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보기 위해 걸음을 멈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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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보기 위해 걸음을 멈추자
  • 충청리뷰
  • 승인 2017.07.2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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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기차역은 시청 옆 중앙로에, 역 우암동으로 옮긴 뒤 상당로 개통
정성들인 석조·목조 건축물 천년이상 가는데 시청사 50년만에 다시 건축

청주길 사용설명서(4)중앙로구간
윤석위 시인, 청주흥덕문화의집 관장


중앙로를 설명하는데 어릴 적 내가 살던 곳을 밝히는 게 더 쉬울 것 같다. 북문로 3가, 청주중학교와 시청을 잇는 골목, 얼마 전까지 천주교 청주교구청이 있던 곳, 측백나무 울타리가 긴 곳, 대성학원 설립자인 김원근 선생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과 가까운 곳, 내 동무의 집들이 처마를 잇고 있던 골목길.

이태 전 고인이 되신 내 어머니는 1 식구 많음을 타박치 않을 주인집, 2 칠남매가 학교 다니기에 고루 멀지 않은 곳, 3 싼 집 등의 이유거나 그저 맹모삼천지교의 심경이셨는지 시내 출입이 쉬웠던 곳으로 이 곳을 찾아내셨다. 세 가구 한 집으로 주인집 다섯 식구와 별채 여섯 식구, 우리가 살았던 사랑채 아홉 식구, 도합 스물의 대식구가 한 울타리에서 조용히(?) 살았다.
 

옛 청주역사가 있던 자리.
청소년 광장 근처.


지금 생각하면 “그럴 리가?”나 “세상에 이런 일이!”수준으로 신비한 일이었다. 6.25전쟁이 끝난 지 10년으로 그럭저럭 전쟁의 상처가 아물면서 베이비붐 이라던가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고 농촌은 붕괴가 시작되어 도시가 무한 팽창하던 때, 그 시절을 나는 시청근처 중앙로에서 중학교시절을 보낸 것이다.

1965년은 청주시 새 3층 청사가 준공된 해, 나는 내 동무들과 가깝게는 중앙로를 탐사(?)하거나 멀리 청주대까지 원정하거나 이웃 청주중학교에서 주말마다 벌어지던 청중야구부와 진천사석에 주둔한 미군야구팀의 친선경기를 봤다. 그러지 않은 날은 교구청에 있는 탁구대에서 형들과 탁구를 치며 놀았다.

당시 청주 기차역은 시청 옆 중앙로에 있었고 동쪽 길 즉 상당로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새로 준공한 3층짜리 시청은 웅장하고 특별했다. 청주읍성이 배 형상이고 철당간은 그 돛대를 상징한다며 시청 옥상에 돛을 형상화한 굴뚝이 서 있었다. 이후 언제 한 층을 더 올려 4층 건물이 되었는지 내 기억엔 없다.

동편 새 길인 상당로는 1968년 청주 기차역이 배추밭이던 우암동 역으로 옮겨 가면서 공사를 시작해 1970년 늦가을 쯤 포장공사를 마치고 개통했는데 이 때 “길이 너무 넓다”며 4차선도로를 만든 식견 없는(?) 청주시장을 성토하는 여론이 높았다.

세우는 일은 천천히 조심스럽게

성안길 북문(현무문) 맞은편에 털실로 짠 목도리 스웨터나 뜨개재료를 팔던 ‘수아사’라는 가게가 있었다. 수아사는 이십여년 동안 영업하다가 인근으로 옮겼는데 시민들은 아직도 북문사거리를 수아사 근처로 부른다. 입에 살가운 가게이름은 쉬이 떨어지지 않고 랜드마크가 되어 남아있다.

북문로 철도건널목은 수아사가 생길 무렵 사라졌다. 청주시를 관통하며 지나던 기찻길이 없어진 후 예견치 못한 많은 것들이 함께 사라졌다. 조치원을 떠난 충북선 열차가 청주에 가까워지면서 솔밭공원에 있던 서청주역을 지나 봉명고개를 느릿느릿 올라가던 모습과 사직동 변전소옆 뽕밭을 지나 서문철교를 건너며 긴 기적과 흰 증기를 뿜던 기차는 멋진 수채화였다. 북문로 건널목에는 제복을 차려입은 역무원이 수동식 차단기를 내려 길손을 잡고 깃발을 흔들기도 했다.
 

옛 청주읍성 북문이 있던 자리.
청주시 북문로 소나무길.


몇 해 전 나는 소나무길과 물길을 만들던 시청 감독관을 졸라 건널목 자리에 기찻길과 차단기와 설명문을 만들게 했다. 옛 기적소리를 기억하는 이가 많지는 않아도 건널목 옆에 수제 양복점을 열어놓고 옛날을 회상하는 내 친구가 있고 또 그 시절을 추억하는 사람도 있겠거니 생각했다.

중앙로를 인파로 넘치게 하던 기차가 사라지고 성안길과 도심의 공동화가 시작되었다. 철도의 매력을 외면한 교통정책은 중앙로의 음식점과 숙박시설, 영화관 같은 문화시설과 서점들을 사라지게 했다. 문화시설이 없고 특히 서점이 없는 교육문화도시는 허구다.

청주시는 내년부터 비좁아진 건물을 헐고 크고 넓은 청주시청을 이 주위에 다시 짓는다고 한다. 건축물은 쓰인 자재에 따라 그 수명이 달라진다. 운이 좋고 정성을 들인 석조나 목조 건축물은 천년이 넘게 살아남는다. 무엇을 생각하며 짓는가? 오래 생각해보고, 세우는 일은 천천히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시청을 다시 짓는 해를 헤아려보니 50년이 된다. 50년 전 시내의 대부분이 비포장 흙길이었다. 그리고 모든 차량의 제한속도는 시속 25km였고. 꽃을 보기 위해서 걸음을 멈추는 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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