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완성한 실크로드 여정, 베르나르 올리비에·베네딕트 플라테의 《나는 걷는다 끝.》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나경 전 꿈꾸는책방 점장

나는 걷는다 끝 베르나르 올리비에·베네딕트 플라테 지음 이재형 옮김 효형출판 펴냄

지난 달 제주 여행 중 우도에서 만난 어떤 이는 한라산 둘레길을 쉰 번도 넘게 걸었다고 했다. 그날도 둘레길 여정을 마치고 들어온 터였다. 그는 우도에서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섬 구석구석을 걷고 또 걸었다. 오래 전에는 유럽의 골목길을 그렇게 걷고 또 걸었다고 한다.

그가 걷게 된 데에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음을 그의 피붙이에게서 듣기는 했지만, 애초 이유와 상관없이 내가 보기에 그는 정말로 ‘걷기’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마치 걷는 것만이 그가 살아있음을 증명해 주기라도 하듯 말이다. ‘걷기’는 어떻게 그를 사로잡았을까, 그는 왜 걷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쓴 책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2000년대 초, 실크로드 여행기를 써서 전 세계에 걷기 열풍을 가져 온 도보여행자다. 30년 넘게 신문사와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한 그는 은퇴 후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시달린다. 일단 파리를 떠나보자는 생각으로 석 달 간 산티아고 순례에 나섰고, 그곳에서 걷기의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후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이르는 실크로드 대장정을 떠난다.

1999년부터 4년에 걸쳐 1만2000 km에 이르는 길을 오롯이 혼자 걸었다. 예순이 훌쩍 넘은 때였다. 그가 수첩에 꼼꼼히 기록한 여행기는 <나는 걷는다>라는 제목을 달고 책 3권으로 엮여 나왔고, 여러 나라에 번역돼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의 실크로드 여정은 그렇게 마무리된 듯 싶었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2012년,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연인인 베네딕트 플라테의 제안에 마음이 흔들린다. 당시 여정에서 누락한 프랑스 리옹에서부터 터키 이스탄불까지, 실크로드의 첫 구간을 마저 걷자는 제안이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닌 둘이 함께. 두 사람은 일정을 맞춰 2013년에 900 km를, 이듬해에 나머지 2000 km를 걸었다.

걸으며 만나는 역사와 풍경

다시 여행을 나서기로 결심하기까지, 고민이 없지는 않았다. 그의 나이 일흔 다섯이었으니까. 등산화보다는 슬리퍼를 신고 소파에 푹 파묻히는 게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아니던가. 하지만 그는 결국 “왜 안 떠나는가? 영원한 휴식을 취하게 될 날이 점점 더 가까워지는데 왜 피곤하다는 핑계를 댄단 말인가”라며 빠뜨린 구간을 추가하여 실크로드 대장정을 완결하기로 한 것이다. 올해 초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나는 걷는다 끝.>은 바로 그 마지막 여정을 담고 있다. 앞서 나온 시리즈와 달리 제목에 들어간 ‘끝’이라는 낱말이 실크로드 여정이 완결됐음을 알려준다.

프랑스에서 출발해 이탈리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코소보, 마케도니아, 불가리아, 그리스를 거처 터키 이스탄불까지 무려 3000km에 달하는 여정. 그 길을 걷는 동안 두 사람은 지나간 역사와 현재의 풍경,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로 이어 시대의 물결 앞에 두었다.

이들의 여정은 언제나 그랬듯이 그저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걷는 여행이 아니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처럼 지뢰가 묻혀 있을까봐 공포에 떨며 지나야 했던 곳도 있었다. 전쟁의 참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아픈 도시들도 눈을 질끈 감고 지나야했다. 하지만 그곳에도 사람이 있었다.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낯선 이에게 먹을 것과 잘 곳을 내어 주던 사람들. 어쩌면 그것이 슬리퍼 대신 등산화를 신고 율리시스(올리비에의 짐수레)를 끌게 한 동력일지도 모르겠다.

우도에서 만난 그도 처음에는 몸과 마음에 새겨진 아픔을 잊으려고 걷기 시작했을 것이다. 걷다 보니 어느새 베르나르 올리비에처럼 걷기가 주는 즐거움에 빠져들었을 테고, 그 이후엔 길에서 만나는 모든 풍경과 사람들, 길과 사람이 만들어내는 역사가 그리워 멈추지 못했을 게다. 그리고 이제는 살아있기에 그저 뚜벅뚜벅 걷고 있는 게 아닐까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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