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강희의 同床異夢

홍강희 충청리뷰 편집국장

지난 16일 일요일. 평온하던 청주시가 물바다가 됐다. 몇 시간 동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우가 쏟아졌다. 시간당 91mm로 기록됐다고 한다. 잔잔하던 무심천은 순간 시커먼 황톳물이 흐르는 강으로 돌변했다. 80년대에 한 번 놀라게 한 뒤 화를 내지 않던 무심천은 도시를 집어삼킬 듯 무서운 얼굴이 됐다. 무심천을 끼고 살아가는 분평동, 영운동, 모충동, 석교동, 사직동, 운천동 등의 주민들은 근처에 나가 발을 동동 굴렀다.

저수지를 바라보며 산책하기에 좋은 명암지도 이 날 돌변했다. 주말이면 가족들이 오리배를 타고 놀던 곳이었으나 황톳물이 넘쳐 결국 명암타워 1층이 침수됐다. 비가 멎은 오후 인근 주민들은 명암지를 바라보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무심천이 넘치지 않은 것은 다행이나 청주시도 더 이상 자연재난으로부터 안전한 도시가 아님을 알 게 됐다. 하긴 자연재난으로부터 안전한 도시가 어디 있겠는가. 그동안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뿐이다. 청주시도 차제에 안전점검을 확실히 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그런데 이런 소식들은 페이스북 생중계와 글을 통해 접했다. 시민들은 각자 자신들이 본 상황을 신속하게 전했다. 이어 도움의 손길도 먼저 내밀었다. 박연수 (사)이재민사랑본부 대표는 긴급 이사회를 열고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 등 직접구호에 나섰다고 알렸다.

또 김호일 청주문화재단 사무총장은 월요일 대책회의를 하고 지하실을 사용하는 작가나 공연연습실을 사용하는 예술인들의 비 피해를 조사해 방안을 마련하는 등 바라만 보지 않겠다고 썼다. 김 총장은 각 구청별 이재민 대피시설 목록도 올렸다. 충북적십자사 긴급재난구호대책본부에서 피해접수와 구호물품 전달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올린 사람도 있었다.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공중파 방송과 종편들은 폭우가 쏟아지던 시간,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을 외면하고 드라마나 정규방송을 내보내 원성을 샀다. 방송들은 비가 그치고 저녁 뉴스 시간에서야 수해 소식을 전했다. 언론은 이렇게 정작 필요한 시간에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크게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도 방송을 하지 않아 주민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모두가 TV뉴스와 페이스북을 통해 소식을 접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관리사무소에서는 상황 설명을 해줘야 한다. 요즘에는 노인 1인가구가 많아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바깥소식을 모를 수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평소 공동질서 생활규칙을 자주 방송하더니 그 날 따라 아무 방송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도대체 우리 아파트는 피해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긴 하루가 지나고 이제 정치인들이 너도 나도 현장으로 가고 있다. 피해상황 청취를 위한 발걸음이다. 물론 상황을 파악해야 지원대책도 논의하는 것이지만 정치인들이 유행처럼 현장으로 달려가는 것을 경계한다. AI사태 때 단체장, 국회의원, 도의원, 시의원, 그리고 기타 관계자들이 잇따라 방문하자 담당자들은 업무보다 정치인들 접대가 더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상황 브리핑하랴, 접대하랴, 사진 찍으랴 형식적인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뺏긴다고 했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낯내기 좋아하고, 그것을 꼭 사진으로 남기려는 정치인들의 행차는 오히려 일을 더디게 만들고 있다. 지역민들에게 보여주기식 행동밖에 되지 않는다. 내년에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아마 별별 사람들이 다 나설 것이다. 하지만 정치인들이여, 요란한 행차를 자제하고 뒤에서 조용히 돕는 미덕을 발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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