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 다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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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 다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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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7.13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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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마음 달라 여전히 힘들어
먼지 쌓인 식탁, 꼬질꼬질한 의자, 고양이 등이 식사 방해

안남영의 赤道일기(19)
전 HCN충북방송 대표


집사람이 이곳에서 3주 머무르다 혼자 귀국길에 올랐던 지난 2일 밤, 여기서 출발한 비행기가 연착하는 바람에 자카르타에서 인천행 비행기를 놓쳐버렸다. 출국수속에 촉박할까 봐 수수료를 물고 시간을 앞당겼지만 2시간 이상 지연 출발한 것이다. 문제의 항공사(라이온에어)는 안 그래도 상습적 지연발착으로 평이 안 좋았으나 올 들어 나아졌단 말을 들어서 이용한 건데 그예 된통 당하고 말았다. 예정대로라면 3시간이나 여유 있었다. 생각 끝에 항의메일을 보냈더니 항공사는 “미안하다”면서도 “연결항공편을 놓친 건 고객 책임”이라며 오히려 시간 계산을 잘못한 고객을 탓했다. 이 회사는 운항스케줄을 멋대로 변경하기도 했는데, 지난 4월 밤비행기가 갑자기 저녁비행기로 바뀌는 바람에 일정 차질을 겪어야 했다.
 

상수도 보급이 미흡해 물가 주민들은 탁한 ‘자연수’로 빨래, 샤워는 물론 양치도 한다.


또 2개월 전 자카르타 왕복항공권을 취소해야 할 일이 생겨 하루 전 이 항공사에 통보했다. 나중에 환불을 요구하자 “항공권구매 대행사에 알아보라”고 했다. 그런데 대행사는 작정한 듯 ‘오리발 모드’로 나왔다. 처음엔 “노쇼로 처리돼서 환불할 수 없다”라더니 “왕복항공권 중 상행만 취소 처리됐다”고 입장을 바꿨다. 주변에선 포기를 권했지만 나는 집요하게 이메일로 반박했고 “왕복 취소 사실이 확인됐다”, “50% 환불키로 결정했다”까지 밀어붙였다.

여기까지 열흘 걸렸다. 3개월 소요 단서가 붙었지만 ‘그래도 답장 준 게 어디냐’ 싶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도 무소식인지라 전화를 걸었다. 상담직원이 내 계좌 확인 절차를 밟기에 이제 환불되나 보다 했는데 한 달이 가서 또 문의했다. 또 “절차상 2~3개월 걸린다”는 대답이다. 포기를 노린 시간 끌기 전략이 아니라면 뭘까?

배신감 오래가는 ‘딴소리 작전’

상수도 보급이 미흡해 물가 주민들은 탁한 ‘자연수’로 빨래, 샤워는 물론 양치도 한다.

며칠 전 개수대 수도꼭지 고장으로 사람을 불렀다. 아침에 부탁할 땐 7만 루피아로 깎아 준다더니 점심때쯤 와서 작업하고는 8만 루피아를 요구했다. 결국 7만5천 루피아를 주고 말았다. 이달 초 주택단지 경비원이 관리비를 걷으러 왔을 때다. 그는 거스름돈의 반만 건네고는 눙치고 딴청을 부렸다. 그는 전에도 “잔돈이 없다”며 3개월 연속 거스름돈을 안 주던 사람이었다. 지난 5월 반자르마신 공항에서 잡아 탄 택시 기사도 집에 다 와서 딴소릴 했다. 우리 동네까지는 협정요금이 13만루피아로 선불이다. 그런데 골목으로 들어가자니까 “너무 멀리 왔다”며 1만 루피아를 더 요구했다. 거부하고 그냥 내린 내게 그는 위협적으로 차를 몰아 막아 세우기까지 했다. 다들 계산에 약한 건지, 화장실 들 때와 날 때 맘이 다른 건지….

인도네시아 생활이 20개월을 넘겼건만 아직도 이런 ‘오리발 서비스’가 좀 불편하다. 앞뒤 계산에 약해서 나중에 딴소리하거나 ‘아니면 말고’식의 상황처리를 전략으로 삼는 현지인에게 한두 번 당해 보지 않은 교민이 없다.

문득 돌아보니 나를 힘들게 하는 것 중 이게 어느새 맨 위로 올라와 있다. 처음엔 더위, 모기, 불결한 환경, 그리고 사람들의 딴소리 순이었는데 지금은 다르다. 더위는 적응된 편이고, 차 안이고 사무실이고 가는 곳마다 동석하게 되는 모기도 어찌된 일인지 그 개체수가 크게 줄어 요즘엔 별 신경 안 쓰고 지낸다. 또 불결도 질끈 눈감으면 그만 아닌가? 하지만 면전면후가 다른 사람들 딴청을 보는 건 불쾌하다. 배신감이 오래 감치기 때문이다.

개화기 때 한 영국인이 “조선에서 가장 깨끗하다는 사람이 내가 본 가장 더러운 사람이다”라고 했다던가? 구한말 윤치호가 상하이 망명 당시 미개니 야만이니 하며 중국을 비판한 것도 오물 때문이었다. 영국인의 시각, 윤치호의 시선과 같을 수 없겠지만 이곳의 불결도 불편한 진실이다. 첨엔 잠복했던 결벽증이 중추에까지 퍼져 힘들더니 이젠 견딜 만하다. 종종 누런 물로 설거지와 샤워 하는 것도 좀 적응됐다. 집안에서 쥐를 잡고 도마뱀 흔적을 지워야 하는 일도, 마당과 물탱크 밸브 주변에서 매일 정체불명의 배설물을 보는 것도 일상이 된지 오래다.
 

식당에 가면 으레 고양이들이 돌아다니는데 어떤 땐 식탁에 오르기도 한다.


지저분한 강물에서 양치질까지

그런데 화장실 오수가 정화조를 거치는 줄만 알았다가 그냥 집 바닥 밑으로 배출되는 걸 최근에야 알고 또 불편해졌다. 오니 가득한 집 아래 물웅덩이에서부터 더욱 혐오스러운 크고 작은 배수로, 수상가옥이 즐비한 강변에 이르기까지 오염원 배출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황이 안타깝다. 환경의 지속가능성과 행정력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가장 힘든 건 곰팡이. 방안에서 선풍기 바람만 쐐도 알레르기비염이 도진다. 곰팡이가 원인인 걸 나중에 알았다. 책상 등 가구를 수시로 닦아내도 습기 등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열린 통풍구조 때문에 매일 쓸어도 먼지와 개미 등 벌레가 쓰레받기에 수북하다.

문을 온통 열어놓고 영업하는 대중식당은 외부 먼지와 친화적인 구조다. 주방도 출입구 쪽에 개방된 형태로 꾸며져 있다. 음식에 작은 벌레가 종종 발견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먼지가 뽀얀 식탁, 꼬질꼬질한 의자, 그 옆에는 고양이. 속편한 식사를 방해하는 것들이다. 숟가락, 포크, 빨대를 건네줄 때나 음식을 내올 때 입대는 부분과 음식에 지문은 왜 찍는지…. 그것도 방금 전 돈 계산하거나 담배 피우던 손일지 모르는데 말이다.

우리도 예전에 그랬지만 여기 지폐는 참 꼬깃꼬깃하고 더럽다. 어떤 건 어물전 주인이 생선 다듬다 만진 것 같아 지갑에 넣기가 께름하다. 재래시장의 위생 문제를 취재해 보진 않았지만 어물전이나 닭고기 가게를 기웃거려본 눈썰미로는 그 유통과정이나 부산물 처리에 문제가 많을 것 같다. 도마의 위생상태만 봐도 심증이 굳어진다.

놀라운 사실은 수상가옥 주민들은 오수가 그냥 유입되는 강물이나 도랑물에서 양치까지 한다는 것. 빨래에도 더러워 보이는데 머리를 감고 입을 헹구다니, 내공이 따로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여기 사람들은 모기에 잘 물리지 않고, 수인성 전염병 얘기도 못 들어봤다. 또 집 웅덩이나 배수로의 썩은 물에서 역한 냄새가 별로 안 난다. 이런 이유로 위생관념이 좀처럼 개선될 것 같지 않지만 어디까지나 이방인의 왜곡된 시각일 뿐 이는 ‘사람 사는 세상’이란 믿음의 근거가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이곳 생활의 적응 과정은 불편한 감정 다스리기로 요약될 수 있겠다. 하기야 봉사하겠다는 자가 열악을 불평할 수는 없잖은가? 겁, 놀람, 짜증, 화 같은 나쁜 감정이 때론 상승작용도 일으키지만 종국엔 어떤 뇌세포 안에서 수긍이 되고 추억이 되어 감을 깨닫고 있다. 그 세포 이름은 ‘문화적 상대주의(cultural relativis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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