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원 「낙엽」
나의 시詩가 저 낙엽과 같아서
가을비 내리는 저물녘,
어느 상심傷心한 나무 곁에 물 스미듯 내려
이듬해 봄날 그에게 작은 밑거름이 될 수 있을까
겨우내 한뎃잠을 자는 뭇 벌레나 짐승들에게
따뜻한 이부자리가 될 수 있을까
밤눈 내리는
어느 산골 소녀의 분홍빛 작은 창가로 날아가
그녀를 환하게 미소 짓게 하거나
때론, 눈물 흘리게 할 수 있을까
그녀의 책갈피 속에서 오래도록 사랑 받을 수 있을까
나의 시詩가
저 낙엽과 같아서……
─ 김태원 「낙엽」 전문(시사랑모임 공저 『봄, 꽃잎으로 시를 쓰다』에서)
가을입니다. 가랑잎은 제 스스로 몸을 태워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지요. 그리고 낙엽으로 조용히 몸을 내립니다. 바람에 마음 비우고 햇볕에 몸 말려서 스스로를 완성하는 조락의 순미함. 이 자연의 아름다운 섭리를 향해 시인은 소박한 소망을 말합니다.‘ 내 시가 저 낙엽과 같아서’ 땅 위에 몸 붙이고 사는 것들의 생애에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분홍빛 산골 소녀의 기쁨과 슬픔이 되고 때로는 책갈피 속에 감춘 예쁜 추억이 되었으면 하고요.
이렇게 어딘가에 간절하게 닿으려는 마음에서 시는 태어나지요. 시인이 정성껏 빚어 내놓은 곡진한 말들은 독자들의 바구니에 담겨 달항아리 같은 소망이 되기도 하고, 솜다리꽃 같은 그리움이 되기도 하며, 굽이쳐 흐르는 고통의 강물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어느 날 불현듯 삶의 솔기에 끼어들어 수레국화 꽃향기 같은 추억의 옷장을 열기도 하고, 상처받은 사람의 숨겨진 삶 속으로 스며들어 복받치는 눈물이 되기도 하지요.
모쪼록 시가 오래 묵고 많이 참는 단련의 언어로 숙성되어, 우리들 미망의 삶을 확인하고 정돈하며, 삶의 진실한 가치를 가차 없이 상승시켜,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녀야 할 소중한 것들을 뜨겁게 소통시키는 구원의 언어가 되기를 또다시 소망해봅니다. 이 시인처럼 온기 묻은 언어로 간곡하게 세상을 호명하는 한 그 소망은 유효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