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여성들의 얘기 <여자전>과 <시녀 이야기>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백창화 괴산숲속작은책방 대표

역사 속에 비밀만을 남기고 사라져버린 마야제국이나 영국의 이스터 석상처럼 가끔 해독되지 않는 과거를 만날 때, 우리는 이를 교훈 삼아 미래를 계획하곤 한다. 문자로, 영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열심히 현재를 저장하고 보관하면서 역사가 단절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러나 미래는 과연 우리들의 이런 바람을 보장해줄 수 있을까? 짧게는 백 년, 혹은 수 백 년 후의 지구를 그리는 SF소설들을 읽어보면 인류가 맞이하게 될 미래는 어둡고 우울하고 잔혹하기 짝이 없는 세상이다.

대개 세상은 핵전쟁, 그로 인한 기후 변화, 긴 겨울, 통제할 수 없는 바이러스의 창궐 등으로 철저히 파괴된다. 살아남은 이들에겐 오로지 생존만이 목표가 되는 지옥과도 같은 현실이 펼쳐진다. 이런 소설들을 읽으며 ‘그저 소설일 뿐’이라 안도할 수 있었던 소녀 시절이 좋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경험하게 된 세상은 그렇게 가볍게 치부하기에 너무 망가져가고 있고, 인간이라는 종의 야만성이 충분히 그런 지옥을 불러올만큼 교양을 압도하는 것을 수없이 목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자전>과 <시녀 이야기>는 전혀 다른 세상의, 다른 여성들의 삶의 이야기다. 그런데도 내겐 왜 이 두 편의 이야기가 같은 맥락으로 읽히는 걸까. <여자전>은 식민지와 전쟁, 이데올로기와 분단 같은 한국 현대사를 맨몸으로 헤쳐온 일곱 여성들의 이야기다.

남부러울 것 없는 지역 유지의 딸로 태어났지만 지리산에 들어가 동상으로 발가락이 다 빠져버린 빨치산, 중국 팔로군이 되어 마오쩌둥의 대장정에 참여했던 여군, 만주에서 일본 군인의 성노예 생활을 하느라 자궁까지 적출당한 위안부, 20대에 월북한 좌익 남편을 기다리며 평생을 수절해온 안동 종갓집 종부 등 그들의 삶은 제목만 읽어도 짐작 가능한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의 한 많은 일생이다.

과거의 일과 미래에 있을 만한 일

오랫동안 실존 인물을 취재하고 그들의 삶을 글로 써 온 김서령 작가는 이들 여성들의 목소리를 불필요하게 과장하거나, 왜곡하지 않고도 읽는 이에게 절박함과 진한 감동을 안겨준다. 그동안 너무나 많이 읽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이야기들이었음에도 읽어가며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핑 돈 적이 여러 번이었다.

<여자전>이 실제의 삶을 재구성한 논픽션 다큐멘터리라면 <시녀 이야기>는 소설이다. 책을 다 읽을 때까지도 구체적으로 어떤 시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지만 미루어 짐작 가능하다. 그것은 아마도 위에서 말한 대재앙 후, 종말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세계이며 여성을 인류의 번식과 종족 보존을 위한 도구로 관리하는 사회이다.

하나는 지나간 과거에 실제 있었던 일이고, 하나는 먼 미래에 있을 법한 일을 다룬 가상이다. 한국 여성의 삶과, 외국 여성의 이야기라는 차이도 있다. 그런데도 이 두 작품은 나란히 우리들에게 묻는다. 여자라는 생물학적 종에 대해, 여성의 삶이란 것에 대해. 자유와 인권 대신 억압과 폭력만이 남은 세상에서 여성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각인되는지에 대해.

<여자전>에 부제로 달려있는 ‘한 여자가 한 세상이다’는 카피는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준다. 역사는 대개 남성들의 목소리를 담지만, 정작 처절하게 역사의 길을 걸어왔던 여성들의 목소리는 묻혀 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미래에 진정으로 해독되기 위해서는 여자들의 삶에 귀 기울여야한다는 것을 이들 여성 작가들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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