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청주공장 노동자, 림프조혈기계암 산재 첫 인정
근로복지공단 “과거 열악한 근무환경, 유해물질 노출 인정돼”

SK하이닉스 청주공장 전경(사진 충북인뉴스 DB)

“산재가 승인되어 너무 기쁩니다. 저의 산재승인 결정이 질병으로 고통 받는 SK하이닉스 직원 분들의 산재신청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또한 라인 내에서 유해인자의 인체 노출 저감 활동이 회사 주도로 적극적으로 추진되기를 희망합니다.”

SK하이닉스 청주공장에서 일하다 림프조혈기계암이라는 병은 얻은 A씨가 산재인정을 받은 A씨가 힘들게 소감을 밝혔다.

반올림 소속회원들이 SK하이닉스 청주공장 정문앞에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사진 반올림)

청정공장으로 알려진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백혈병과 같은 혈액암 발병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근로복지공단이 림프조혈기계암에 대해 처음으로 산재를 승인했다.

이에 따라 유사 질병을 앓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해 산재가 승인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현재 SK하이닉스에서 근무하다 같은 혈액암의 일종인 림프종암을 얻은 또 다른 노동자도 산재 심사가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산재신청을 대리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은 반복되는 동종질병에 대해 자동으로 산재를 인정하는 ‘자동인정제’도입이 필요하다며 제도개선을 요구했다.

17일 반올림은 “근로복지공단이 SK하이닉스 청주사업장 노동자 A씨가 림프조혈계암 대해 신청한 산업재해(업무상 질병) 승인 통보를 했다”고 밝혔다.

반올림에 따르면 이번 결정은 SK하이닉스 반도체 노동자의 직업성 암이 산업재해로 인정된 첫 사례다.

산재승인을 받은 A씨는 1995년 SK하이닉스 청주사업장(당시 LG반도체)에 입사했다. 장비엔지니어로 임플란트 공정 및 화학기상증착 공정에서 근무하던 중 2005년 10월 악성림프종이 발병했다. 그는 병을 얻은 뒤에도 악성림프종이 수차례 재발해 10년간 항암치료를 받았다.

A씨는 2015년 3월 근로복지공단 청주지사에 산재보험 요양급여신청을 했다. 이후 2년간 역학조사가 진행됐고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최종적으로 산재를 승인했다.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판정문을 통해, “A씨가 근무하던 초창기에는 각종 유해인자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충분한 보호장구 없이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노후화된 임플란트 설비는 납 차폐가 완전하지 않아 방사선에 노출될 위험의 가능성이 높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에는 현재의 반도체 공정보다 안전관리 기준 제대로 적용되지 못해 현재의 작업환경측정결과나 역학조사 결과보다 실제 유해요인에 노출수준이 높았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산재승인 이유를 밝혔다.

 

반올림 “산재승인에 2년이 걸리다니...” 문제점 지적

 

반올림은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은 환영했지만 산재승인에 2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며 역학조사 과정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이 단체는 “A씨는 산재인정을 받았지만 역학조사 기관인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하 산보연)의 태도는 여전히 문제다”라며 “산보연은 역학조사에 2년이라는 긴 시간을 소요했으면서도, 부실하고 제한적인 일회적 측정 결과로 업무관련성이 낮다고 결론지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번 사건은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최종 심의에서 이러한 역학조사 결과를 뒤엎어 가능했다”며 “기계적 판단으로 업무관련성이 낮다고 결론을 짓고 있고, 이것이 불승인의 주요한 근거가 되는 부당한 역학조사는 전면 개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올림은 “반복되는 직업병에 대해서는 산재가 자동으로 인정하는 자동인정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올림은 “비호지킨 림프종(악성림프종)의 직업적 원인 물질은 이미 밝혀졌다. 반도체 생산 공정에서 노동자들이 원인물질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은 이미 여러 연구결과에서 확인된 사실이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악성림프종(비호지킨 림프종)은 백혈병과 같은 혈액암으로 반복되는 직업병에 대해서는 산재보험이 개별심사 없이도 산재가 자동으로 인정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올림의 지적처럼 근로복지공단은 혈액암의 일종인 백혈병에 대해서는 이미 산재를 인정했다. 2013년 근로복지공단은 매그나칩반도체 청주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故 김진기 씨에 대해서 산재승인 결정을 내렸다. 또 법원도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故 황유미씨에 대해서도 산재라고 판단했다.

반올림 소속 노동자들이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사망한 노동자들의 영정을 들고 거리행진을 하는 장면(사진 반올림)

반도체는 청정산업?…백혈병‧림프암등 각종 질병 잇달아

 

먼지 하나 없는 클린룸으로 상징되는 반도체 산업은 그동안 청정산업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백혈병, 악성림프종 등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직업성 질병에 걸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결코 깨끗하지도, 안전하지도 않다는 점은 점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반올림에 따르면 전자산업과 관련된 직업병으로 추정되는 질병으로 사망했다며 제보된 노동자수가 2017년 5월 현재 총 141명. 이중 삼성전자 79명 등 삼성의 반도체 관련 계열사에서 제보된 건수가 113명에 달한다.

SK하이닉스와 매그나칩 등 기타 반도체 회사에서 사망자로 제보된 수도 28명에 달한다. 청주지역에서는 2013년 산재승인 판정을 받은 매그나칩 소속 노동자 김진기씨도 이에 해당한다.

발병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 반올림은 같은 기간 전자산업과 관련된 질병을 얻었다며 제보한 숫자는 383건에 달한다.

이에 따라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산재신청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반올림에 따르면 2007년 故 황유미씨의 유족이 신청한 사건부터 시작해 2017년 5월까지 총 83명이 산재신청을 했다.

이중 근로복지공단이나 법원으로부터 산재승인 판정이 확정된 사례는 총 17명이다. 2012년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하다 재생불량성 빈혈로 사망한 김지숙 씨의 사례를 시작으로 백혈병, 폐암, 유방암등으로 사망한 11명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를 인정받았다.

법원도 2014년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에 대해 산재 확정판결을 한 이래 지금까지 6명에 대해 확정판결을 내렸다.

반올림이 반도체산업 노동자에 대해 산재신청을 한 질병도 다양하다. 반올림이 공개한 산재신청 질병 유형을 보면 백혈병 21명, 비호지킨 림프종 9명, 재생불량성빈혈 5명, 뇌종양 9명, 유방암 12명, 폐암 6명, 난소암 2명이다.

이 외에도 종격동암(생식세포종) 1명, 갑상선암 3명, 임신성 융모성 종양 1명, 골육종 1명이다. 또 신부전증 2명, 다발성경화증 3명, 전신성홍반성 루프스 2명, 루게릭병(근위축성측삭경화증) 1명, 전산성 경화증 1명, 다발성신경병증 1명, 웨게너씨 육아종 1명, 피부질환 1명, 골수이형성증후군 1명, 뇌의 육종 1명, IGA 신증 1명 등 생소한 질병도 많다.

2014년 한겨레신문은 '또 하나의 비극 하이닉스'란 제호의 기사에서 SK하이닉스에서 발생한 직업병 실태를 보도했다.

SK하이닉스 결코 안전하지 않다.

3년 전 <한겨레신문>은 ‘또 하나의 비극 하이닉스’란 제호의 기사에서 1995년부터 2014년까지 하이닉스에서 일하거나 일했던 노동자 가운데 최소 17명이 백혈병 등 림프조혈기계 질환으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또 1995년부터 2010년까지 28명의 노동자가 림프조절기계 암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수치에 대해 <한겨레신문>은 림프조혈기계 질환의 사망·발병자 비율에서 하이닉스가 삼성전자에 뒤지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백혈병, 비호지킨 림프종 등 피를 만드는 뼛속 조직인 조혈 모세포가 정상적인 분화를 하지 못해 생기는 질병군인 림프조절기계 질환은 대표적인 ‘반도체 직업병’으로 불린다.

그나마 SK하이닉스는 직업병 문제의 보상과 예방을 위해 독립적인 검증위원회를 만들어 삼성과 비교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16년 1월부터 회사로부터 독립기구인 ‘지원보상위원회’를 설치하고 전현직(협력사 포함) 노동자들에 대한 반도체 직업병 의심 사례 지원보상을 실시하고 있다. 이는 근로복지공단을 통한 산업재해 인정과 보상과는 별개로 진행되는 지원보상체계다.

이는 <한겨례신문>의 영향이 컸다. 2014년 한겨레신문 보도이후 직업병 이슈가 발생한 뒤로 외부 전문가와 노사대표로 구성된 ‘산업보건검증위원회’를 발족했다.

이후 검증위원회는 SK하이닉스 사업장을 대상으로 1년간 산업보건 역학조사를 실시했고 2015년 11월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때 산업보건검증위원회가 인과관계를 유보하고 대상 질환자에게 지원보상을 제안했고, SK하이닉스가 수용하여 지원보상이 이루어지게 됐다.

‘지원보상위원회’(www.ohscc.org)는 2016년 1월25일부터 4월30일까지 약 3개월 동안 89건의 사례가 접수됐다.

당시 접수된 질병을 보면 갑상선암이 50건으로 가장 많았고 자연유산이 26건, 유방암이 12건으로 뒤를 이었다. 이어 백혈병 8건, 비호지킨 림프종 8건, 위암 8건, 폐암 등 기타 질병 16건의 질병이 접수됐다.

한편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는 “청주공장에서 일하다 림프종 암에 걸려 투병중인 여성노동자도 산재를 신청해 현재 심사가 진행중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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