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 그것도 처절한 복수가 필요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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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 그것도 처절한 복수가 필요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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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7.27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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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지난 23일 끝내 한많은 삶을 마감만 김군자 할머니는 누구보다도 일본의 사과를 앞장 서 요구했다. 그는 박근혜 정권이 일본 돈 10억엔에 혹해 위안부 합의를 할 때도 “피해자는 정부가 아니라 우리다!”고 피를 토하듯 절규했다.

김 할머니는 2007년 2월 미 하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에서 “하루 40여명을 상대했고 죽을 만큼 맞았다”고 증언해 세계를 분노케 했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악착같이 축소하고 숨기려는 의도는 분명하다.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역할하기 위해선 그 야만의 과거사를 반드시 지워버려야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문제는 인류에 대한 최악의 만행이자 범죄로 꼽힌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이웃나라 일본과는 정서적으로도 단 한 날, 단 한 시도 편안한 관계가 아니었지만 요즘엔 그 정도가 더 심해지는 것같다. 북한 핵으로 촉발된 한반도의 전쟁위기와 국정농단 와중에서 일본이 간간이 드러낸 침략적 마수(魔手)도 불편하거니와 때맞춰 소개되는 일본 관련 영화와 책, 사건들이 이런 기분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영화 ‘박열’과 ‘군함도’ 그리고 여행간 한국여성에 대한 일본 숙박업소의 못된 짓거리, 여기에다 잊을만 하면 터져 나오는 일본인들의 혐한(嫌韓) 시위 등으로 인해 아무리 ‘쪽발이’를 입에 올리며 스스로를 자위하려 해도 언듯 언듯 엄습하는 역겨움은 억제하기가 쉽지 않다.

그 때마다 ‘100억원 위안부 합의’를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 양 떠들어 대던 그들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 굴욕감만 더해진다. 엉겁결에 조롱당한 나라의 자존심 때문만은 아니다. 비록 한 때이지만 우리가 그런 지도자를 가졌고 또 그에게 나랏일을 맡겼다는, 피가 거꾸로 솟는 자책감이 더 큰 것이다.

“복수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얼마전 소설 ‘예언’을 출간하며 김진명이 한 말이다. 우리의 기억에 아직도 생생한 소련에 의한 1983년 KAL 007기 격추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이 책은 소련에 복수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런데 김진명은 자신이 소설화한 복수의 정당성을 설명하면서 돌연 일본 얘기를 꺼낸다.

“복수를 잊지 말자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770차례나 침략당했습니다. 한국이 복수와는 너무 거리가 먼 사회로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싸움을 피하고 복수를 피하고만 해서는 절대 우리를 지킬 수가 없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또다시 냉전이 시작되는데, 비겁하기만 해서는 절대 우리의 미래를 지킬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되새기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또 하나의 민족적 비극을 떠올린다. 1923년 9월 1일의 관동대지진이다. 이 역시 지금 절찬 상영중인 실화 영화 ‘박열’의 영향이 크다. 공교롭게도 누구보다도 조선을 사랑해 그와 아나키즘운동을 함께 하며 끝내 옥중결혼까지 했다가 자살한 일본여인 가네코 후미코가 어린 시절 청주 부강에서 7년을 거주했다 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러기에 요즘만큼 충북인들에게 관동대지진을 새롭게 각인시킨 적도 없다.
 


당시 박열과 가네코가 경험한 조선인 참극은 무슨 말을 동원하더라도 형용이 쉽지 않다. 무려 6000여명에 달하는 무차별적인 조선인 학살에 대해 그 때 가네코가 목격한 일단의 정황이 이번엔 소설 ‘박열’에 이렇게 소개된다.

“경찰서 마당에는 피투성이의 조선인 시신들이 즐비했다. 시신들은 남녀가 따로 없었다. 그냥 되는대로 엎어져 있기도 하고 똑바로 널부러져 있기도 했다. 무슨 험한 일을 당했는지 여성의 옷이 모두 벗겨져 있는 것도 보였다. 여자의 등에 커다란 칼에 베인듯한 상처가 시뻘겋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길 건너에서 불길이 확 솟아올랐다. 뭔가 해서 쳐다보는데 두 손이 나무에 매달린 채 한 사람이 발버둥을 치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나무에 사람을 매달아 놓고 기름을 부어 불을 붙인 것이다.”

이렇게 죽어간 것이 우리 한민족이다. 그대로 믿을 수 없는 6000이라는 숫자이지만 어쨌든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등의 말도 안되는 누명을 씌워 일본인들이 우리를 이렇게 살육한 것이다. 그러고도 일본은 학살 책임자의 단 한명도 처벌하지 않았다.

그런 그들에게 우리는 불가역적(不可逆的)라는 친절한 단서까지 달아 고작 100억원에 나라를 능멸케 했으니 바로 이 것이 역적행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로서는 위안부 문제를 합의할 게 아니라 이같은 학살까지 거론하며 일본의 사죄를 촉구했어야 맞다.

복수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은 백번이고 맞다. 지금도 나치 피해국과 피해자들은 이렇게 하고 있다. 끊임없이 전범들을 색출하고, 흔들림없이 독일에 반성과 사죄를 최촉한다. 굳이 할말은 아니지만 미국의 서부개척사도 실은 복수의 역사이다. 그들이 자랑하는 프런티어 정신의 궁극적인 실체는 국토의 개척과 팽창을 내세워 원주민 인디언을 상대로 벌인 냉엄한 복수극에 불과하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세계 최강의 나라가 됐다.

우리도 이제 복수를 해야겠다. 그것도 처절하게 말이다. 그리고 가장 처절한 복수는 절대로 잊지 않는 것이다. 끝까지 기억해 내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정권교체 세달도 안돼 국정농단 세력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적폐청산에 대해서는 정치보복을 외친다. 우리는 벌써 잊어가고 있다.

이렇게 복수에 약하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또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김진명은 예언으로 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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