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교초~청주대, 오래되고 낡았으나 얘깃거리 많은 길
그 많던 학교들 신주거지 용암동과 율량동으로 이전

청주길 사용설명서(1) 대성로1
윤석위 시인, 청주흥덕문화의집 관장

 

윤석위 시인, 청주흥덕문화의집 관장

이번주부터 윤석위 청주흥덕문화의집 관장의 ‘청주길 사용설명’을 매주 게재한다. 평소 청주시내 골목과 오래된 길을 걸으며 생각해 온 윤 관장의 인문학적 글이다. 여기 등장하는 길은 어렸을 때부터 걸었던 우리 모두가 아는 그 곳이다.

눈에 뵈는 세상 어느 제품에나 사용설명이 붙어있다. 셔츠에도 팬티 안쪽에도 세탁기나 핸드폰에도 있다. 두통약에는 복용설명서가 단편 소설급으로 길다. 약의 성분과 효과, 먹는 방법에 보관법까지 상세하기가 백과사전 같다. 유명한 진통제의 사용상주의사항을 보니 다음과 같은 경고문도 있었다.

‘매일 세잔 이상 정기적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이 이 약이나 다른 해열 진통제를 복용할 경우 반드시 의사 또는 약사와 상의하여야 한다.’ 안하면 위반이 된다. 대개 사용설명서 또는 복용안내서를 다 읽기 전에 두통이 더 심해질 수 있겠다.

청주의 길을 천천히 걷고 싶은 이에게 약품복용 안내서 같이 머릿속을 헝클어 버리는 얘기를 전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동네 길을 걷다가 스치고 지나치는 풍경 속에도 그 풍경만의 특징이 있기 마련인지라 그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을 따름이다. 그것을 찾아 걷는다.
 

석교초에서 도청쪽으로 가는 길가에 있는 점집들.

석교초 근처에 점집 성황

금석교를 지나 석교초등학교에서 구법원사거리를 건너고 도청을 지나 청주대학교까지가 대성로다. 이 길은 청주에서 오래되고 낡았으며 좁지만 얘깃거리가 많은 중요한 길이다.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 거리다. 인도는 좁아서 있으나 마나 이다. 곳곳에 전봇대들이 불쑥불쑥 나타나 무례하게 앞을 가로막는다. 석교동 서운동은 상태가 더 나빠 낡은 건물과 불량한 간판들 때문에 눈을 둘 곳이 없을 지경인데 그나마 충북도청부터 제법 깨끗해진다. 예로부터 관청주변은 깨끗하다.

남북으로 이어진 이 길 옆으로 청주의 유명한 학교들이 구슬처럼 꿰어져 있었다. 석교초등학교-중앙초등학교(율량동으로 옮김)-교동초등학교(용암동으로 옮김)-청주여고(율량동으로 옮김)-주성중학교(율량동으로 옮김)-대성여중-대성여고-우암초등학교-대성고등학교-청주대학교가 잇달았다.

아마도 청주가 고향인 나이든 이들의 절반이상이 이곳 학교를 다녔을 것이다. 이제는 세월이 변하여 도심은 비어가고 사람들은 외곽으로 아파트를 지어 이사 갔다. 사람들은 세련되게 도심공동화라고 하는데 느낌이 어줍고 쓸쓸하다. 그러나 이 길은 아직도 길 이름처럼 대성(大成)을 꿈꾸고 있다.

대성로에는 남쪽 서운동과 북쪽 수동에 천주교회당이 하나씩 세워져 오래묵은 교회의 역사가 되었다. 성당주위도 늘 깨끗하다. 불결함은 불경함으로 통하나보다. 석교초등학교는 1937년에 세워졌으니 80노령이 되었다. 얼마 전까지 학교 앞에 있던 작은 문방구점은 이제는 없다. 학부형들이 대형마트에서 학용품을 사거나 인터넷으로 주문하여 쓰는 세월에 견딜 힘이 어디 있겠는가? 스스로 문을 닫은 문방구처럼 인구가 적어져 사라진 가게에 새롭게 점집만 스무곳이 넘는다.

선녀보살, 벼락대신, 애기동자, 방울동자.... 절집표시인 만(卍)자 깃발을 단 점집이다. OO암 등의 사찰처럼 불상을 모셔놓았다. 또는 호랑이등에 앉은 신령을 모시기도 한다. 불안에 기댄 상담업, 이들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다.
 

청주시 석교동 석교초 입구.

대성로 너무 좁아 변화 필요

세무서에 업종을 신고한다면 ‘개인운명철학상담업’일까? 일종의 소매 상담업으로 구원파니 신(?)천지파와 같이 대규모로 성장한 세력도 있는 것을 보면 운명을 볼모로 하는 점집은 영원하지 싶다. 瑞雲洞(서운동)에서 상서로운 기운을 얻어 大成(대성)하려는 소망이 점집을 이 길 주위로 모으는 이유는 아닐까?

그리 오래 갈 것도 없이 50년 전인 1960년대까지 이 길의 중심부에는 충북에서 가장 무서운(?) 곳들이 모여 있었다. 충북경찰청, 충북지방검찰청, 충북지방법원 그리고 길 건너 동쪽에 커다란 교도소가 함께 있었다. 그 때문에 2008년 수곡동에서 산남동으로 법원과 검찰청이 옮겨간 뒤에도 지금까지 옛 일제강점기의 법원사거리가 구법원사거리로 불리고 주변에는 그때 지어졌던 낡은 2층건물들이 몇 채 남아 있기도 하다. 그 구법원사거리의 법원자리에 대형 주상복합 건물이 지어지고 있으니 주변 거리도 덩달아 정돈될 것을 기대해본다.

또 내년 시장선거 공약으로 좁다란 대성로를 넓히겠다, 북쪽으로 가는 일방통행로로 쓰고 청주대사거리에서 육거리까지 간선도로는 하행 일방통행로로 쓰겠다는 공약을 누군가 해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런 공약하는 이에게 아낌없는 한 표를 던지겠다. 그래야 대성로가 큰 길다워질 게 아닌가?

모든 길이 넓어져야 길다워지는 것은 아니다. 좁다란 골목길에서 만나는 풍경의 소박함과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 골목길을 즐겨찾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해도 대성로는 좁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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