악순환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재수는 모든 것을 책임졌고 확실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그의 리더십은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논리적 한계, 즉 상대로부터 투쟁으로써만 무엇을 얻어낸 것이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 난제를 극복하며 자신들의 미래비전을 독자적으로 창출해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공교롭게도 최근 지역사회에서 내년 지방선거와 관련해 관행적인 고위 관료출신이 아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리더십의 시민후보 등장의 필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김재수라는 이름 석자도 거침없이 거론되고 있다.

그 실현 여부를 떠나 이러한 여론이 있다는 자체가 오늘의 우진교통과 김재수를 실체적으로 상징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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