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식을 통해 욕망을 절제하고 성찰, 신에게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믿음
라마단 기간 동안 음식점 영업하면 벌금·영업정지, 학사운영에도 영향

안남영의 赤道일기(18)
전 HCN충북방송 대표

라마단은 이슬람 달력의 9월을 의미한다. 올해는 5월27일 시작해서 6월24일 끝났다. 처음 인도네시아에 와서는 라마단이 되면 세상의 공기가 달라질 정도로 어디든 긴장이 감돌고 사람마다 매우 민감해져 있는 줄 알았다. ‘피로 물든 라마단’, ‘라마단 폭탄 테러’ 등 예전에 본 기사 제목들이 떠올라 선입견이 생긴 데다, 라마단 시작에 앞서 코이카로부터 “각별히 안전에 유의하라”는 당부 메일을 받기 때문이다. 어떤 책을 보니, 라마단 17일째(바드르 전투기념일)와 알라가 무함마드에게 코란을 계시한 27일째(권능의 밤)는 알라를 기쁘게 하면 천 배로 보상받는다고 믿는 무슬림들이 많다고 한다. 라마단 기간에 테러가 잦은 이유다.

올해도 세계 도처에서 벌어진 사건 때문에 라마단 하면 한국에선 끔찍한 테러와 광기가 연상되겠지만, 무슬림들에겐 성스러운 종교의식일 뿐이다. 이들은 금식을 통해 욕망 절제와 자기성찰을 실천함으로써 신에게 더욱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이들은 해가 떠 있는 동안 금식하고 5번 기도를 해야 한다. 물 마시는 것도 안 되고 흡연, 음주, 성관계, 노래, 거짓말, 음담패설, 분노, 범죄도 금기다. 취식의 경우 임산부, 생리중인 여성, 환자 그리고 노약자나 어린이 등은 예외로 인정된다. 부득이 먹어도 되지만 나중에 그만큼 추후에 실천해야 한단다.
 

낮에 굶다가 저녁때 비로소 먹기 시작하는 걸 ‘부까 뿌아사’라고 한다. 지난 18일 학교 선생들 초청으로 때마침 인니에 온 집사람과 부까 뿌아사에 나갔는데, 5시 반에 만나 미리 차려 놓은 음식 앞에서 50여분 기다리다 6시20분에야 숟가락을 들었다.

몰래 점심 영업하는 곳도 있어

라마단 금기시항이 나와는 상관없지만 이곳에서 지내다 보니 신경 쓰이는 게 없지 않다. 내가 사는 반자르마신은 다른 지역보다 이슬람 색채가 강하다 보니 조금은 불편하다. 방학일이자 라마단이 시작되던 날 오전에 커피를 마시러 머그컵을 들고 매점으로 향했다가 “아차!” 싶었다. 복도에서 마주친 선생들의 달라진 시선을 의식하게 됐는데 매점 문이 닫힌 걸 보고 그 이유를 알았다.

다행이자 불만인 건 라마단이 방학과 겹쳐서 집에서 눈치 안 보고 점심을 먹을 수 있지만 ‘방콕’을 강요당한다는 점. 낮에는 나가도 커피숍이든 식당이든 모두 닫혀 있다. 그렇다고 저녁 외출이 기다려지는 것도 아니다. 유일한 교통수단인 택시는 비싼 데다 부르기도 어려워 엄두가 안 난다. 그래서 작년에도 그랬지만 올해도 라마단 기간엔 거의 두문불출했다.

여기서는 다른 도시와는 달리 음식업장이 낮에 영업했다간 큰코다친다. 벌과금 5000만 루피아(약 450만 원)를 물고 3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는다. 악소문이나 해코지를 의식해서도 문을 열 수가 없다. 식당은 오후 3시부터 포장 판매가 가능하다. 5시부터 상차림을 할 수 있지만 식사 개시는 보통 6시 반, 일러도 6시20분이 돼야 한다. 호텔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알음알음으로 찾는 손님을 대상으로 몰래 점심 영업을 하는 곳이 있다. 나도 이런 곳에서 교민과 점심을 먹은 적이 있는데, 식당이 아닌 다른 장소로 안내된다. 물론 지역별, 관광지별 상황은 조금씩 다르고, 힌두교도가 대부분인 발리에선 점심에 돼지고기까지 판다.

라마단 풍경이나 일화는 아무래도 이방인한테 호기심거리다. 같은 사무실의 삐쩍 마른 한 남자 선생은 라마단이 시작되기 한 달 전부터 금식에 적응하기 위해 점심을 굶어버릇했다.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지만 감히 의견을 꺼내 보일 수 없었다. 이들은 금식이 긍휼의 실천이라 여기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 무슬림들은 가난한 이웃들에게 먹을거리를 나눠주는 반면 다투는 일이 없다. 반자르마신엔 술집이 아예 없지만 그나마 있는 노래방도 라마단 기간 중엔 아예 문을 닫아건다. 이게 보편적인 무슬림 모습이고 보면 경의를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무슬림 모두가 금식 기간을 거룩하게 보내는 것만은 아니라고 들었다. 또 부작용도 없지 않은 모양이다. 일출 전 일찍 일어나 새벽밥을 먹어 둬야 하지만 늦잠 자는 바람에 굶고 등교하거나 출근해 힘든 하루를 보낸 경험이 누구에게나 다 있다고 한다. 한 여선생은 배고픈 나머지 저녁을 조금이라도 일찍 먹기 위해 시침을 빨리 돌려놓았던 어렸을 적 경험담을 털어 놓았다. 며칠 전 점심때 대기 중인 택시 기사가 간식을 먹다가 다짜고짜 문을 열어젖힌 나에게 들켜(?) 몹시 당황하기도 했거니와, 갈증과 허기를 몰래 해결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 같다.
 

반자르마신 시내 강변산책로엔 라마단이면 밤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나와 간식과 음료를 즐긴다. 공공장소지만 장사꾼이 깔개로 공간을 점령해 앉으려면 뭘 사먹어야 한다.
라마단 기간 중 야설시장으로 변하는 시청앞 도로. 오후가 되면 음식, 잡화, 완구 등 300여 명이나 길을 메우고 장을 펴는데, 5시경부터는 모여든 인파로 발 디딜 틈도 없다.

라마단 때문에 중간 방학까지 실시

라마단에는 직장마다 지각이나 결근이 잦고, 단축근무도 많아 업무지장과 민원인 불편이 예사다. 생산 현장에는 생산성 하락, 불량률 증가가 눈에 띄고…. 광산 책임자로 있는 한 교민은 “라마단 직후 이어지는 르바란 연휴에 귀향해서는 복귀를 안 하는 사람이 꼭 생겨 골치 아프다”고 말했다.

또 금식기간 중에 식비 지출이 더 늘어나는 가정이 많은데, 새벽과 밤중에만 배를 채워야 하다 보니 평소보다 더 잘 차리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아무래도 전체적으론 영양 부족 아니면 불균형을 면치 못할 것 같다. 실제 인도네시아인이 한국인보다 훨씬 작은 것으로 볼 때 성장기 아이들에겐 좀 문제가 있겠다 싶어 현지인에게 이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금식이 건강에 좋다고 하는 연구 결과도 있다”는 대꾸가 돌아왔다. 문제없다는 것이다.

작년 초 “라마단 시작 날짜가 며칠이냐”고 물었더니 교감이 잘 대답을 못해 의아했던 일이 있다. 이슬람력은 달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는 태음력으로 1년이 354일이다. 윤달이 없어서 해마다 시작일이 12일가량 당겨진다. 올해는 5월27일 시작했지만 내년에는 5월16일경으로 예상된다―라마단은 나라마다 교단마다 해석의 차이로 날짜가 하루정도 차이나고, 그래서 이슬람 신도들도 정식 발표되기 전엔 시작일을 모를 때가 있다.

라마단은 학사 운영에 큰 변수이자 고민거리다. 작년에는 라마단 시작일이 학기말에 걸쳐 있어서 이와 맞물려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개학 일정에도 별 문제가 없었다. 라마단 종료와 함께 이어지는 르바란 연휴(보통 일주일)가 끝난 직후인 7월18일에 개학했던 것이다. 올해의 경우 라마단 시작일이 앞당겨지는 바람에 방학이 좀 길어졌다. ‘라마단+르바란연휴’ 종료(6월30일) 후에도 7월16일까지 방학이 계속된다.

2016~2017학년도는 어쨌든 ‘미세조정’으로 학사일정이 마무리됐지만 따져보면 방학이 길어진 만큼 수업시수가 작년보다 줄어들었다. 하물며 라마단이 학기 중간 10월경 또는 3월경에 걸쳐 있는 학년도의 경우는 어떨까? 지역마다 다르지만 수업을 단축하거나 아예 ‘중간 방학’을 실시한다고 하는데, 누대에 걸쳐 일어났을 수업손실, 그 규모가 궁금하다. 또 일터의 손실도 어마어마할 것 같다. 물론 이걸 따지는 것 자체가 무례하고 발칙할 수 있겠다. 그래도 나는 알 수 있다면 좋겠다. 라마단 금식의 비용과 편익 중 어느 것이 더 큰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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