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 한자루로 14시간 사투벌였건만…무기계약직이라 순직 인정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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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 한자루로 14시간 사투벌였건만…무기계약직이라 순직 인정 안돼
  • 김남균 기자
  • 승인 2017.07.22 15: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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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수해 현장서 오전 7시부터 저녁 9시까지 일하다 심근경색 사망
미니 포크레인만 있었어도…열악한 작업도구 삽,빗자루가 전부
지난 16일 청주시 일원에 290mm의 기습적인 폭우가 쏟아져 도로 곳곳이 물에 잠겼다.

“비록 공무수행 중 사망하였다 하더라도 무기계약근로자의 경우 공무원연금법상 공무원이 아니므로 저희 공단에서 순직여부에 대한 심의나 판단은 불가하며 순직유족보상금 청구 대상이 아님을 알려드림.”(7월 20일 공무원연금공단이 충북도청에 보낸 답변서)

'1+', '1++'. 소고기엔 등급이 붙는다. 마블링이라 불리는 근내지방도, 고기색깔, 지방 색깔, 외관 등의 기준으로 1등급, 2등급 딱지가 매겨진다.

사람에게도 보이지 않는 등급이 매겨진다. 정규직, 무기계약직에 따라 누구는 ‘순직’이고 누구는 사사로운 죽음일 뿐이다.

지난 16일 충북 청주는 물바다로 변했다. 오전 6시 40분부터 굵어진 빗줄기는 7시가 되자 손가락 굵기 만큼 두꺼워졌다. 7시부터 8시사이 한 시간 동안 내린 강수량만 86.2㎜. 오전 11시까지 4기간 동안 264.6㎜가 쏟아졌다.

청주는 순식간에 물에 잠겼다. 쏟아지는 물을 감당하지 못한 하수구 맨홀 뚜껑은 튕겨져 나왔고 물이 지상으로 솟구쳤다. 330㎜ 비에도 끄떡없다던 우수저류시설은 무용지물이 됐고 도로와 건물은 물에 잠겼다.

청주시내를 가로지르는 무심천에는 살수차가 둥둥 떠내려갔다. 산사태로 흙더미가 민가와 도로를 덮쳤다. 교량과 제방이 무너지고 도로는 쓰러진 나무와 흙더미로 가득했다.

예기치 못한 사태에 아우성이 넘친 것은 사람만이 아니었다. 미호천 둑방에 있던 나무들도 물에 잠겼고 이곳에 있던 새들도 ‘꺼억, 꺼억’ 소리를 질렀다. 물에 잠겨버린 둥지에서 미처 날지 못하고 물에 떠내려간 제 새끼를 잃어버린 어미새의 한탄이었다.

완전히 잠겨버린 증평군 보강천

 

 

새들도 ‘꺼억, 꺼억’ 울어버린 22년만의 폭우

 

충청북도 도로관리사업소 직원 박 씨. 그가 맡은 업무는 도로를 보수하고 도색하는 일부터 잡초제거, 로드킬 당한 짐승의 사채를 치우는 일이다.

한달 실수령액은 190만원 남짓이다. 이 안에는 그가 도로보수를 위해 타고 다니는 차량의 유류대도 포함돼 있다. 한달 기름값만 30~40만원들어가지만 이는 박 씨가 부담해야 한다.

작업도구는 삽과 빗자루.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지만 박 씨의 작업도구는 1980년대 시간대에 정지했다.

폭우가 쏟아지던 지난 16일, 새벽 6시에 비상연락이 왔다. 비상소집 연락이었다. 곧바로 7시 10분에 수해현장에 투입됐다. 청주공항으로 향하는 청주시 오창읍에 있는 공항대교 배수로 정비작업을 했다.

장대비는 더 굵어졌다. 8시에는 오창읍 지하차도 및 내수읍 묵방리 지하차도로 옮겨갔다. 도로에 쏟아진 흙더미를 삽으로 퍼내고 각종 부유물을 치웠다.

 

청주시 공무원이 도로에 쌓인 토사를 치우고 있다.

 

공무원연금공단 “무기계약직은 공무원 아냐”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었다. 한 곳을 치우고 나면 곧장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삽 한자루로 버틴 지 10시간 째. 오후 5시에 도로사업소로 복귀해 간단히 요기를 때웠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다시 오창읍으로 출동해 삽을 들었다. 마지막 작업을 마친 시각은 저녁 9시경.

차량안에서 장대비에 홀딱 젖은 작업복을 갈아입고 휴식을 취하던 박 씨는 끝내 쓰러지고 말았다.

지난 18일 충북도는 공무원연금공단에 한 장의 질의서를 보냈다. 도는 숨진 박 씨가 공무원연금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무기계약직 직원이지만 22년만의 폭우라는 비상재해로 인해 공무상 사망한 분으로 ‘순직’ 처리가 가능한지 물었다.

이에 대한 공무원연금공단의 답변은 ‘노’.

공단은 “비록 공무수행 중 사망하였다 하더라도 무기계약근로자의 경우 공무원연금법상 공무원이 아니므로 저희 공단에서 순직여부에 대한 심의나 판단은 불가하며 순직유족보상금 청구 대상이 아님을 알려드림”이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그의 죽음조차도 무기계약직이라는 이유로 서글프게 처리되는 순간이었다.

16일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도로 곳곳에 토사가 밀려들었다.

 

미니포크레인 한 대만 있었더라도…

박 씨가 일했던 도로보수원의 작업환경은 항상 열악했다. 국토부 훈령에는 도로보수원 1인당 비포장 도로는 8㎞, 4차선 도로는 12㎞로 작업구간이 정해졌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충북도 도로관리사업소 직원 1인당 담당하는 구간은 25㎞. 국토부 훈령보다 두 배이상 길었다.

이광희 충북도의원에 따르면 과거 120명이 일했지만 직원이 77명으로 줄면서 이들이 맡은 업무 구간은 늘어났다.

이 의원은 “도로보수원은 미니포크레인이라도 한대 있으면 쉽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다며 도에 요청했지만 예산부족이라며 거절당해왔다”며 “그들의 작업도구는 여전히 삽 한자루와 빗자루였다”고 말했다.

그는 “도로보수원들은 점심식사는 길거리나 마을 정자에서 도시락으로 때운다”며 “‘인원을 좀 늘려 달라’, ‘미니포크레인이 필요하다’, ‘처우개선을 해달라던 요구만 남긴 채 십년만의 폭우로 도시의 절반이 잠기던 날 박 씨는 과로사로 운명했다”며 슬퍼했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일 도로보수원 박 씨에 대해 순직을 인정해야 한다며 이성호 위원장 명의로 성명을 발표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성명에서 "순직이 경제적 보상 이상의 존엄한 명예로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순직 인정은 공무를 수행하다가 목숨을 잃었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국가는 공무 중 사망한 자가 공무원 신분인지와 관계없이, 고용주로서 피고용인의 재해보상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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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일현 2017-07-29 20:56:23 , IP: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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