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내년 지방선거를 1년 앞두고 지역사회에서 시민후보 출마론이 다방면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와 유사한 담론은 과거 선거에서도 간간이 돌출됐지만 이번에는 좀 다른 것같다. 촛불집회의 잔영이 우리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상황에서 그 어느때보다도 지방자치와 지방정치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다.

특히 청주는 그동안 시민사회단체 활동의 전국적인 선도지역이 되어 왔다는 점에서도 시민후보 차출론은 일반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미 몇몇 인사들의 이름이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있고 언론 역시 이의 개연성을 예단하는데 조금도 인색하지 않는다. 지난날과는 분명 다른 분위기이다.

사람들의 얘기를 듣다보면 시민후보 출마론은 크게 두가지 관점에서 출발한다. 하나는, 이젠 시대가 바뀐만큼 도내 지방자치와 지방정치도 전직 관료나 지방토호, 명망가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엔 말만 민선자치이지 지방행정과 지방정치가 기성 정당구도에 예속돼 끊임없이 휘둘리고 있다는 자성론이 함께 한다.

다른 하나는 지방행정이 너무 관행, 관료적으로 운영되는 탓에 역동성은 물론이고 독창성이나 창의력이 타 지역에 비해 떨어진다는 상대적 박탈감이다. 아예 충북도와 청주시를 꼭 찍어서 “파격(破格)이 없다보니 지방행정이 도무지 재미도 없고 신바람도 안 난다”는 불만섞인 푸념들도 거침없이 터져나온다.

국정농단으로 시작된 정권교체 과정만을 보더라도 사회변혁의 궁극적인 힘은 무슨 제도권의 기제(機制)보다는 시민과 대중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국민 모두가 확인했다. 정치 행정 입법은 물론이고 적어도 제 4부라는 언론조차 결정적인 순간엔 국민의 뜻에 응하지 못했음을 똑똑히 목격한 것이다. 오히려 언론은 기회주의적이고 작위, 편의적이었으며 비겁하기까지 했다.

결과론적인 얘기이지만 시민들의 용기가 없었다면 국정농단에 대한 응징은 용두사미로 끝날 수도 있었다. 이 때 길을 찾고 열어준 것은 촛불로 상징되는 시민운동이다. 사람들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시민운동가, 시민후보의 등장을 바라는 건 이의 학습효과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역에서 시민후보의 탄생, 그리고 그들의 당선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역시 주목되는 인물은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박원순은 시민운동가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확실하고 기획적인 이력을 쌓아 왔다.

시민운동가가 추구하는 가장 큰 목적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 그리하여 스스로를 쇼셜디자이너라고 칭하는 박원순은 사실 시민운동가의 사회참여를 논할 때 그 자체로써 많은 이들에게 길라잡이가 되어 왔다. 한 편의 드라마였다고 할 정도로 열정, 격동적이었다. 서울대 합격과 제적, 그리고 옥살이, 등기소장 발령과 사표, 사법고시 합격, 인권변호사 개업 등도 그렇거니와 참여연대,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로 이어지는 시민운동은 그 누구도 쉽게 따라하지 못할 경지를 일궈냈다.

사람들이 이러한 과정을 되새길 때 잊지 말아야할 것이 하나 있다. 그는 사회변혁을 위해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행동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행동엔 늘 타이밍과 결단이 함께 했다. 직장은 가장 안정적일 때 떠났고 시민운동은 자신이 온 몸을 던져 조직이 정착될라치면 미련없이 후임에게 맡기고 물러섰다.
 

사진은 청주 제2쓰레기매립장 특혜논란과 관련된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모습. 복마전이라고 표현되는 이 문제의 해법은 결국 시민운동의 강력한 투쟁에 달렸다는 여론이 많다.

이같은 치열한 삶에 정작 본인은 산 것이 아니라 투쟁의 즐김이었다고 한다. 대충만 봐도 구로동맹파업사건, 부천서성고문사건, 보도지침사건, 미국문화원사건, 사법개혁운동, 소액주주운동, 예산감시정보공개, 낙천낙선운동, 이동통신요금인하, 대선정치자금감시운동 등이 그가 이끌었거나 관여한 시민운동이다. 이렇게 하여 박원순은 그가 꿈꾼 사회운동의 마지막 정점, 대통령이 되기 위해 지난 대선에서 출사표를 던졌지만 선택받지 못했다. 지역의 시민운동가들은 이 때 자신들의 롤모델인 박원순을 돕기 위해 알게 모르게 팔을 걷어부쳤다.

박원순 얘기를 길게 하는 이유가 있다. 내년 지방선거의 시민후보 차출론에 당위성을 이입하기 위해서다. 시민운동가들이라고 해서 그들에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최근의 장관내정자 청문회를 보더라도 자연인에게 완벽한 도덕성과 청렴을 바랄 수는 없다. 그렇게 하려면 평생 이슬만 먹고 살아야 한다.

다만, 시민후보를 원한다면 박원순의 반만큼은 생각하고 행동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개인의 일상보다는 타인을 위한 봉사와 희생, 그리고 배려에 방점을 뒀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래야만 시민후보를 꿈꿀 수 있다는 것이다. 하여 묻겠다.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시민운동이 어느덧 관료화되지는 않았는지, 편한 것과 쉬운 것에 탐닉하며 현실안주에 젖어있지는 않은지. 우선 이것부터 스스로에게 질문하기를 바란다.

민주주의는 지식의 산물이 아니다. 투쟁의 결과다. 마찬가지로 시민운동은 머리의 생산품이 아니다. 열정과 행동의 결과물인 것이다. 시민운동의 가장 큰 원천은 정의감이 아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마음과 행동의 삿됨이 없는 ‘정직함’이다.

여기서 한가지 팁, 박원순은 또 한번 도전을 감행할 것이다. 그가 지난 대선에서 절감한 정치적 현실의 벽, 그 벽을 깨기 위해 다음번엔 서울시장 재도전이 아니라 국회의원을 넘볼 수도 있다.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시민운동은 이처럼 늘 도전이고 파격이고 혁신이고 모험이다. 사회변혁 자체가 구각(舊殼)을 깨지 않고선 절대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시민후보의 등장을 학수고대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에 자신이 있다면 나서라! 그러면 선택받는다. 시민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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