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내는 일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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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내는 일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 충청리뷰
  • 승인 2017.07.1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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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이후 작은 개울 모두 복개, 교서천도 막아 도로로 사용
일본식 이름 옛 오정목 청주문화사랑모임에서 방아다리로 바꿔

청주길 사용설명서(3)
윤석위 시인, 청주흥덕문화의집 관장

길을 묻다
길을 찾다
길을 헤매다는 철학적으로 읽힌다
길을 만들다
길을 걷다
길을 가다를 읽으면 꿈속에서 갑자기 현실로 돌아오는 느낌이 든다.

지도상의 길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조선시대 대동여지도를 만든 선각자 고산자가 모든 길을 산길과 물길로 나눈 까닭은 그 속에 사는 사람들과 사람들을 길로 이어보려고 한 것이 아니었을까?

2,000년 직전까지 청주의 도로 기점이 있던 곳은 성안길 청주우체국정문 도로옆 이었다. 국도 36호선, 보령-울진선이라고 불리는 길의 표지석은 그 해 성안길에서 상당로로 옮겨졌다. 상당공원 북서쪽 길가 잘 보이지 않는 정원수 속에 세워져 있다. 보령에서 119.585km, 울진 268.360km라는 돌 표지. 이 표지석 아래에 물길이 숨겨져 있다. 교서천은 우암산 정상에서 발원하여 도지사 관사와 청주향교의 서쪽을 지나(이 때 향교의 교와 서쪽의 서를 따 교서천이 된다) 이른바 교동 상작골을 지나 도청 북쪽을 지나쳐 흐르다가 북쪽으로 방향을 튼다. 1970년 상당로가 4차선으로 포장을 마치자 도로변으로 5층 건물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청주상공회의소 상당예식장이 이때 지어졌다.
 

1980년 이후 우리나라 도심에 흐르던 작은 개울들은 어디라 할 것 없이 냄새와 오물을 가린다는 명분으로 복개됐다. 상당회관 앞 복개도로.


여기에는 당시 서울에서 유행하던 클래식 음악감상실도 있었다. 80년대를 지나며 청주시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더니 맑던 개울들은 급속하게 시궁창 수준으로 더러워졌다. 1979년 도민헌장탑이 세워지던 시절, 우리나라 도심에 흐르던 작은 개울들은 어디라 할 것도 없이 냄새와 오물을 가린다는 명분으로 복개되어 차도가 되고 만다.

도로명으로 보면 이 복개도로는 교동로 3번길이다. 이 길가에 한국은행 충북본부와 수동성당이 있고 오래된 작은 음식점들이 이웃한 관청의 공무원 지갑을 엿보고 있다. 복개되기 전 작은 나무다리들이 수없이 놓여져 있던 좁다란 개울가의 집들이 하나같이 무얼 파는 가게로 바뀐 것이다.

이 길은 본디 물길이어서인가 복개 후 쓸모를 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그 넓은 길이 그저 큰 주차장이 되었다. 한 때 시당국이 서문교 위에 풍물시장을 조성해 성안길 노점상들을 이 구역으로 유도했다가 다시 이곳 복개도로로 옮기게 하기도 했었다.

콘크리트 걷어내고 가재잡는 날 상상

지금이라도 시 당국은 교통학자들과 예술가들의 의견을 들어 명품 자전거전용도로로 만들거나 길가에 작은 꽃밭과 넓은 인도를 두어 관리한다면 도심 속 꽤나 운치 있는 길이 되지 않을까 한다. 또 언젠가 도심이 비고 운송수단이 첨단으로 바뀌어 자동차가 별 소용이 없게 될 때 콘크리트를 걷어내 피라미가 뛰고 가재를 잡는 개울로 돌아갈 수 있을까하는 꿈 같은 생각을 해 본다.
 

청주 상당공원 북서쪽 길가 잘 보이지 않는 정원수 속에 세워진 도로원표. 이 표지석 아래에 물길이 숨겨져 있다.


방아다리 사거리에서 이 도로의 이름은 사북로로 변한다. 방아다리는 1993년 10월에 생겨난 이름이다. 교서천에 세워진 다리 이름 중 일제 강점기부터 50년 넘도록 오정목다리로 부르던 일본식 이름은 나와 우리모임의 일제잔재 청산운동의 1차 척결대상이었다. 중고교시절 오정목은 번화가와 멀리 떨어진 시 외곽과 연결된 다리로, 다리를 건너면 당시 새로 문을 연 우암초등학교와 청주상고(현 대성고), 청주대학, 신흥제분, 연초공장을 지나 진천과 충주로 가는 첫 관문이던 곳이다.

일제는 청주를 남북 중심로는 본정으로, 동서로는 1~5정목을 두어 가로망을 만들었다. 이들 중 오래 남겨져 의미도 모른 채 불리던 이름이 오정목이고 본정통이었다. 몇 차례의 공청회와 세미나를 거치면서 청주문화사랑모임은 한국지명총람 충북편의 청주지명에 남아있던 반다리(개울 반쯤 걸쳐 놓은 나무다리)와 교서천 이 쯤에 있었던 방앗간의 이름인 방아다리를 찾아내었다. 우리는 그해 늦가을 이곳에 지명유래를 적은 지명비를 세웠다. 장한 일이다. 스스로 뿌듯하다.

엊그제 청주에는 기록적 폭우가 쏟아졌다. 시간당 90mm, 누적기록 290mm였다니 엄청난 자연재해다. 무심천이 범람직전이었고 시가지도로가 잠기기도 했다. 비긋고 난 오후, 무심천대교에 서서 어릴 적 무심천 장마에 둥둥 떠내려가던 새끼돼지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때를 생각했다. 작게 물길을 덮어 찻길을 만드는 일과 크게는 산하를 헐어 인위적으로 물길을 조작하는 일은 늘 조심스러워야한다. 자연스러워야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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쩝,, 2017-07-23 18:18:15 , IP:121.1*****
이게 기사여 정보여 머여.. 개인 블로그에나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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