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많은 길은 좋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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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많은 길은 좋은 길이다
  • 충청리뷰
  • 승인 2017.07.13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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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뿔모양 꽃 탐스럽게 피는 충북도청 정문 앞은 ‘마로니에 길’
옛 청주여고 정원에는 낙우송이 그대로, 압각수와 비견될 듯

청주길 사용설명서(2) 대성로2
윤석위 시인, 청주흥덕문화의집 관장


『길에는 가로수를 심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가로수는 대개 5m 간격으로 심는다. 나무뿌리는 가지의 넓이만큼 자라기 때문에 가로수를 잘 선택해서 심지 않으면 보도블럭을 뚫고 나오거나 아스팔트를 밀어올리기도 한다. (낙우송이나 메타세쿼이아 등의 나무뿌리는 별스럽게도 knee roots가 있어서 숨쉬는 뿌리가 공기중으로 자라난다) 길가 울타리로 심는 나무들은 촘촘하게 심어 관리하는데 수종에 따라 간격을 달리한다. 전봇대는 50m로 세우고 가로등은 대략 15m 간격을 두어 세운다. 가로수와 전봇대 가로등과 같은 도로 시설물들은 서로 간섭하거나 겹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것들을 모른다고 길을 걷는데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충북도청. 향나무와 측백나무가 담장 역할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청주의 중심이라 하면 단연코 중앙공원이었다. 그곳 주위에 문화원이라는 전시장과 시민관이라는 공연장, KBS방송국이 있었으며 오래 묵어 창연한 병마절도사영문과 고렷적부터 살았다는 거대한 은행나무인 압각수가 늠름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이었다. 50여년이 지난 지금, 서울 탑골공원처럼 중앙공원은 노인천국이다. 젊은이들은 없다. 오전부터 벌이는 노인들의 윳놀이로 노년의 하루를 소비하는 시민들이 ‘불편해 하는 곳’이 되었다.

요즘의 청주 중심은 충북도청과 상당공원이다. 대성로의 가운데가 새 중심이 되었다는 뜻이다. 당산과 문화동 길은 읍성의 동문을 이으며 사거리를 만든다. 당산은 주술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산이다. 조선시대 관청에서 공식 제례를 이곳 당산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우암산 토성의 남쪽 끄트머리이다. 아마도 옛 청주목사님은 때를 맞추어 동문인 벽인문을 열고 도청 앞 잉어배미 논길을 지나 당산으로 올랐을 것이다. 이 길이 마로니에길이다.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눈물 속에 봄비가 흘러내리듯 /임자 잃은 술잔에 어리는 그 얼굴~”

나무도 영혼이 있다

마로니에는 오래 전 박건이라는 가수의 노랫말 속에 나오는 우아한 나무이다. 프랑스를 상징하는 샹젤리제 거리의 가로수로 유명한 프랑스 이름의 나무다. 학명은 잎새가 일곱장으로 칠엽수로 부른다. 누가 이 나무를 여기에 심었는지 기록은 없지만 40년생쯤인 이곳 가로수는 늦봄부터 초여름까지 희고 탐스러운 원뿔모양의 꽃을 피워낸다. 가을에 익는 열매는 알밤과 비슷해서 혼동하기 쉬운데 약용으로 쓰인다. 도청 앞부터 상당공원을 지나 옛 청주여고 담장을 끼고 걷는 길은 나무들이 있기에 새벽엔 산속 숲길 같다.

도청은 1936년 준공됐다. 잉어배미(잉어가 노는 둠벙이 있는 논배미)를 메워 도청을 짓고 정원을 만들었다. 그 때 심은 나무들은 구순이 되었을 것이다. 신임 도지사가 부임하면 관례로 꼭 한 그루씩 나무를 심었다. 기념식수. 건물 앞에 심겨진 커다란 둥근 향나무에도 몇몇분의 지사 이름이 돌에 새겨져 있다. 나무처럼 향기 나는 도정을 펴겠다는 각오로 나무를 심었을까? 나무는 있는데 사람은 없다. 그게 세상사다.

도청 담은 향나무와 측백나무로 된 나무울타리다. 오래 산 향나무울타리에는 요즘 말매미들의 허물벗기가 한창이다. 꼭 이맘때 뿌리근처 땅속을 헤치고 향나무를 타고 기어 오른다. 맴맴~ 한여름에 마치 시위 군중처럼 소리친다. 사람들에게 무얼 요구하는 걸까?

건너편 중앙초등학교는 율량동으로 이사 간 뒤로 비어 있다. 요즘 운동장을 주차장으로 쓴다. 아이들이 떠드는 활기찬 소리는 사라지고 조회시간 줄을 맞춰 선 아이들처럼 차들이 줄을 맞춰 서 있다. 운동장주위에 둘러 심은 플라타너스가 학교 나이만큼 자라서 둥치가 두 아름이 넘는다. 충북도의회가 건물을 부수고 새집을 짓겠다는데 이 플라타너스는 살아남을까? 걱정이다. 나무를 함부로 자르고 없애는 자, 나무곤장으로 망하리라!

나무들은 대개 사람들보다 훨씬 오래 산다. 천년을 넘어 살기도 한다. 큰 나무를 바라볼 때 평온해지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생명체인 나무속에도 영혼이 있다는 것 때문이다. 미국의 남북전쟁이 한창일 때 부상자들이 넘쳐나 병동에 모든 환자를 수용할 수 없어 숲속 텐트에서 치료를 받도록 했더니 오히려 병실보다 치료효과가 훨씬 컸다는 얘기도 있었다. 가로수든 정원수든 잘 가꿔진 나무가 있는 길은 쓸모 있고 또 아름답기까지 하다.
 


경비 삼엄한 한국은행 충북본부

상당공원은 생긴 지 얼마되지 않은 젊은 공원이다. 40년 전엔 도청과 개울하나로 이웃해서 경찰학교가 있었던 곳이다. 개울은 콘크리트로 덮어 사라졌고 경찰학교 서쪽에 있던 동아극장과 청주여고 정문앞의 호떡집도 사라졌다. 남겨진 것은 경찰학교 관사 뒷편의 등걸이 검은 가죽나무와 상당공원 서편에 우뚝한 쌍 메타세쿼이아뿐이다.

교동초등학교와 청주여고 앞에는 작은 문방구가 있었다. 얼마 전까지 업종을 편의점으로 바꿔하다가 교동터널이 생긴 이후에 길을 넓히는 바람에 그나마 헐리고 없다. 그래도 공원 동편 내 친구 3층집에는 아직도 친구의 어머니가 늙은 나를 알아보신다. “그때 너희들은 만화책을 참 좋아했었지!”

키 큰 낙우송을 볼 수 있는 옛 청주여고 교정.

1981년 청주여자고등학교터가 반으로 나뉘어 북쪽 편에 한국은행청주지점이 들어왔다. 다행스럽게도 남쪽의 반 정원부분은 예전 그대로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키 나무로 분류되는 낙우송이 교정에 살아있다. 산책삼아 대성로를 지나면 강당동쪽에 우뚝한 나무를 보아야 한다. 그 크기가 아마도 영동 천태산 은행나무나 중앙공원의 압각수와 비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거리에는 특이한 건물이 있다. 석조건물인 한국은행 충북본부는 매우 위압적이다. 이 은행이 하는 일이 시중은행과 좀 다를 거라는 선입견을 감안하더라도 도대체 은행 같지 않다. 군사시설이나 법원 검찰청건물보다 삼엄하다. 정문을 들어서 건물주변을 두리번거렸더니 제복차림의 경비원이 “무슨 일로 왔느냐며 나무사진은 몰라도 건물사진은 찍지 말라”라면서 얼른 나가시란다. 말이 안되는 추방령이 재미있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짝이 없다. 아무튼 군부대 벙커처럼 생긴 건물이지만 잘 관리된 나무들이 그나마 위압감을 가려주고 있다.

우암산 순환도로 사거리부터 북쪽과 동쪽은 수동이다. 오래 전 이곳에 23육군병원이 있었다.

사거리 청원군산림조합건물에는 지금은 바리스타컴퍼니라는 커피집이 있고 중앙시장쪽으로 흐르던 개울도 덮혀 이곳에 언제 개울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인쇄 일거리가 많은 도청과 가까워서 곳곳에 인쇄소가 문을 열고 있었다. 이곳의 인쇄소도 시나브로 사라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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