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직언직썰/ 배명순 충북연구원 연구위원

배명순 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연일 계속되는 청문회가 모든 사회적 이슈는 물론 무더워지는 날씨도 삼켜버리고 있다. 현 정부와 미래를 이끌어갈 수장들을 뽑는 일이니 무더위쯤은 잠시 잊어도 좋겠다. 그런데 아무리 중요한 청문회 기간이라도 잊지 말고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일들이 있고, 그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며칠 전부터 인터넷을 시끄럽게 달구고 있는 연예인 아들과 재벌 손자가 연루되어 있는 초등학교 폭력 사태, 어느 중학생들의 동성 친구에 대한 성폭력 사건이 그 것이다. 예전에도 그래 왔듯이 자칫 그 부모의 부실한 자녀교육문제로 치부하고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된다. 근래의 청소년 시기의 폭력과 성에 관련된 사건사고 뉴스는 알려지지 않는 것들까지 고려하면, 청소년기에 으레 겪고 넘어가야 할 치유되지 않는 홍역 같은 질병이 되고 말았다. 우리의 자녀들은 이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무사히 잘 넘기고 건강한 사회의 주역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아주 오래 전, 지구에는 두 종류의 인간 종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한 종은 완전히 멸종했으며, 다른 한 종은 끝까지 살아남아 오늘날 73억이 훨씬 넘는 대 번성을 누리고 있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사피엔스보다 키는 작았지만 몸은 더 다부졌고 힘이 세고 강인했다. 외부 적들로 부터의 방어나 먹이를 사냥하기에는 오히려 호모사피엔스보다 더 적합한 조건을 갖추었지만, 그들은 살아남지 못했고 호모사피엔스는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학자들은 그 원인을 지구의 마지막, 즉 가장 최근의 빙하기를 견딜 수 있는 의복기술, 발전된 사냥무기, 강화된 인지능력의 차이로 꼽는다. 호모사피엔스의 ‘귀가 있는 바늘’ 발명에 따른 의복기술의 발전과 사냥무기의 발달은 강화된 인지능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지능력이 강화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유년시절이 길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사피엔스보다 유년시절이 매우 짧았고, 가능한 최단 시일 안에 성인의 체격과 체력을 갖추고 사회생활(사냥)에 참여해야 했다. 유년기는 놀면서 배우고 사회성과 창의력을 개발하는 귀중한 시간인데 네안데르탈인들은 이런 유년기가 너무 짧았고, 또래끼리만 놀아서 인지능력이 발달하지 못했던 것이다. 반면, 호모사피엔스는 긴 유년기를 어른들과 함께 충분히 보냈으며, 그러면서 어린 구성원들에게 지혜와 기술을 전수할 수 있었고, 이것이 세대를 거듭하면서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결국 호모사피엔스는 추운 빙하기를 견딜 수 있도록 ‘바늘귀가 있는 바늘’을 발명하였고, 그들은 오늘날까지 살아남게 되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생각해보자. 우리 아이들은 호모사피엔스처럼 유년기를 충분히 보내고 있는 가? 아니면 네안데르탈인처럼 어린 나이에 또래들끼리 모여서 서로 경쟁하며 일찌감치 사회생활에 내몰리고 있는 것인가? 필자의 자녀도, 주변 지인의 자녀도, 그리고 우리나라 대부분의 청소년들 모두는 일상에 대한 호기심과 친구와의 경쟁심으로 때론 일을 저지르고, 친구들과 다투면서 성장하고 배우게 된다.

그런데 어른들은 청소년들의 그런 본능적 특성이 잘못된 것이며, 그렇게 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네가 그렇게 어른들이 정해놓은 틀대로 살지 않으면, 내가 너를 하루 종일 신경써야하고, 그러면 너를 키우고 보살피는데 드는 돈을 벌수 없으니, 학교 끝나면 놀지 말고 학원으로 바로 가라’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부모가 만들어 놓은 틀 보다는 본성에 더 충실하기 마련이다. 결국 청소년기 폭력문제, 그리고 그것이 성년까지 이어져 더 큰 사회문제로 확대되는 현상은 계속 반복 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말썽꾸러기 초등학생들과 그 자녀를 둔 부모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나의 자녀들은 내가 모르는, 아직은 밝혀지지 않은 폭력의 가담자 또는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나 혼자 호모사피엔스처럼 자녀들의 유년기에 충분히 놀면서 배우도록 키우면 되는 것일까? 이 물음의 답은 우리나라 부모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사회는 부모들과 자녀들을 호모사피엔스가 아닌 네안데르탈인으로 내몰고 있다.

이것은 어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사회적 책임이며, 우리가 만든 시스템을 우리 스스로 비난하며 살아가고 있다. 미래의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이나 바이오산업이 아니라 호모사피엔스의 ‘아이들과 함께 놀기’ 전략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