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개 마을 합심해 교통약자 어려움 해소, 다른 곳으로 확산 기대

<정순영의 일하며 생각하며>
정순영 옥천순환경제공동체 사무국장

생각해보면 옥천에 오기 전까진 ‘농촌살이’에 대해 정말 아는 것이 없었던 것 같다. 대학 입학하고 졸업할 때까지 계절마다 진행된 농활에 거의 빠짐없이 참가했지만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은 ‘진짜 농촌 삶’의 10%나 되었을까? 그 중에서도 가장 문외한이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농촌의 대중교통 현실이었다.

10년 전 옥천신문사 취재기자로 면접을 보러갔을 때조차 농촌에서 기자생활을 하기 위해선, 아니 그저 일상생활을 불편 없이 하기 위해서라도 ‘운전면허’는 꼭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이른 새벽부터 심야시간까지 쉴 새 없이 버스나 지하철이 운행되는 도시와 달리, 지하철은 아예 없고 버스는 짧아야 한 시간에 한 대씩, 길게는 서너 시간에 한 대씩 운행되고 저녁 7시면 대부분의 막차가 끊기는 농촌의 대중교통 현실. 어떤 면에선 농촌으로의 이주를 꿈꾸는 이들을 가장 주저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 ‘교통의 불편함’이 아닐까 싶다.
 

안남면 교통약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탄생한 ‘마을순환버스’.

운행 결정 후 1년 반만에 시행

그래서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대부분의 농촌 주민들은 트럭이든 승용차든 자기 차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운전을 할 수 없는 노인들이나 어린이·청소년, 결혼이민여성 등은 대중교통 사각지대의 피해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긴 시간 버스를 기다리고, 힘들어도 그냥 걸어 다니거나 차라리 외출을 포기하고 마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내가 사는 안남면에서는 바로 이러한 교통약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12개 마을이 함께 지혜를 모았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무료로 운행되는 ‘마을순환버스’이다. 2007년 안남면 지역발전위원회를 중심으로 ‘살기좋은 안남면’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공모했는데 여러 아이디어 중 주민들의 가장 큰 지지를 받은 것이 바로 마을순환버스였다.

옥천읍에서 출발하는 시내버스가 일단 안남면 소재지까지만 오면 마을순환버스가 12개 마을 곳곳으로 주민들을 실어 날라 교통약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소하고 마을 간 이동이 활발해지는 만큼 안남 주민들 간 소통도 훨씬 활발해질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마을순환버스 운행이 추진되었다. 하지만 2008년 초, 마을순환버스 운행을 결정하고도 버스의 첫 시동이 걸리기까진 1년 반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기존 버스 운행수익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옥천시내버스회사의 반발과 이후 지속적인 예산 투입에 부담을 느낀 옥천군이 마을순환버스 운행 지원에 난색을 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남 주민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009년 6월1일 마을순환버스 운행이 시작될 수 있었다. 마을순환버스가 생김으로 해서 안남의 아이들은 어느 마을에 살든 면의 작은도서관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게 됐고 성인문해교육기관인 안남어머니학교 학생들도 배움을 포기하지 않고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마을순환버스를 운영하는 데는 유류비와 각종 유지보수비 등을 포함한 운영비로 2500만원, 버스 기사 인건비로 1500만원 정도가 드는데 이는 해마다 안남면으로 배정되는 대단위 주민지원사업비와 옥천군의 작은도서관 순환버스 인건비 지원 사업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 주민지원사업비란 안남과 같은 금강 상류 지역 주민들이 수질보전을 위해 감내해야하는 각종 규제에 대한 보상금 성격의 지원금인데 만약 마을순환버스에 투자하지 않았다면 12개 마을이 그냥 나눠 쓸 수도 있는 돈이었다.

충북도나 시·군에 제안

하지만 안남 사람들은 특정 마을이 아닌 면 전체를 위한, 또 안남의 교통약자들을 위한 사업에 주민지원사업비를 쓰기로 마음을 모은 것이다. 안남면 마을순환버스는 일단 운행을 시작하고 난 뒤로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낙후되어가는 농촌의 면 단위 중심지를 활성화하는 데는 면 지역 마을 곳곳을 연결하는 일명 ‘커뮤니티(공동체) 교통 수단’이 필수적이고 그 선진사례로 안남의 마을순환버스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국토공간구조 변화에 대응한 농촌 중심지 발전 방안」이라는 정책보고서에도 담긴 것이다.

나는 마을순환버스 운행을 가능케 한 안남면 주민들의 노력이 단순히 교통약자들의 불편을 해소했다는 의미를 넘어 어떤 울림을 우리 사회에 전하고 있다 생각한다. 사실 정치란 불평등하게 나눠진 자원을 공정하게 재분배하는 과정이 되어야함에도 지역 단위에서든 국가 단위에서든 정치적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돈의 쓰임을 결정하는 과정, 즉 예산의 분배 과정에서 소외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안남에서도 가장 약자라 할 수 있는 노인과 어린이를 위해 안남이 가진 돈을 쓰자고 결정한 안남 사람들의 마을순환버스 운행 결정은 주민 스스로가 주민을 위한 정치를 펼치는 ‘주민자치 1번지 안남’의 진면목을 보여준 것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가끔 마을순환버스를 이용하는데 버스 안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 기울여보면 12개 마을의 소식들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마을순환버스의 가치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아닐까. 첫째는 면 지역 교통 약자들의 이동권을 보장한다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마을을 매일 이어주며 주민들을 소통하게 하고 그를 통해 안남 풀뿌리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가치 말이다. 충북도에는 안남을 포함해 87개의 면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람이 떠나지 않는 면, 보다 살기 좋은 면을 만드는데 충북도나 시군 지자체 차원에서 마을순환버스 운행을 고민해봐야 할 좋은 정책으로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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