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인 「아무도 모른다」

나의 옛 흙들은 어디로 갔을까
땡볕 아래서도 촉촉하던 그 마당과 길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개울은, 따갑게 익던 자갈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앞산은, 밤이면 굴러다니던 도깨비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런닝구와 파자마 바람으로도 의젓하던 옛 동네 어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누님들, 수국 같던 웃음 많던 나의 옛 누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배고픔은 어디로 갔을까 설익은 가지의 그 비린내는 어디로 갔을까 시름 많던 나의 옛 젊은 어머니는 나의 옛 형님들은, 그 딴딴한 장딴지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나의 옛 비석치기와 구슬치기는, 등줄기를 내려치던 빗자루는, 나의 옛 아버지의 힘센 팔뚝은, 고소해하던 옆집 가시내는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무덤들은, 흰머리 할미꽃과 사금파리 살림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봄날 저녁은 어디로 갔을까 키 큰 미루나무 아래 강아지 풀들은, 낮은 굴뚝과 노곤하던 저녁연기는 나의 옛 캄캄한 골방은 어디로 갔을까 캄캄한 할아버지는, 캄캄한 기침소리와 캄캄한 고리짝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
나의 옛 나는 어디로 갔을까, 고무신 밖으로 발등이 새까맣던 어린 나는 어느 거리를 떠돌다 흩어졌을까

─ 김사인 「아무도 모른다」 전문(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에서)

 

그림=박경수

이 광속의 문명시대. 젊은 부부가 자식 한둘 낳고 살면서 부모형제와 일가친척, 고향 산천을 외면한 채 더욱 풍요롭고 더욱 편리하고 더욱 즐거운 나만의 욕망을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이 현대인의 자화상이라면, 참으로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굴렁쇠를 굴리던 따스한 흙길, 물총새를 쫒던 개여울, 파자마 바람으로도 의젓한 어른들, 예쁜 누님과 장딴지 굵은 형님들 그리고 빗자루로 등을 내리치던 아버지의 힘센 팔뚝이라니. 더구나 고소해하던 옆집 계집의고 얄미운 웃음까지. 허기지고 발등이 새까맣던 시절의 그 모습을 지금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것에 시인은 절망합니다.

녹슨 못물자국 같은 생의 멍울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아름다웠고 따뜻했던 진정한 삶의 원형들이 아니었던가.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사이에 뜨거운 교류와 연대가 넘쳐나던 그 시절은 이제‘ 옛’ 것이고‘ 아무도 모르’는 돌이킬 수 없는 피안 저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인의 탄식 뒤에는 그 곳을 향한 소망 또한 간절합니다. 문명의 이기에 갇혀 신음할 것인가, 벗어나서 온전한 삶의 가치를 회복할 것인가. 잘 산다는 것은 물질의 풍요를 넘어 정신적 유대 위에 우리의 삶이놓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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